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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21 - 알퐁스 도데

Joyfule 2012. 5. 21. 09:51
 
 
꼬마 철학자21 - 알퐁스 도데  
 
   괴롭고 긴 나날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 집으로 돌아가고 이제 학교는 텅 비었다. 
   모두들 떠나 버렸다. 
   고양이만큼 큰 쥐떼들이 마치 기병대가 행군을 하는 것처럼 
   밤이건 낮이건 온 기숙사 안을 설치고 돌아다녔다. 
아이들의 잉크병은 잉크가 말라 붙은 채 책상 속에 처박혀 있었다. 
운동장의 나뭇가지에선 참새떼들이 짹짹거리며 축제를 벌였다. 
참새들은 학교의 주인이나 된 듯 주교와 군수의 대저택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모조리 초대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귀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짹짹거렸다.
나는 지붕 밑에 있는 다락방에서 그 짹짹거림을 참아가며 공부했다. 
참새떼와 나만이 남아 그 큰 학교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내가 방학 동안 그 방을 써도 된다고 허락하며 
대단한 자비를 베푼다는 듯이 교만을 떨었었다. 
어쨌든 나는 홀로 남아 그 방에서 그리스 철학을 죽어라 파고 있었다. 
하지만 천정이 너무 낮은 그 다락방은 내리쬐는 햇볕을 고스란히 받아 숨이 막힐 정도로 푹푹 쪘고 
덧문도 없는 창문으론 횃불을 들이대듯 햇빛이 들어와서는 방안 구석구석에 불을 질렀다. 
대들보에 발라 놓은 석회가 와지끈소리를 내며 깨지더니 부스스 떨어져 내렸다. 
더위에 지쳐 기력을 잃은 커다란 왕파리들이 창문에 착 달라붙어서 꼼짝 않고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숨이 막혀 헉헉거리며 잠을 쫓느라 갖은 애를 다 썼다. 
머리는 천근이나 되는 납덩이처럼 무거웠고 눈꺼풀은 바들바들 떨렸다.
 '공부를 해라, 다니엘 에세뜨! 다시 집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아무리 다짐하고 애를 써 보아도 어쩔 수가 없었다. 
책 속의 글씨들이 눈앞에서 춤을 추더니만 책이, 책상이, 방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참으려고 애써도 자꾸만 밀려오는 졸음을 쫓기 위해 나는 일어나서 몇 걸음 걸어 보았다. 
문 앞까지 갔을 때 다리가 휘청휘청하더니 중심을 잃고 바위덩어리모양 방바닥에 쿵 쓰러졌다. 
조수같이 졸음이 밀려 왔다. 견딜 수가 없었다.
참새들의 짹짹거림과 매미들의 노래소리가 아련히 들려 왔다. 
하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플라타너스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비늘처럼 부숴져 내렸다. 
대기는 들끓고 아른아른 아지랑이가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며 우렁찬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다니엘! 다니엘!"
그 목소리는 옛날엔 매일 들을 수 있었던 정다운 목소리, 
"자끄, 이 당나귀같이 멍청한 놈아!"라고 소리치던 그 목소리였다.
 그는 더욱 세게 문을 두드렸다.
 "다니엘, 니 애비다. 빨리 문 열어라."
나는 반가움에 겨워 얼른 대답을 하고 빨리 문을 열고 싶었다. 
하지만 일어서려고 아무리 팔꿈치를 딛고 안간힘을 써도 
머리가 너무나 무거워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고는 더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얼마나 잤을까? 깨어 보니 주위는 온통 그늘을 드리우는 푸른색 커튼이 둘러쳐져 있었고 
나는 순백색 침대에 몸을 쭉 뻗은 채 길게 누워 있었다. 
커튼 사이로 한 줄기의 부드러운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방안은 정적에 감싸여 무척 조용했다. 
어디선가 벽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와 수저가 그릇에 부딪쳐 쨍그렁하는 소리가 나직이 들려 왔다.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머리도 무겁지 않고 마음은 착 가라앉아 아주 평온했다.
한쪽 커튼을 살짝 들치며 누군가 들어왔다. 
두 눈에 눈물이 고이고, 입에는 미소를 띠고, 손에 잔 하나를 든 그분은 바로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다가와서 내게 몸을 숙이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했다.
  "아... 아버지세요? 정말 아버지시죠? 맞죠?"
  "그래, 그렇단다, 다니엘. 맞아, 우리 귀여운 아가, 바로 나란다."
  "아니, 어떻게... 그리고 여긴 어디죠?"
  "의무실이야. 벌써 여드레나 됐다... 이젠 다 나았어. 그동안 다니엘,
 넌 무척 아팠단다. 한번도 깨어나지 않고 고열에 시달리며 신음소리를 내고...."
  "아니, 꿈을 꾼 것 같아요. 전 전혀 기억이 없는데요? 
그런데 아버지, 아버진 여기 어떻게 오셨어요? 
아! 아버지 저를 안아 주세요! 아버지를 보다니 정말 꿈만 같아요."
아버지는 나를 껴안아 주었다.
  "자! 이젠 그만 얘기하려무나! 자, 착하지? 
의사선생님이 네가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
내가 말하지 못하도록 이르고서, 아버지는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를 자세히 말해 주었다.
 "여드레 전에 지금 다니고 있는 포도주 회사에서 세벤느 지방으로 출장을 가라고 하더구나. 
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넌 알 수 있을 거다. 사랑하는 너를 만나 볼 수 있으니까 말이야. 
얼마나 기쁘던지. 그래서 세벤느에 도착하자 말자 널 보려고 학교로 달려왔어... 
네 이름을 마구 부르며 찾았지만 너는 보이지 않더구나. 
그러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네 방으로 나를 데려다 주었어. 
그런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은 없고 
방문은 안으로 잠긴 채 열쇠도 안에 있는지 도저히 문을 열 수가 없더구나.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 네 방문을 발로 걷어찼단다. 
들어가 보니 너는 방바닥에 쓰러져 있고 머리가 펄펄 끓으며 열이 대단히 심하더구나!... 
얼마나 애처롭던지, 차마 볼 수가 없었어... 넌 닷새 동안이나 헛소리를 해댔어. 
난 단 일 분도 네 곁을 떠나지 않고 너를 지켜보았는데 
무슨 집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던가, 집을 다시 짓겠다던가 하는 소리를 계속하더구나. 
도대체 무슨 집 말이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그런 헛소리까지 하는 거냐, 응? 
그리고 또 말이야. '열쇠 없어요? 자물쇠에 열쇠를 빼내요!'라고도 소리치더라. 
비오 씨란 그 사람 때문이냐? 비오 씨, 맞지? 미오 씨? 그치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그 사람은 날 학교에서  못 자게 하더라! 규정을 들먹여 가면서 말이야... 
그래 그 규정이란 거 말이야. 내가 그 사람이 말하는 그 규정을 다 알아야 되냐? 
그 몰상식한 유식쟁이는 내 코 밑에다 열쇠를 흔들어 대면 내가 겁을 먹으리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나는 그 인간한테 따끔한 맛을 보여 줬단다. 
예의에 어긋나지 않고 아주 정중하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