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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2. - 알퐁스 도데

Joyfule 2012. 4. 29. 19:26
 
 
꼬마 철학자2. - 알퐁스 도데  
 
랑그도끄에서의 어린시절2.
그당시만 해도 아버지는 신경통 같은 잔병을 치른 적이 없었는데, 
몰락의 길로 치닫는 자신을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하는 고통으로 말미암아 
그는 그 누구도 감히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무서운 인물로 변해 갔다. 
화를 삭이지 못하고 혈압만 높아져 가자 그는 보름에 두 번씩 피를 뽑아내야만 했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 두려웠던 것이다. 
우리는 식탁에서도 소곤거리듯 낮은 목소리로 빵을 건네달라고 말했으며, 
아버지 앞에서는 슬프다는 기색조차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지내야 했다. 
어머니, 안누 할머니, 자끄 형, 그리고 신부인 큰형과 내가 한데 어울려 
조금씩 슬픔을 전염시키면서 울기 시작하면 어느새 울음바다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어머니가 불쌍한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그러나 큰형과 안누 할머니는 서럽게 울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울었다. 
나보다 두 살 위였던 자끄 형은 우리 집안에 몰아닥친 불행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대소변을 누듯 밤낮을 가리지 않고 습관적으로 울었다.
자끄 형은 정말 이상한 아이였다. 타고난 울보였다. 
지금도 자끄 형을 생각할 때면 
가장 먼저 퉁퉁 부어오른 충혈된 두 눈과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던 뺨이 눈앞에 떠오른다. 
형은 해가 뜨는 걸 보고 울기 시작해서 해가 질 때까지 쉬지 않고 울었으며,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온종일 눈물짓고 있었다. 
심지어는 길을 걸으면서도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뿌려 댔다. 
누군가 "도대체 무슨 일이니?"하고 물으면 그는 더욱 목청을 돋우어 엉엉 소리내 울면서 
"아무것도 아녜요"라고 짤막하게 대꾸해 버리고는 또다시 울음 속에 빠졌다. 
아무 이유도 없이 형이 그토록 울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마치 감기에 걸려 코가 줄줄 흘러나오듯 형의 두 눈에선 언제나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다른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이따금씩 화가 난 아버지는 어머니한테 불만스럽게 말했다.
  "저 아인 정말 우습군. 저앨 좀 봐요. 눈물이 마치 강물처럼 흐르잖아."
그러면 어머니는 걱정스런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전들 어떡하겠어요? 커 가면서 나아지겠지요. 저 나이 땐 저도 그랬어요."
자끄 형은 하루하루 성숙한 모습으로 자랐지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버릇은 여전했다. 
오히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물을 펑펑 쏟아 낼 수 있는 기묘한 습관은 갈수록 더욱 심해져 갔다. 
그래서 부모님들의 걱정과 슬픔은 나날이 더욱 커져 가게 되었다. 
드디어 형은 하루종일 내킬 때마다 마음껏 울어 댔다. 
이젠 
"도대체 무슨 일이니?"하고 묻는 사람조차 없어졌다.
우리 집의 몰락은 나와 자끄 형에게 재미있는 일들을 가져다 주었다. 
나로 말하자면 무척 즐거웠다. 
일일이 간섭하며 귀찮게 구는 사람도 없어졌다. 
그래서 나는 종일 루제와 함께 마치 교회당에서처럼 
발을 구르면 쾅쾅 발자국소리가 울려퍼지는 텅 빈 썰렁한 공장과 
벌써 잡초가 듬성듬성 돋아나는 버려진 허허로운 커다란 뜰을 온통 휩쓸고 다니며 놀곤 했다. 
문지기 꼴롱브의 아들 루제는 열두어 살쯤 된 짜리몽땅하고 똥똥한 아이였는데, 
황소처럼 힘이 셌고, 개처럼 헌신적이었으며, 거위만큼이나 멍청했다. 
그는 특히 타오르는 듯한 붉은색 머리칼 때문에 눈에 금방 띄었다. 
그가 '불그스럼한'이란 뜻의 루제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 것도 그의 붉은 머리색 때문이었다. 
하지만 루제는 내게 있어서만큼은 루제가 아니었다. 
그는 내가 명령만 내리면 로빈슨 크루소의 하인이었던 방드르디처럼 
충실한 내 부하 노릇도 서슴지 않았고, 
원시인이나 반란군이 되어 땀을 뻘뻘 흘리며 그들의 흉내를 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니엘 에세뜨가 아니었다. 
나는 짐승 가죽으로 너덜너덜한 옷을 해입은 기괴한 모습으로 
이제 막 모험을 시작하려는 로빈슨 크루소가 되었다. 
난 괴성을 질러 대며 즐거운 기분으로 그 모험놀이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미쳐 있었다. 
땅거미가 지고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저녁밥을 급하게 먹어 치우고 곧바로
 "로빈슨 크루소"에 매달려 눈을 감고도 
그 책을 술술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수십 번 읽고 잔 뒤 잠을 잤다. 
그리고 동이 트자마자 나는 전날보다 더 훌륭한 로빈슨 크루소가 되어 아주 열심히 모험을 즐겼다. 
내 주변에 널린 모든 것들은 모험의 무대로 변했다. 
공장은 폐허가 된 채 내팽개쳐진 공장이 아니고 내가 처음으로 발견한  무인도가 되었다. 
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살지 않는 무인도! 
물이 고여 있는 분수대는 대서양으로 변했으며, 정원은 울창한 원시림이 되었다. 
무성한 플라타너스 속에 숨어서 시끄럽게 울어 대는 매미떼들도 나의 모험에서 한몫을 했지만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매미들은 그저 맴맴거릴 뿐이었다.
루제 역시 매미들만큼이나 자기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누가 그에게 로빈슨이 누구냐고 물었다면 그는 매우 당황해서 허둥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굳은 각오로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으며, 
특히 원시인들이 흥분해서 요란하게 울부짖는 소리를 흉내내는 데는 
그를 따라갈 만한 아이가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도 나는 고백해야겠다. 
어디서 그걸 배웠을까? 
모르겠다. 
어쨌든 그가 까치집처럼 헝크러진 머리칼을 마구 흔들어 대면서 목구멍에서 토해 내는 
우렁차고 난폭한 포효는 제 아무리 용감한 사람이라도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로빈슨 역을 맡은 나까지도 가슴이 떨려 
그애한테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으니까.
  "너무 크게 소리치지마, 루제. 무섭단 말이야."
 유감스럽게도 루제는 원시인의 고함소리보다 
말끝마다 쌍소리를 내뱉는 부랑아들의 흉내를 더 잘 냈으며 
더구나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일도 서슴없이 했댔다. 
언제나 함께 살다시피 어울리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그런 욕지거리를 배우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온 식구들이 모여 식사하고 있는 도중에 
나는 참아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소리를 무심코 내뱉고야 말았다. 
갑자기 튀어나온 내 쌍소리에 온 식구들은 입을 쩍 벌리고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너 그런 욕 어디서 배웠니, 응? 어디서 들었느냔 말이야?"
그건 일대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저 녀석을 당장 소년원에 집어넣어야 한다며 노발대발했다. 
신부인 큰형은 내가 아직 철이 덜 나서 그러니 우선 고해를 시키겠다고 조용히 말했다. 
결국 난 고해실로 끌려 가게 되었다. 
정말 끔찍한 사건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7년 전부터 내 양심의 구석구석에 굴러다니던 
쓰레기 같은 옛 허물들을 긁어 모아야 했다. 
난 이틀 밤을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꼬박 새웠다. 
그동안 저질렀던 못된 죄가 한 바구니를 가득 채울 수 있을 만큼 많았던 것이다. 
더이상 들어갈 틈이 없을 만큼 바구니를 꽉꽉 채웠다. 
하지만 아무리 바구니를 채워도 또다른 허물들이 자꾸 그 모습을 슬금슬금 드러내는 것이었다. 
떡갈나무로 만든 자그마한 옷장 같은 고해실에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레꼴레 주임 신부에게 그 모근 것을 낱낱이 털어놓아야 했을 때, 
난 두려움과 수치로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죽어 버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