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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3 - 알퐁스 도데

Joyfule 2012. 4. 30. 21:27
 
 
꼬마 철학자3 - 알퐁스 도데  
 
랑그도끄에서의 어린시절 3.
고해와 더불어 모든 게 끝났다. 
난 더이상 루제와 놀고 싶지 않았다. 
악마가 사자처럼 어슬렁대며 우리 주위를 영원히 맴돈다는 
성 바울의 말을 레꼴레 주임신부가 내게 했을 때, 난 그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는 사탄이 우릴 유혹하기 위하여 갖가지 모습으로 변신한다는 사실도 생생하게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사탄이 루제의 살갗 밑에 숨어서는 
내게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말을 가르쳐 주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나의 충실한 방드르디에게 
앞으로는 절대로 집에서 나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며 다짐을 받아 냈다. 
불쌍한 방드르디! 
가엾은 루제는 가슴이 메어질 만큼 괴로와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나의 명령에 따랐다. 
이따금씩 공장 옆에 있는 자기집 문간에 기대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띄곤 했다. 
그럴 때 그의 모습은 슬픔으로 가득 찬 채 외로움으로 얼어붙은 듯했다. 
내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그 불쌍한 아이는 갑자기 생기가 돌아 
붉은 머리칼을 나부끼며 원시인의 무시무시한 고함을 질러 대서 
어느결에 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곤 했다. 
하지만 그가 더욱더 크게 목청껏 소리를 지를수록 나는 점점더 그에게서 멀어져만 갔다. 
불현듯 그가 고해소에서 신부님들께 들은
 '악마가 변신한 사자'를 닮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향해 외쳤다.
  "꺼져! 난 네가 무섭단 말이야!"
루제는 그날 이후로도 며칠 동안 계속 고집스럽게 괴성을 질러 댔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그가 문간에 서서 계속 괴성을 지르는 데 질려 버린 그의 아버지가 
남들 귀찮게 고함을 치고 싶어 미치겠거든 
도제 노릇이나 하면서 네 맘대로 소리를 지르라고 그를 멀리 보내 버렸다. 
나의 방드르디가 그렇게 훌쩍 떠나 버린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러한 고통스러운 일을 겪고 났다고 해서 
로빈슨 크루소 놀이에 대한 나의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즈음에 바티스트 삼촌이 갑자기 자신의 앵무새에 싫증이 났다고 하면서 그걸 내게 주었다. 
그 앵무새가 나의 충실한 방드르디 역할을 대신해 주었다. 
나는 앵무새를 예쁜 새장에 넣어 겨울이면 거처하는 오두막의 한 귀퉁이에 매달아 두었다.
나는 그 흥미로운 새와 온종일 머리를 맞댄 채 
'로빈슨, 나의 불쌍한 로빈슨!'이라고 그 새가 말할 수 있게 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런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었다. 
끝도 없이 지겹게 수다를 떨어 대는 게 지겨워서 바티스트 삼촌이 내게 주셨던 그 앵무새는 
내게 온 뒤로부터 한사코 말을 하려 들지 않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불쌍한 로빈슨'이란 말은 입도 벙긋하려 들지 않았다. 
나는 사람처럼 말을 한다는 그 새에게서 단 한마디도 들어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앵무새를 무척 사랑했고 온 정성을 다해 보살펴 주었다.
나와 앵무새는 눈물이 날 만큼 지독한 고독 속에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참으로 묘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 완전 무장을 하고 일찌감치 오두막을 나온 내가 내 무인도를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멀리서 서너 명쯤 되는 사람들이 요란한 손짓과 함께 
큰 소리로 떠들면서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아니, 이럴 수가! 내 섬에 사람들이 있었다니! 
나는 재빠르게 협죽도나무 뒤에 배를 납작하게 깔고 몸을 숨겼다.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한 채 그대로 내 옆을 지나쳐 갔다. 
왁자지껄 떠들며 지나가는 무리 속에서 문지기 꼴롱브의 목소리도 섞여 들려 왔다. 
귀에 익은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방망이질하듯 두근거리던 내 가슴은 조금쯤 진정되었다. 
그들이 차츰 멀어지자 나는 협죽도나무 뒤에서 나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알아 보고 싶은 호기심에 멀찌감치 떨어져서 조심스레 뒤따라갔다.
느닷없이 나타난 낯선 사람들은 내 무인도에 도착해 오랫동안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들은 내 동굴 속까지 침입해 들어갔고, 
지팡이로 대서양의 깊이를 재어 보기도 하는 등 분주하게 몰려다녔다. 
간혹 가다가 그들은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기도 했다. 
그러자 그들이 혹시 내 거처를 찾으러 온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 왔다. 
그렇다면 난 어떻게 되는 걸까? 
삼십여 분이 지나자 그들은 그 무인도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했는지 떠나가 버렸다. 
그들이 사라지자마자 나는 고꾸라지듯 오두막으로 달려가 꼼짝 않고 웅크려 앉은 채, 
그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길래 이곳에 몰려 왔는지를 
골똘히 생각하면서 그날 하루를 고스란히 다 보내고 말았다.
그날 저녁, 온종일 품고 있던 의문들이 모두 풀렸다.
저녁식사 때였다. 
아버지는 오늘 낮에 드디어 공장이 팔렸기 때문에 
한 달 안으로 서운하고 괴롭지만 이 정든 집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며 
이제는 리용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 할거라고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무서우리만큼 큰 충격이었다. 
하늘이 다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공장이 팔리다니! 
아! 나의 무인도와 동굴과 오두막을 아버지가 모두 팔아 버렸다니! 
그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만 하다니!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한 달 동안 내내 집안식구들이 거울과 식기류 등 이삿짐을 분주하게 꾸리는 동안 
나는 줄곧 슬픔에 잠겨 공장 구석구석을 홀로 거닐어 보았다. 
이제 더이상 놀고 싶다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 결코 그렇지는 않아... 나는 공장의 이 구석 저 구석을 돌아다니다가 
플라타너스나 분수대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들을 보며 사람에게 하듯이 말을 걸었다.
  "안녕, 사랑하는 친구야!"
  "마지막이구나, 이제 우리는 서로 만날 수 없을 거야!"
나는 목이 메어 울먹였다. 
뜰 한구석에 서 있는 석류나무에 따뜻한 햇살을 받아 활짝 피어난 
빨간 꽃송이들이 짙은 향기를 그윽하게 풍겼다. 
나는 석류나무 곁에 기대서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면서 읊조렸다.
  "석류나무야! 네 꽃송이를 하나만 주겠니?"
  석류나무는 내게 꽃 한 송이를 주었다. 
나는 그 나무에 얽힌 추억을 잊지 않으려고 그 꽃을 가슴에 달았다. 
나는 정말 불행한 아이였다.
그러나 그토록 심한 고통속에서도 나의 마음을 부풀어오르게 해주는 두 가지 일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리용으로 이사갈 때 배를 타게 된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기슴이 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부모님이 앵무새를 데려가도 좋다고 허락해 주셨던 것이다. 
로빈슨 역시 지금의 나처럼 쓸쓸하고 외롭게 무인도를 떠났던 것을 생각해 냈다. 
그런 생각해 하니 조금은 용기를 가질 수가 있었다.
마침내 떠나는 날이 되었다. 
아버지는 일주일 전에 부피가 크고 무거운 가구들을 가지고 리용에 먼저 가 있었다. 
그래서 그날은 나와 자끄 형, 어머니, 안누 할머니가 자잘한 세간살이를 꾸려서 리용으로 출발했다. 
신부인 큰형은 보께르 합승마차 역까지 우리를 배웅해 주었고, 
문지기 꼴롱브도 저만큼 앞장서서 트렁크를 실은 커다란 손수레를 끌면서 보께르까지 따라왔다. 
조금 떨어진 뒤쪽에서는 큰형이 어머니를 부축하면서 걸었다.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를 불쌍한 큰형!
커다란 푸른색 우산을 든 안누 할머니가 다리를 질질 끌며 쫓아왔고 
리용에 가는 게 아주 좋으면서도 계속 울고만 있는 자끄 형이 할머니와 나란히 걸었다. 
나는 그 초라한 행렬 맨 뒤에서 온통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채 
앵무새 새장을 들고 그렇게 좋아했던 공장 쪽을 자꾸만 뒤돌아보면서 힘겹게 걸음을 떼었다.
행렬이 점점더 멀어져 가자 석류나무는 좀더 오랫동안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려고 애쓰며 
뜰을 두르고 있는 담장 위로 한층 발돋움을 하는 듯싶었다. 
플라타너스가 무성한 나뭇잎을 단 가지들을 마구 흔들어 대며 작별인사를 했다. 
헤어짐의 슬픔과 고통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던 나는 
그들 모두에게 손으로 입맞춤을 보내며 떠나왔다.
18xx년 9월 30일, 나는 내 어린시절을 묻어 두듯 정든 무인도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