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17 - 알퐁스 도데
까치머리 방방 3.
그러던 어느 화창한 일요일, 온 마을은 축제로 들떠 있었다.
그런데 소름이 끼칠
정도로 화장을 한 방방이 야외수업을 가겠다고 나타났다.
행여 꿈속에서라도 보게 될까 두려울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다.
두 손은 새까맣고, 끈이 덜어져 나간 너덜대는 구두를 질질 끌면서
머리와 반바지에 온통 덕지덕지 진흙투성이를 해가지고 나타났다. 괴물 같았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 그날 방방을 학교로 보내기 전에 분명히 누군가가 그를
예쁘게 치장해 주었다는 것이 몸 구석구석에서 풍겨 나왔다.
머리에 포마드 기름을 짓이겨 발라서 빗질을 하였는지 머리카락들이 꼿꼿하게 서 있었으며,
목에 정성껏 맨 타이엔 어머니의 손길이 지나간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학교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수많은 개울을 건너야 했다.
방방은 그 많은 개울을 엎어지고 뒹굴며 건너왔던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웃으며 그가 다른 아이들 틈에 끼어 드는 걸 본 나는
두려움과 분노가 한꺼번에 왈칵 치밀어올랐다.
"꺼져 버려!"
내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한 방방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날 그는 자신이 아주 멋지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꺼져 버려! 꺼져 버리란 말이야!"
그러자 방방은 내 기세에 눌려 체념한 듯한 슬픈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그의 눈길은 애원하듯 끈질기게 내 눈초리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나는 가차없이 그를 무시하고 하급반 아이들을 재촉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방은 길 한가운데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나는 오늘만큼은 그를 떨쳐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내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의 하늘은 날아오를 듯한 즐거운 웃음소리와 속삭임을 들으니 흥이 났다.
그런데 큰길을 빠져나오는 순간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니
아이들의 행렬 맨 뒤에서 너댓걸음 떨어져서
방방이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맨 앞에 앞장서 가는 두 아이에게 말했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절름발이 방방을 놀려먹는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아이들은 힘껏 질주하기 시작했다.
방방이 따라오는지 보려고 이따금씩 뒤를 돌아보며 달려가던 아이들이 이제는
아주 멀찌감치 떨어져 주먹만큼이나 작아 보이는 방방의 모습을 보며 배를 잡고 깔깔댔다.
방방은 먼지가 뽀얗게 일어나는 큰길에서
과자와 레몬수 장사치들 사이를 헤집고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잔뜩 화가 난 방방은 어찌나 열심히 뛰어왔던지 우리와 거의 같은 시간에 잔디밭에 도착했다.
방방은 한꺼번에 몰려드는 피로 때문에 얼굴색이 백지창처럼 창백해져 있었으며,
가엾게도 다리를 몹시 끌며 걷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느닷없이 밀려오는 감동과 애처로움을 느꼈다.
잔인한 내 행동을 부끄러워하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방방을 내 곁으로 불렀다.
방방은 터질 듯이 꽉 조이는 붉은색 체크 무늬가 현란하게 그려진 빛바랜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리용 중학교 시절에 입었던 셔츠였다.
나는 그 셔츠를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내 자신에게 말했다.
'불쌍한 자식, 넌 부끄럽지도 않아?
네가 이렇게 즐기면서 학대하고 있는 아이는 바로 너, 꼬마란 말이야.'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목이 메일 듯이 가슴이 저며옴을 느끼며
나는 그 불우한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시작했다.
방방은 다리가 몹시 아픈지 내 곁에 와서는 땅 위에 주저앉았다.
난 그 아이 옆에 조용히 앉았다.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건네 보았다.
오렌지도 한 개 사주었다. 발이라도 씻겨 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날 이후로 방방은 내 가장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 아이의 눈물겨운 사연도 알게 되었다.
방방은 자식을 교육시켜 보겠다는 일념 하에 온갖 희생을 마다 않는 한 대장장이의 아들이었다.
그는 자기 아들을 중학교에 보내려고 갖은 애를 다 썼다.
하지만 슬프게도 방방은 학교 생활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아이였다.
아무리 학교를 다녀도 그에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가 처음 학교에 등교하던 날 한 선생이 그에게 글씨본을 주면서
"이걸 보고 한 획씩 그으면서 글시 연습을 하거라."하고 말했었다.
그래서 방방은 일 년 전부터 글씨 연습을 계속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맙소사! 방방의 글씨는 마구 엉킨 철조망처럼 괴발개발로 휘갈겨 놓은 것이었다.
도저히 글씨라고 할 수 없는 난해한 상형문자 같았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쏟질 않았다.
그는 특별히 어느 학급에 속하지도 않아
학교에 와서는 대개 문이 열려 있는 교실로 그냥 들어가곤 했다.
언젠가는 철학수업 시간중에 글씨 연습을 하고 있는 그를 발견한 적도 있었다.
방방은 참 이상한 아이였다.
나는 이따금씩 자습실에서 공책 위로 몸을 구부린 채
힘이 드는지 진땀을 흘리며 애쓰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곤 했다.
혀를 내민 채 펜대를 꽉 움켜쥐고서는
마치 책상을 뚫어 버리겠다는 듯이 있는 힘을 다해서 눌러 댔다.
한 자 한 자 쓸 때마다 그는 잉크를 새로 찍었으며,
한 줄이 끝나고 나면 혀를 집어넣고는 손을 비비며 한숨을 내몰아 쉬었다.
방방은 나와 친구가 된 이후로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한 페이지를 끝내고 나면 부랴부랴 교탁으로 기듯이 올라와서는 히죽 웃어 보일 뿐
아무 말 없이 자신의 걸작품을 내 앞에 올려놓았다.
나는 그 아이를 다정하게 살짝 토닥거려 주며 말했다.
"참 잘 썼구나!"
사실 그건 끔찍히도 못 쓴 글씨였다.
하지만 나는 그의 사기를 꺾고 싶지 않았다.
차츰 방방의 글씨는 나아져 갔으며 펜에서는 잉크가 덜 튕겼고 공책에도 잉크가 덜 묻기 시작했다.
이젠 그 아이에게 뭔가 가르쳐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운명이 우릴 갈라 놓고 말았다.
중급을 맡았던 교사가 학교를 떠나게 되었고 학기가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교장선생님은 새로운 교사를 맞으려 하지 않았다.
턱수염이 난 수사학급 학생 하나가 하급반을 맡았고,
그 대신 나는 중급반을 맡게 되었다.
나는 그 일을 크나큰 불행으로 생각했다.
야외수업을 갈 때마다 나는 그들의 행동을 먼 발치에서나마 보아 왔는데
그들이랑 함께 계속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꽉 막히면서 답답해 왔다.
더군다나 나는 내가 무척이나 사랑했던 하급반 아이들과 헤어져야만 했다.
턱수염인 난 그 수사학급 학생이 그들을 어떻게 다룰지 눈에 보이듯 선했다.
방방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난 정말 불행을 타고난 인간이었다.
하급반 학생들도 나란 헤어지는 것을 나만큼이나 슬퍼했다.
마지막 수업시간을 끝내는 종이 울렸을 때 난 코끝이 시큰해지며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아이들은 충혈된 눈으로 내 주위를 어정대며 나를 한번 껴안고 싶어했고
어떤 아이들은 울먹이며 날 위로해 주기도 했다.
좀 떨어져 있던 방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줄곤 바라보고만 있었다.
내가 교실 문을 나서려는 순간, 그는 얼굴이 홍당무같이 빨개져서는 내게 다가오더니
으젓한 몸짓으로 온 정성을 다해 쓴 멋진 글씨본을 내 손에 쥐어 주는 것이었다.
날 위해 쓴 글씨본을 말이다.
불쌍한 방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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