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 제랄드.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그녀에 대해서 화가 나기도 했으나
조금이라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서둘러 몸을 돌려 나왔다.
10월도 저물어 가는 어느 날 나는 탐 부캐넌을 발견했다.
그는 여전히 민첩하고 정력적인 걸음걸이를 하고 있었다.
마치 장애물을 밀어뜨리려는 듯이 손을 앞으로 약간 내뻗치고 두 눈을 두리번거렸다.
거기 맞춰서 머리를 이쪽저쪽으로 홱홱 돌리면서
5번가를 따라 내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그를 앞지르지 않기 위해 막 걸음을 늦추었을 때,
그는 걸음을 멈추더니 눈을 찡그리고
보석 상점의 유리창 속에 지그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별안간 나를 발견한 그는 뒤돌아 걸어오면서 손을 내밀었다.
"어떻게 된 거야, 닉? 모르는 척 하긴가?"
"그래, 내가 자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자네도 알고 있을 텐데."
"자네 미쳤군, 닉."
그는 빠른 말씨로 지껄였다.
"돌아도 크게 돌았어. 난 자네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탐."
나는 따지고 들었다.
"그 날 오후 윌슨에게 무슨 말을 했지?"
그는 아무 대꾸도 없이 나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나는 윌슨의 행방이 묘연했던 그 몇 시간에 대한
내 추측이 들어맞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돌아서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내 뒤로 한걸음 따라와 내 팔을 잡았다.
"난 그에게 사실을 말해 주었네."
그는 말했다.
"우리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이 문간에 나타났어.
난 사람을 시켜 우리 두 사람은 집에 없다고 전하도록 했지.
그랬더니 그는 막무가내로 이층으로 올라오려고 했네.
그 때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어.
만약 내가 그 차의 주인을 일어 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날 죽이고도 남았을 거네.
우리 집에 있는 동안 그는 줄곧 호주머니 속의 권총을 쥐고 있었다네-."
그는 짜증 섞인 태도로 말을 잠시 중단했다.
"내가 말해 준 게 어쨌다는 거지?
그 작자가 일을 그렇게 만든 거야.
그 작자는 데이지의 눈을 속인 것처럼 자네의 눈도 속인 거라네.
그러나 그자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네.
그는 마치 자네가 개 한 마리를 들이받듯이
마틀을 들이받고서도 차를 세우지조차 않았고 도망갔단 말이야."
다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말 못 할 사실을 빼고는
그 부분에 대해 나로서는 특별리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혹시 자네, 나는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는 줄 생각한다면-
이봐, 난 그 아파트를 내놓으려고 갔다가
그 망할 놈의 개먹이 비스켓 상자가 찬장 위에 놓여 있는 걸보고
주저앉아 어린애처럼 소리 내어 울어 버렸다네.정말 끔찍스러웠네-."
나는 그를 용서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한 일은 그 입장에서 보면
누가 뭐래도 정당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경솔하고 또 복잡하게 뒤얽혀 있었다.
탐과 데이지는 경솔한 인간들이었다-
물건과 사람들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자기들은
돈 속으로 또는 자기들의 한없는 경솔 속으로
또는 둘이 같이 있게 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간에 그 속으로 숨어 버렸다.
그리고 자기들이 일으킨 혼란을 다른 사람이 정리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나는 탐과 악수를 했다.
계속 고집을 부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 같았다.
왜냐하면 나는 갑자기 어린애와 얘기하고 있는 것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와 악수를 한 탐은 진주 목걸이-
아니면 단지 한 쌍의 커프스 단추를 사기 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를 사러 보석상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그의 촌스러운 까탈스러움을 영원히 떨쳐 버렸다.
내가 떠나던 날도 개츠비의 저택은 덩그러니 비어 있었다-
잔디는 이제 누군가 돌봐 주는 사람이 없어 내 집의 것과 마찬가지로 엉망이었다.
마을의 택시운전사 한 사람은 그 집 대문 앞을 지날 때면
반드시 잠깐 정차해 손가락으로 안쪽을 가리키고는 요금을 받았다.
아마도 바로 그 운전사가 사고가 일어난 날 밤
개츠비와 데이지를 이스트에그로 태워다 준 사람 같았다.
그래서 그는 그 사건에 대해 자기 생각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기차에서 내리면 그 사람의 차는 타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는 토요일 밤은 뉴욕에서 보냈다.
그 이유는 개츠비가 베풀었던 그 불빛 찬란하고 화려한
파티들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 생생했기 때문이다.
그 날도 여전히 그 정원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희미한 음악 소리와 웃음소리,
그리고 그의 저택 차도를 오가는 자동차 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았다.
하루는 실제로 그의 저택에서 차 소리가 명확히 들려 오고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그의 저택 현관앞의 계단을 비추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사람은 아마도 지구의 어딘가에 있다가
파티가 끝나 버린 줄도 모르고 찾아온 손님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날 밤 나는 짐을 챙긴 뒤 차를 식료품 가게에 팔아 넘기고
개츠비의 저택 가까이 다가가서 최후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힘없이 주저앉아 버린 그의 저택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어떤 개구쟁이가 벽돌 조각으로 흰 돌층계에 낙서한
외설스러운 말이 달빛을 받아 뚜렷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강판으로 갈기듯 구둣발로 그것을 문질러 지워 버렸다.
그런 다음 해변으로 어슬렁어슬렁 내려가 모래밭에 벌렁 드러누웠다.
웬만한 해안 시설들은 이미 문이 닫혀 있고
해협을 건너는 나룻배의 흐릿하게 움직이는 빛 이외에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없었다.
이윽고 달이 더 높이 떠오르자 여태까지
그 존재의 필요성을 느껴 본 적이 없는 집들이 뒤섞여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서서히 그 옛날 네덜란드 선원들의 눈에
위대하게 비친 그 오래 된 섬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 섬은 신세계의 싱그러운 녹색 젖가슴이었던 것이다.
그 사라져 버린 나무들,
개츠비의 집으로 가는 길을 만들어 주었던 그 나무들은
한때 모든 인간의 꿈 가운데서 마지막이면서도 가장 큰 꿈을 바라보며
속삭여 줌으로써 힘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지나가 버린 순간의 매혹적인 시간에 사람들은 이 대륙의 존재 자체에 숨을 죽였고
놀라움을 대하는 자신의 능력과 어울렸던 그 어떤 것을
역사상으로 마지막으로 마주 보고 서서 이해할 수도 없고
소망하지도 않은 일종의 심미적인 명상 속에 자신도 모르게 잠겼던 것이다.
해변에 앉아서 과거를 알 수 없는 세계에 관한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개츠비가 처음으로 데이지의 집과 이어진 부두 끝에서 비추던
녹색 불빛을 찾아냈을 때의 놀라움에 대해서 되새겨 보았다.
그는 긴 여행 끝에 이 푸른 잔디밭으로 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꿈은 당연히 실현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실패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그 꿈이 이미 자기를 등지고
공화국의 어두운 들판이 밤의 밑바닥으로 굴러가고 있는 도시 저 너머의
광대하고 흐릿한 어느 곳으로 물러가 버렸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개츠비는 해가 거듭될수록 우리들 앞에서 뒤로 물러가고 있는
그 녹색 불빛을, 그 격정의 미래를 굳게 믿었던 것이다.
그 때 그것은 우리들을 피해 갔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달려서 팔을 더 길게 내뻗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화창한 아침에-.
그래서 우리는 물살에 부딪치며 노를 젓고 끊임없이 과거 속으로 흘러갈 것이다 ㅡ 끝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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