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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18 - 알퐁스 도데

Joyfule 2012. 5. 17. 11:29
 
 
꼬마 철학자18 - 알퐁스 도데  
 
   사랑하는 사람들

   그렇게 해서 나는 중급반의 자습갑독 교사가 되었다.
   중급반 학생들은 통통하게 살이 오르기 시작한 
   열두 살에서 열네 살 사이의 산골 출신의 악동들로 약 오십 명쯤 되었다. 
   그들은 부모들은 대개 자식들이 자기들보다는 
   좀더 나은 경제적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교육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며 자식들을 학교에 보냈다. 
수업료도 석 달에 백이십 프랑에 불과했다.
그들은 몹시 무례하게 행동했으며 교만하고 건방지기 이를 데 없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거친 세벤느 지방 사투리로 저희들끼리 쑥덕거리는 것도 그랬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변성기를 거치고 있어서 옆에서 듣고 있기란 정말 괴로운 노릇이었다. 
동상에 걸려서 시퍼렇게 언 커다란 손, 병든 수탉 같은 목소리, 
항상 흐리멍텅하기만 한 시선 등 그맘때의 중학생들의 모습 꼭 그대로였다. 
그들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아보려 하지도 않고 
무턱대고 나를 경멸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습감독 교사인 나에게 적대감을 갖고 대했다. 
내가 교단에 선 첫날부터 우리 사이엔 불꽃 튀는 전쟁이 벌어졌다. 
그것은 휴전도 없고 끝도 없는 격렬한 전투였다.
매정하고 쌀쌀맞은 중급반 아이들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지금 나는 그들에게 어떤 앙심도 품고 있지 않다. 
단지 그들과 보내야 했던 괴로운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뿐이다. 
슬픔과 괴로움으로 뒤범벅된 그 시간들은 멀리멀리 사라져 버렸으니까! 
그러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내 손은 흥분과 감동으로 떨리고 있다. 
마치 내가 아직도 그때 그곳에 있는 듯 한 생각이 든다.
어리고 말썽만 피우던 제자들도 이제 점잖은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수베롤은 세벤느 지방 어디에선가 공증인 노릇을 하고 있을 것이며, 
그의 동생인 베이옹은 재판소 서기가 돼 있을 것이다. 
그리고 루피는 약사가, 부장께는 수의사가 되었겠지.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 기반을 닦은 그들은 기름기가 끼어 불룩하게 배가 나오고 
사랑하는 아내와 한두 명의 자식도 거느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 내가 자습감독 교사였다는 것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내가 더욱 근엄하게 보이려고 걸치고 다녔던 멋진 코안경도 그들은 더이상 기억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아무 걱정 없이 일상생활 속에 파묻혀 살다가 
이따금씩 클럽이나 교회 또는 광장 같은 데서 자기들끼리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그 즐거웠던 중학시절을 회상하며 떠듬떠듬 얘기를 꺼내게 될 것이고 
어쩌면 내 얘기를 한두 마디 내뱉게 될지도 모르겠다.
 "야, 베이옹, 너 그 에세뜨라는 꼬마선생 생각나냐? 
우리가 싸르랑드 중학교 다닐 때 자습감독하던 그치 말이야. 
머리가 길고 머리가 파리하던 친구 생각나? 우리가 실컷 골려먹었지!"
이제는 신사가 된 그들이 아직도 낄낄거리며 오가는 말들엔 
사실 옛날을 그리워하는 감정이 잔뜩 배어 있으리라. 
그들은 나를 실컷 골려 먹었던 학창시절을 아마도 잊지 못할 것이며, 
그들의 옛날 자습감독 교사였던 나 역시 그 일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 자습감독 교사 참 불쌍했어. 
우리는 그치 때문에 정말 실컷 웃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 선생은 얼마나 또 얼마나 울었니. 
그래, 많이도 울렸어! 하지만 울리면 왜 그리 재미있었는지 
장난을 도저히 그치지 못하겠더라니깐.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참 안 됐어."
수난의 하루가 지나고 나면, 침대에 쪼그리고 앉아 나는 
그들이 행여나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까 담요를 깨문 채 울곤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린 악동들에게 둘러싸여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두려워하면서 
잠시도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운 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었다. 
사람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불공평한 짓을 하기 마련이다. 
그 당시 나는 그들을 공연히 의심하고 벌을 주곤 했지만 
그럴수록 도처에 더욱 많은 함정을 파놓고 그들은 여유를 부렸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조용히 마음놓고 식사 한번 제대로 할 수가 없었으며 잠도 잘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휴식시간중에도 '오! 하나님! 저 자식들은 날 골리려고 무슨 꿍꿍이짓을 하는 걸까?'
하고 생각하며 전전긍긍해야 했으니 정말 끔찍한 나날이었다.
그렇다. 앞으로 백 년을 더 살고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 기억이 희미해진다 해도 
자습감독 교사 다니엘 에세뜨는 중급반 자습시간에 처음 들어갔던 
그 음산한 날로부터 시작된 수많은 고통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하급반에서 중급반으로 옮겨 감으로써 
내 인생에 새롭고 벅찬 또다른 계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가슴 깊이 묻어둔 그 검은 눈동자의 아가씨를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하루에 두 번씩 휴식시간 때마다 중급반 운동장 구석에 있는 이층 건물의 창문을 통해 
나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검은 눈동자 아가씨를 멀리서나마 바라 볼 수 있었다. 
흑진주처럼 빛나는 그녀의 눈은 더욱 커진 듯했다. 
그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무릎 위에 바느질감을 올려놓고는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손을 늘려 댔다. 
그녀는 온종일 오로지 바느질만을 해대면서도 조금도 싫증이 나지 않는 듯 
그녀의 손놀림과 표정은 언제나 경쾌해 보였다. 
잠망경 같은 안경을 쓴 섬뜩하게 생긴 마귀할멈은 
고아원에서 그녀를 돈을 주고 데려와 잠시도 놀리지 않고 오직 바느질만 시켰다. 
그녀는 일년 내내 쉴새없이 바느질만 했다. 
그 옆에는 안경잡이 마귀할멈이 물레에서 연신 실을 뽑아 내면서 
날카롭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감시하며 앉아 있었다.
휴식시간만 되면 나는 이층 창문을 우두커니 올려다보며 
슬픈 검은 눈동자 아가씨에 대한 애틋한 생각에 잠기곤 했다. 
매번 휴식시간은 너무도 짧게 느껴졌고 아가씨가 바느질하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그 축복받은 이층창문 아래서 일생 동안 그녀를 바라보며 살아도 부족할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녀 역시 언제나 그곳에 와서 자기를 올려다보고 있는 내 존재를 의식하고 있는 듯했다. 
이따금씩 그녀는 바느질감에서 눈길을 들어 내 쪽으로 애절한 시선을 보내곤 했다. 
그녀는 한번도 내게 말을 걸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녀의 검은 눈동자 속에서 많은 사연을 읽어 낼 수 있었다.
  '당신은 정말 불쌍하시군요., 에세뜨 씨.'
  '당신은 너무 애처로와 보여요, 검은 눈동자 아가씨.'
  '저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안 계세요.'
  '우리 가족들도 뿔뿔이 헤어져 살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떻게 사시는지도 모릅니다.'
  '당신도 보셨겠지만, 안경잡이 마귀할멈은 정말 무서워요.'
  '학생들은 날 몹시 괴롭힌답니다.'
  '용기를 가지세요, 에세뜨 씨.'
  '그래요, 당신의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만 보면 새로운 힘이 솟는 것 같아요.'
휴식시간은 너무도 짧아 우린 더이상 얘기를 나누지 못하고 아쉬운 작별을 고해야만 했다.
나는 비오 씨가 열쇠꾸러미를 흔들어 대면서 나타날까 봐 늘 두려웠고, 
그녀 역시 자신을 감시하는 마귀할멈이 두려워 늘 마음을 졸여야 했다. 
서로 무언의 대화를 나누던 행복한 순간은 잠시였다. 
그녀는 그 순간들을 떨쳐 버리고 재빨리 고개를 숙여 
커다란 강철테 안경을 걸친 마귀할멈의 매서운 눈총을 받으며 다시 바느질을 시작해야 했다.
나의 소중한 검은 눈동자 아가씨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직접 만나 얘기해 보지는 못했다. 
다만 서로의 시선 속에서 마음을 읽어 내며 은밀한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아 가엾은 아가씨....
그곳에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 또 하나 있었다. 
제르만느 신부님, 바로 그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