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16 - 알퐁스 도데
까치머리 방방2.
나는 한시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꿈을 꾸지 않았는데, 그것이야말로 잠을 푹 자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나는 쉴새없이 공부만 했다.
머리가 빠개질 정도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가득 집어넣었다.
내가 그 무미건조한 공부에 한참 열중해 있을 때면
이따금씩 빨간수첩의 뮤즈여신이 찾아와 날 유혹하곤 했다.
'꼬마 철학자님! 당신의 빨간수첩에 있는 뮤즈여신이랍니다.
빨리 문을 열고 저를 맞아 주세요.'
나는 문을 열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했다.
'빨간수첩의 여신이여, 내 눈앞에서 멀리멀리 사라져다오!
지금은 무엇보다 열심히 그리스어를 공부해서
무난하게 학사 학위를 받아 정식교사로 임명되어야 해.
그래서 하루빨리 뿔뿔이 흩어진 우리 가족이 모여살 만한 멋진 집을 다시 지어야 한단 말이야.'
가족들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각박한 생활속에서도 흐뭇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누추하기만 한 방도 더욱 아늑하게 보였다.
아! 나는 그 골방에서 얼마나 멋진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거기서는 아무리 암기하기 힘든 것도 좔좔 외울 수 있을 정도로 공부가 잘 되었다.
그곳에 처박혀 지내는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이 내 자신을 격려하고 채찍질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즐거운 시간이 있으면 반드시 괴로운 시간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일주일에 두 번씩, 일요일과 목요일에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로 나가야 했는데
그 야외수업은 내게는 형벌처럼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하급반 아이들을 인솔해서 싸르랑드에 2킬로쯤 떨어진 나즈막한
산봉우리의 발치에 푹신한 양탄자처럼 잔디가 펼쳐 있는 드넓은 곳으로 야외수업을 하러 갔다.
몇 그루의 아름드리 밤나무, 서너 채의 자그마한 노란색 별장,
짙푸른 녹음 속을 흘러가는 개울...
그곳은 마치 천국처럼 즐겁고 유쾌한 곳이었다.
세 반은 따로 떨어져 야외수업을 하게 되어 있었다.
언젠가 한번은 세 반의 학생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적이 있었는데, 선생라곤 나 혼자뿐이었다.
다른 두 동료 교사는 상급반 학생들이 한턱낸다고 해서 근처 별장에 가버리고 없었다.
나는 한번도 초대받은 적이 없었고 남아서 학생들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보살펴야만 했다.
그 아름다운 곳에서 힘겨운 일을 해야만 하다니, 생각만 해도 처량한 노릇이었다.
푸르른 풀밭 위나 밤나무 그늘 속에 드러누운 채
졸졸 흐르는 시냇물의 노래소리를 들으며 꽃향기에 취한다는 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하지만 감시하고, 소리지르고, 벌주는 짜증나는 일만을 끊임없이 되풀이해야 했으니,
학생들이 귀찮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정말 끔찍했다.
하지만 가장 끔찍한 일은 잔디밭에서 학생들을 감시하는 일이 아니라
하급반 아이들을 이끌고 마을 안을 통과해 가는 일이었다.
중급반이나 상급반 학생들은 발을 썩 잘 맞추면서 마치 노련한 병사들처럼
구둣굽소리를 저벅저벅 내며 걸어갔다.
북소리에 발을 맞추며 훈련받는 병사들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하급반 학생들은 그런 폼나는 일에는 전혀 소질이 없었다.
그들은 열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제멋대로 서로 손을 맞잡고 종알거리면서 큰길을 따라 걸었다.
내가 아무리 목청껏 소리를 질러 대도 소용없었다.
"앞사람과 거리를 유지해서 걸어!"
하지만 그 아이들은 내 말을 들은 척도 않고 딴청을 부리며 제멋대로 걸어갈 뿐이었다.
그래도 맨 앞에 앞장서 걸어가는 아이들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맨 앞에는 학생복 웃도리를 입은 얌전하고 키큰 아이들을 세워서 걷게 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흐지부지해지다가 끝줄에 가서는 아예 엉망진창이 되었다.
머리는 까치집처럼 헝클어지고, 손은 때국이 흐르듯 더러우며,
넝마 같은 반바지 차림의 조무라기들은 정말 미치광이 같은 모습이었다.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가끔씩 재치를 부릴 줄도 아는 비오 씨는 여전히 능글능글거리면서
그 모습을 보고 "거지떼들 같군"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끝줄은 한심한 꼴을 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싸르랑드의 큰길에 나설 때의
내 절망스러운 기분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일요일에는 교회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지고
거리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사람들로 복작거렸다.
그래서 우리가 행길을 들어설 때쯤이면 예배에 참석하러 가는 여자 기숙생들이나
장미빛 모자를 쓴 여성복 재봉사들, 진주빛 바지차림의 멋장이 남자들을 만나게 마련이었다.
나는 누더기처럼 옷을 걸친 우스꽝스런 몰골을 한 학생들을 데리고
그들을 헤집고 지나가야만 했다.
그때마다 나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어들어가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나와 함께 일주일에 두 번씩 야외수업을 하러 가야 했던
까치집 같은 머리의 개구장이들 중에 특히 지지리도 못생긴 데다가
보잘것없는 옷차림으로 날 항상 절망감에 빠뜨렸던 반 기숙사생 아이가 한 명 있었다.
그 아이는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로 우스꽝스런 모습의 난장이였다.
덥수룩하고 지저분한 머리에 남루한 옷을 걸치고 몸에선 더러운 시궁창 냄새를 풀풀 풍기며,
게다가 끔찍할 정도로 완전하게 다리가 휘어진 아이였다.
물론 그 아이도 학생이라고 불리긴 했지만
그의 이름은 그 지방 교육청의 학생명부에 실리지 못했다.
학교에서 마지못해 그를 받아들이긴 했으나 학교의 명예를 훼손시킨다는 이유로
그의 이름을 학생명부에 올리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 아이를 미워했다.
야외수업 때마다 그애가 마치 미운 오리 새끼모양 끝줄에서
뒤뚱거리며 쫓아오는 모습을 보노라면 나는 하급반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그 아이를 구두발로 힘껏 차서 내쫓아 버리고 싶은 난폭한 충동을 느끼곤 했다.
우리는 그 아이의 뒤뚱거리는 걸음걸이 때문에
절름발이라는 뜻의 방방이라는 별명으로 그를 부르곤 했다.
방방은 물론 부유한 집 자식은 아니었다.
그의 태도와 어투에서부터 그가 빈민가 출신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곤 했는데
특히 싸르랑드 사람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를 미루어 짐작해 보면
어렵잖게 그 점을 알아챌 수 있었다.
싸르랑드에서 사는 동네 꼬마들이 모두 방방의 친구였다.
우리가 야외수업하러 가는 날이면 구름처럼 떼거리로 모인 장난꾸러기들이
우리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땅재주를 넘고,
너나 할 것 없이 이름을 불러 대며 손가락질하거나
그에게 먹다 버린 밤껍질을 집어 던지는 등 아우성을 치고 놀려 대면서 법석을 떨었다.
그걸 보면서 우리 하급반 아이들은 몹시 즐거워했지만
나는 도무지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매주일마다 방방 때문에 발생하는 말썽들을 상세하게 적은 보고서를
교장선생님에게 올려 보았지만 불행히도 그 보고서는
매번 대답없는 메아리처럼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결국 날이 갈수록 더욱 꼴사납게 다리를 절름거리는
방방을 데리고 여전히 거리를 지나다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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