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15 - 알퐁스 도데
까치머리 방방
내가 맡고 있던 하급반 아이들은 모두가 착했다.
그애들은 다른 반 아이들과는 달리 말썽을 부려
내 속을 썩이거나 마음을 아프게 한 적도 없었다.
나 또한 그러한 그들을 몹시 좋아하여 모든 애정을 다 쏟았다.
그들은 아직 중학생 티가 배지 않아 앳된 개구장이들처럼 보였다.
장난기어린 그들의 눈은 그들의 깨끗한 영혼을 송두리째 읽어 낼 수 있을 정도로 맑았다.
내가 그들에게 벌을 준 적은 없었다.
벌을 줘서 뭐 하나? 새들을 벌 주는 법도 있나?
그들이 너무 시끄럽게 짹짹거리면 난 그냥 이렇게 소리치기만 하면 되었다.
"조용히 해!"
그러면 나의 새장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비록 5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또다시 시끌벅적댄다 해도 말이다.
하급반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는 열한 살이었고
나머지 아이들은 열 살도 안 된 올망졸망한 꼬마들이었다.
그런데 그 뚱뚱보 셀리에르 씨는 어린애들이란
호되게 다그치며 엄하게 다뤄야만 말을 듣는다고 으시대며 충고하듯 말했었다.
나는 그들을 엄하게 다루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늘 친절하게 대해 주려고 애썼을 뿐이었다.
이따금씩 그들이 얌전하게 굴면 그 대가로 난 얘기를 해주곤 했다.
이야기... 라는 말만 해도 그들은 열광했다.
잽싸게 노트와 책을 덮어 버리고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는데
그러면 교실 안은 대번에 소란스러워졌다.
잉크병과 자, 펜대 등 온갖 잡동사니들은 책상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그런 다음 책상 위에 팔짱을 끼고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이 재미있어 할 만한 이야기를 대여섯 가지나 지어 냈다.
'매미의 데뷔' '토끼 장의 불행'등.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도 라 퐁텐느 영감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학가였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에게 들려 준 이야기는 그의 우화를 약간 바꿔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에 불과했다.
나는 기분내키는 대로 내 자신의 얘기를 가미시켜 말해 주곤 했는데
나처럼 밥벌이를 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불쌍한 귀뚜라미나
자끄 형처럼 늘 훌쩍거리며 딱지치기하는 무당벌레들이 등장했다.
그러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아이들은 얘기에 푹 빠져 울고 웃고 하며 즐거워했다.
나 또한 얘기에 취해서 그들과 함께 감동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큰 즐거움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비오 씨가 우리들이 이야기에 재미들여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그러한 즐거움을 더이상 지속시킬 수 없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쨍그렁거리는 무거운 열쇠꾸러미를 든 비오 씨가
수업이 정상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학교 안을 한 바퀴씩 돌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그 토끼 장에 대한 이야기가 바야흐로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접어드는 순간이었는데
비오 씨가 우리 자습실을 지나치다 무심코 발걸음을 멈췄다.
그가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오자 아이들은 놀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참 흥분해서 말하던 나도 순간 말을 그쳤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장도 당황하여 두려움에 떨쳐 큰 귀를 쫑끗 세우고
앞발을 공중에 쳐들고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능글능글 웃음기를 머금고 교단 위로 올라서던 비오 씨는
아이들의 책상 위에 종이 한 장 놓여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는
놀라서 휘둥그래진 눈으로 오랫동안 교실 안을 휘둘러보았다.
할 말을 잃은 듯 그는 잠자코 있었지만 손에 든 열쇠는 심하게 흔들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잠시 후 더는 못 참겠다는 듯 고함을 쳤다.
"정말 놀라운 일이야. 이제 여기선 더이상 공부를 안하는군!"
"쨍그렁! 쨍그렁! 쨍그렁!"
나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열쇠꾸러미가 맞부딪치며 내는
끔찍한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이들은 요즘 들어 공부를 열심히 했읍니다...
그래서 그 상으로 짤막한 얘기를 하나 해주고 싶었어요."
비오 씨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희미한 미소를 띠며 몸을 숙여 한동안 자기 발끝을 내려다보던 그는
마지막으로 열쇠꾸러미를 몇 번 흔들더니 교실에서 휑하니 나가 버렸다.
드디어 오후 4시에 휴식시간이 되자 내게로 다가온 비오씨는
여전히 능글거리는 웃음을 흘리면서
아무 말 없이 규율집의 12페이지를 펼쳐서 눈앞에 들이밀었다.
'학생들에 대한 교사의 의무'라는 큰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더이상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그 이후로 다시는 이야기란 단어조차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며칠 동안 풀죽은 아이들을 위로할 길이 없어 나는 무척이나 고심했었다.
그들은 우리들의 토끼 장을 그리워했으며,
장을 그들에게 돌려 줄 수 없었던 까닭에 내 마음도 몹시 아팠다.
나는 그 장난꾸러기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른다.
우린 결코 서로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었다.
학교는 상급반, 중급반, 하급반의 세 반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각 반은 운동장과 기숙사, 자습실 등을 따로 사용했다.
하급반 아이들은 당연히 나의 소유였다.
마치 내가 서른 다섯 명의 자식들을 거느리고 있는 아버지 같았다.
그 아이들을 제외하면 내겐 말을 걸 만한 친구라곤 한 명도 없었다.
비오 씨가 미소를 지어 보이며 휴식시간마다 다정하게
내 팔을 잡고는 규칙에 관해 충고를 해 주었지만 난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도저히 그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열쇠꾸러미만 보면 겁부터 났다.
교장선생님을 만나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동료 교사들은 별종동물을 대하듯 나를 경멸했으며 얕잡아보았다.
열쇠꾸러미를 든 비오 씨가 내게 호감을 보이는 듯하자
동료들은 비오 씨만큼이나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첫 출근하던 날 하사관들을 만나본 이후로는
내가 바르베뜨 까페에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선량한 사람들조차도 날 싸가지없는 놈이라 여기며 용서하려 하지 않았다.
수위인 까싸뉴씨와 펜싱 교사인 로제까지도 날 따돌리는 듯하더니 이윽고 등을 돌려 버렸다.
특히 로제는 내게 깊은 악의를 품고 있는 듯했다.
어쩌다 곁을 지나갈 때면 그는 커다란 눈을 부라리고 자기 콧수염을 비비 꼬아대며 노려보았다.
마치 백 명도 넘는 아랍인들의 목을 시퍼렇게 날이 선 칼로
내려치려는 것처럼 무지막지한 표정을 지었다.
언젠가 한 번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들으라는 듯이 자기는 염탐꾼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까싸뉴 씨에게 큰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까싸뉴 씨의 표정에도
자기 역시 염탐꾼 같은 놈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염탐꾼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나는 염탐꾼이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비오 씨가 내게 다정하게 굴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쨌든 모든 사람들의 적의에 대해 대담하게 무시해 버리기로 결심했다.
나는 사층 꼭대기에 있는 고미다락방을 중급반 교사와 함께 썼다.
아이들이 정규수업을 받고 있는 시간중에는 그곳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같은 방 동료 교사는 바르베뜨 까페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 방은 내 독방이나 다름없었고 지구상의 유일한 내 안식처였다.
나는 항상 그 방에 들어가면 단단히 문을 걸어 잠그고
온통 잉크 자국이며, 깊게 파놓은 칼자국투성이인 낡은 책상 앞에다
의자 대신 트렁크를 끌어다 놓고 그 위에 앉아 공부하곤 했다.
때는 완연한 봄이었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면 물이 올라 파릇파릇한 나뭇잎이
무성한 커다란 나무들과 눈부시도록 파란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다.
밖은 조용했다.
어느 학생이 책을 읽은 단조로운 가락과 선생의 화난 목소리,
나뭇가지에 앉아 말다툼을 벌이는 참새들의 짹짹소리만 이따금씩 들려 올 뿐이었다.
그러고 나서 어느결에 모든 소리들이 침묵 속에 잠겨들고 나면
학교는 마치 깊은 잠 속에 빠진 듯 적막에 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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