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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19 - 알퐁스 도데

Joyfule 2012. 5. 18. 11:33
 
 
꼬마 철학자19  - 알퐁스 도데  
 
   사랑하는 사람들 2

   제르만느 신부님은 철학 교사였다. 
   그는 괴짜로 통했는데, 학교 안의 모든 사람이, 
   심지어는 교장선생님이나 비오 씨까지도 그를 두려워했다. 
   그는 늘 단호한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말하는 과묵한 인물로서 
   누구에게나 반말을 했고, 머리를 뒤로 젖히고는 
신부복 자락을 펄럭거리며 바람이 일 정도로 성큼성큼 걸어다녔다. 
그러면 그의 구두 뒤축에 달린 박차는 마치 수많은 용기병들이 대열을 따라 
씩씩하게 행군하는 것처럼 쩡쩡 울리는 것이었다. 
그는 키도 크고 어깨도 떡 벌어진 듬직한 체구였으며 
나는 한동안 그가 굉장히 남자답게 잘생겼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 가까이에서 그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사자와도 같이 기세등등한 위엄 있는 그의 얼굴엔 온통 천연두자국이 끔찍하게 박혀 있었고, 
더군다나 온통 찢기우거나 칼에 긁혀 꿰맨 자국이 
얼굴 전체를 일그려뜨려 아주 흉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영원히 저주받게 될 혁명가놈들의 우두머리인 미라보가 신부복을 입고 있는 듯했다.
옛날에는 교실로 사용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다 낡고 음침해 보이는 건물이 
운동장 한쪽에 서 있었는데 신부님은 그 건물 끝에 있는 자그마한 방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우리 중급반의 못돼먹은 말썽꾸러기 망나니 두 녀석들이 바로 그의 동생들이었는데 
그 둘을 제외하고는 신부님의 방에 들어가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밤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숙사로 돌아가려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다 보면 
다 쓰러져 가는 그 음침한 건물에서 가느다랗고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바로 제르만느 신부님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램프 불빛이었다. 
그리고 졸린 눈을 비비면서 아침 6시의 자습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재촉하노라면 아직도 타오르고 있는 램프의 불빛이 
어스름한 여명의 희뿌연 안개 속을 뚫고 흘러나오는 것이 보이곤 했다. 
제르만느 신부님은 그때까지도 자지 않고 밤새도록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것일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방대한 철학서를 집필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그 이상한 신부님과 친분을 맺기 이전부터 나는 그에 대해 일종의 공감을 느끼고 있었다. 
칼자국과 곰보가 끔찍하긴 했지만 윤곽이 뚜렷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그의 용모에서 난 아주 커다란 매력을 느꼈다. 
다만 보통사람과 다른 그의 괴벽과 거친 성격에 관한 소문 때문에 
지레 겁을 먹고 감히 그에게 접근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일단 몰두하기만 하면 빠져나오지 못하고 열중하는 성격 때문에 
나는 어느날 그의 방을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시 나는 철학사에 완전히 심취해 있었는데 
아직 어린 나로서는 그 철학사 공부란 것이 힘겹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꽁디악의 작품을 읽고 싶다는 욕망을 도저히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사실 꽁디악의 철학세계는 아주 천박하여 값어치없는 보석반지의 작은 알에도 
다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아주 협소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꼭 읽어 봐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의 철학사상은 보잘것없는 것으로서 사람들은 그를 사이비 철학자라고까지 불렀다. 
하지만,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한번쯤 객기를 부려 보기 마련이고, 
모든 인간사에 대해서 회의적이고 삐딱한 생각을 가지며, 
무엇이든 자기가 직접 뛰어들어 경험해 보기를 원한다.
그래서 나 또한 꽁디악의 철학세계를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난 기어이 꽁디악의 작품을 구해서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학교 도서관에는 그의 책이란 단 한 권도 없었고 
싸르랑드 시립 도서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책을 구하지 못해 고심하던 중 나는 언젠가 그의 동생들로부터 
제르만느 신부님의 방에는 2천 권도 넘는 장서가 구비되어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 생각나다. 
그래서 나는 제르만느 신부님에게 부탁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가 가진 2천 권도 넘는 장서 중에서 분명히 꽁디악의 책도 있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책을 읽고 싶어도 괴팍한 성격을 지닌 그 사람이 
너무도 무서웠기 때문에 그를 찾아갈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다. 
꽁디악의 작품을 그렇게 열렬히 원하지 않았더라면 
감히 그 음침한 구석진 방에 올라갈 마음조차 먹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뜸을 들이다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하고도
몇 번을 망설인 끝에야 그 음침한 건물로 발걸음을 옮겼고 
드디어 문 앞에까지 도착했는데 그냥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 
잠시 망설이며 주저하다가 용기를 내 나는 조심스럽게 살짝 문을 똑똑 두드렸다.
  "들어오시오!"
그 무시무시한 제르만느 신부님은 다리를 떡 벌린 채 
낮은 의자 위에 말타듯이 걸터앉아 책을 복 있었다. 
칭칭 걷어 올린 신부복과 검정색 비단 양말 사이로 굵은 다리 근육이 툭 불러져 나와 있었고 
그는 의자 등받이에 팔꿈치를 기댄 채 무슨 책인지 붉은 장정이 된 
이절판 크기의 책을 읽으면서 조그마한 갈색 도자기 파이프를 피워대고 있었다.
그는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치켜들고 나를 보더니 의외라는 듯 물었다.
  "아, 아니 자네가!... 그래 잘 지내고 있나? 그런데 왠 일로 여기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그의 목소리, 책으로 꽉 들어 차 학구적인 검소한 분위기가 배어 있는 방안, 
말타듯 앉아 있는 그의 위엄있는 모습. 연신 연기를 뿜어 내고 있는 그 짧은 파이프,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겨우 용기를 내서 찾아온 이유를 말하고는 
꽁디악의 책을 빌려 줄 수 있겠느냐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부탁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꽁디악이라! 꽁디악의 책을 읽고 싶단 말이지? 
참 이상한 데 관심을 갖고 있군 그래. 그렇지 않은가? 
적에 벽에 걸려 있는 저 멋진 파이프로 한번 피워 보게... 
이 세상의 어떤 꽁디악보다도 그게 훨씬 더 낫다는 걸 금세 알게 될 걸세."
나는 얼굴을 붉히며 사양한다는 몸짓을 했다.
 "싫은가?... 그렇다면 맘대로 하게나, 그건 자네 자유니까... 
자네가 찾는 꽁디악은 왼쪽 세번째 책장에 있다네. 
가져 가도 좋아. 빌려 주지. 찢거나 낙서는 하지 말게. 
그런다면 내가 자네 귀를 잘라 버릴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왼쪽 세번째 책장에서 꽁디악의 책을 집어들고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깨끗이 보고 갖다 드리겠다고 말하고 나가려고 하는데 신부님이 나를 잡았다. 그
러더니 그는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자네가 철학에 몰두해 있단 말이지?... 자넨 우연히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겠지?... 
그 빌어먹을 철학, 순수한 체하는 그 철학이 나를 철학 선생으로 만들려 했었단 말이야. 
하지만 뭘 가르친단 말인가? 완전한 무를... 
그놈의 철학은 날 운명의 총무감독관이나 파이프 담배 연기 심사관으로 임명할 수도 있었어. 
내가 비록 그놈에게 심취되어 있긴 했지만 말이야. 아! 정말 불쌍한 신세지! 
밥벌이를 하려면 이따금씩 원치 않는 일도 해야 하는 게지... 
자네도 그런 건 좀 알 텐데, 안 그런가?... 아, 얼굴을 붉힐 것까진 없네. 
우리 불쌍한 꼬마 자습감독 선생, 난 자네가 결코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 
아이들이 자넬 몹시도 괴롭히고 못살게 군다는 것을 말이네."
여기까지 말하더니 제르만느 신부님은 갑자기 말을 중단했다. 
그는 무엇엔가 매우 화난 듯 보였으며, 손톱에다 파이프를 대고는 사납게 탁탁 털어 내고 있었다. 
그토록 존경했던 사람이 나의 운명에 대해 관심을 보이자 나는 목이 메일 정도로 감격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솟아나오는 닭똥 같은 눈물을 감추느라 꽁디악의 책으로 얼른 눈을 가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부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자네한테 물어 볼 게 있었는데... 자네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나? 
자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네, 알겠나? 여보게, 하나님을 믿고 열심히 기도하게. 
그렇지 않으면 자넨 곤경에서 절대로 헤어날 수가 없어... 
난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을 덜기 위해선 오로지 세 가지 치료 방법밖엔 없다고 믿고 있지. 
일과 기도와 그리고 파이프... 흙으로 빚어 구운 작은 파이프 말일세. 
자네도 잘 기억해 두게... 철학자들은 믿지 않는 게 좋아. 
그들은 자네를 절대로 위로해 주지 못할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난 그 정도는 아니니까 자넨 날 믿어도 좋을 걸세."
  "전 당신을 믿고 있읍니다. 신부님!"
  "그럼 됐네. 이젠 나가 주게. 피곤하군... 책이 필요하면 그냥 와서 가져가도 좋네. 
방 열쇠는 문턱 위에 있고, 철학책은 왼쪽 세번째 책장에 꽂혀 있다네. 
더이상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말게... 그럼 잘 가게!"
그러고 나서 다시 아까처럼 책에 빠져들더니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내가 나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