꼬마 철학자14 - 알퐁스 도데
쨍그렁! 쨍그렁! 쨍그렁! 3
학교를 떠나는 날이라고 셀리에르 씨가 이별주를 한잔 사기로 해서였는지
까페에는 단골 손님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모두들 기다리고 있었다.
까페에 들어서자 셀리에르 씨는 멍청해진 나를 끌고 다니며
모두에게 소개시켰고 그들은 진심으로 나를 환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나의 출연은 그다지 큰 신선함을 준 것 같지 않았으며
그들은 금세 내 존재를 잊고 각자의 기분에 빠져들었다.
나는 까페 한구석에 시큰둥하니 앉아 있었다.
술잔이 채워지는 동안 뚱뚱보 셀리에르 씨가 내 옆에 다가와 앉았다.
코트를 벗어 붙인 채 그는 자기 이름이 새겨진 기다란 도자기 파이프를 입에 물고 있었다.
바르베뜨 까페에서 열심히 떠벌리고 있는
다른 자습감독 교사들도 모두들 그런 파이프를 하나씩 물고 있었다.
뚱뚱보 셀리에르 씨가 내게 말했다.
"음 친구, 보시다시피 자습감독 선생을 하다 보면 이렇게 즐거운 시간도 갖게 되지요.
말하자면 싸르랑드는 당신의 초임지로는 안성맞춤이라는 얘기요.
우선 바르베뜨 까페의 압셍뜨 술맛은 아주 일품이거든.
게다가 저 감옥도 과히 나쁘진 않을 거요."
교사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은어로 감옥이란 학교를 이르는 말인가 보았다.
"당신은 하급반을 맡게 될 것입니다. 엄하게 다뤄야 해요.
내가 그놈들을 얼마나 엄격하게 다루는지 보셨어야 하는 건데!
교장은 나쁜 사람은 아니오. 다른 동료 교사들도 다들 좋은 사람들이고,
다만 그 노파와 비오 영감만은...."
"노파라니요?"
내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아! 곧 다 알게 될 거요. 큼지막한 안경을 걸친 그 노파는
밤이고 낮이고 간에 상관하지 않고 학교를 어슬렁거리고 다니지.
교장선생네 아주머닌데 학교의 회계일을 도맡아 일하고 있소.
아! 하여간 지독하게 고약한 할멈이야!"
셀리에르 씨가 인상 착의를 설명해 주자 전날 밤 복도에서 만난 마귀할멈의 모습이 되살아났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열두 번도 넘게 나는 그의 말을 가로막고 '그럼 그 검은 눈동자의 아가씨는요?'하고 물을 뻔했다.
하지만 난 차마 그러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바르베뜨 까페에서 검은 눈동자의 매혹적인 아가씨를 들먹인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동안 술이 몇 순배 돌았고, 다시 잔들이 찰랑찰랑 채워졌으며, 건배를 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오! 하고 감탄을 연발하거나 아! 하는 소리를 질러 댔다.
당구 큐대를 공중으로 던지고 서로 떠밀고, 잡아당기고, 웃고, 욕설을 퍼붓고,
귓속말을 하고... 온통 난장판이었다.
술을 몇 잔 들이킨 나도 차츰차츰 대담해져 갔다.
까페 구석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술잔을 손에 든 채
그들에게 질세라 큰소리로 떠벌리며 여기저기 망아지처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때쯤 되자 하사관들은 나의 친구가 돼 있었다.
뻔뻔스럽게도 나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우리 집은 대단히 부자인데
젊은 혈기에 그만 철없는 짓을 저지르는 바람에 집에서 쫓겨났다고 떠벌려 댔다.
그래서 먹고 살려고 원하지도 않는 자습감독 교사가 됐지만
학교에 오래 남을 생각은 전연 없다고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지껄였다.
술기운에 취해서 나는 내가 굉장한 부자집 아들이라고 거짓말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아! 그순간 리용에 있는 가족들이 그 황당한 거짓말을 들었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하지만 인간이란 가련한 존재여서 바르베뜨 까페에 있는 사람들은 흔히 볼 수 있듯
내가 가난해서 선생질을 하는 게 아니라 방탕한 기질 때문에 집에서 쫓겨난
괴짜 청년이라고 생각하고는 모두 나를 호감어린 눈길로 바라보기까지 했다.
가장 나이가 많은 하사관들까지도 감히 나한테 말을 걸려 하지 않았다.
어디 그것뿐인가! 술자리가 끝날 시간이 되자 전날 밤에 친구가 되었던
펜싱 교사 로제가 일어나더니 다니엘 에세뜨를 위해 건배를 하자고 모두를 부추기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얼마나 우쭐했었는지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를 위해 건배하고 나서 우린 술좌석을 털고 일어났다.
그때 시계는 9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이제 곧 수업이 시작되며 우리는 학교로 돌아가야만 했다.
비오 씨가 정문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이별주에 취해 비틀거리는 뚱보 셀리에르 씨에게 그가 말했다.
"셀리에르 씨, 마지막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자습실로 들어가도록 하세요.
학생들이 교실에 다 들어가면 교장선생님과 내가 새로 오신 선생님을 학생들에게 소개하지요."
잠시 후에 나는 교장선생님과 비오 씨의 뒤를 따라 엄숙한 표정으로 자습실로 들어갔다.
모두들 의자를 덜컹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장선생님이 약간 길고 지루하기는 하지만 위엄 있게 나를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그러고 나서 교장선생님은 교실을 나갔고,
이별주에 취해서 고주망태가 된 뚱보 셀리에르 씨도 그 뒤를 따라 비틀비틀 걸어 나갔다.
비오 씨만은 마지막까지 남아 교단에 서 있었다.
그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쨍그렁! 쨍그렁! 쨍그렁! 하고 울리는 열쇠꾸러미야말로
그 어떤 말보다 가장 무섭고 위협을 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모두들 책상 뚜껑 밑에다 머리를 처박았고, 나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떨며 서 있었다.
드디어 그 무서운 열쇠소리가 사라져 버리자 장난기어린 수많은 얼굴들이
책상 뚜껑밑에서 하나씩 고개를 들며 나타났다.
어떤 아이들은 펜 끝에 달린 깃털을 입술에 갖다 대고 빈정거리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어떤 아이들은 무척 놀란 듯 야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그마한 눈들을 반짝이며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잠시 후 교실 안은 앞, 뒤, 옆 책상으로 계속 쑥덕거림이 이어지며 술렁대기 시작했다.
약간 당황한 나는 천천히 교단 위로 올라섰다.
매서운 눈초리로 교실을 한번 쭉 휘들러보고는 위엄을 갖추려고 애쓰면서
힘껏 목청을 돋우고 책상 위를 세게 두 번 내려쳤다.
"공부합시다, 여러분! 공부합시다.!"
나의 자습감독 교사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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