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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4. - 알퐁스 도데

Joyfule 2012. 5. 1. 22:04
 
 
꼬마 철학자4. - 알퐁스 도데  
 
   꼬마 철학자 다니엘1
   아! 아름다왔던 나의 어린 시절이여!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은 
   내 마음속 깊이 자리잡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론 강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여행하던 그 사흘이 바로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지금도 그때 탔던 배의 모습과 승객과 선원들의 생김새와 몸짓들이 눈앞에 생생하다. 
타륜이 돌아가는 드르륵거리는 소리와 호루라기를 불어 대듯 
호르륵호르륵하는 증기기관 소리가 귓가에 맴돌곤 한다. 
그 배의 선장은 제니에라는 멋진 사람이었고 주방장은 몽떼리마르였다. 
나는 아직도 그 두 사람을 내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지 않고 있다.
사흘 동안 계속 론 강을 항해하면서 나는 먹고 잘 때를 제외하고는 늘 갑판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는 커다란 닻과 입항할 때 울리는 큼지막한 경적이 달려 있었으며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밧줄더미가 널려 있었다.
나는 내내 앵무새와 함께 그 밧줄더미 위에 걸터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론 강의 아름다움에 넋을 빼앗기곤 했다. 
그러다가 벅차오르는 가슴을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면
앵무새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높푸른 하늘은 웃음을 머금은 듯 활짝 개어 있었으며, 강물은 푸르디푸르렀다. 
커다란 배들이 물살을 가르며 유유히 떠내려갔다. 
노새 등에 올라탄 한 무리의 사람들을 태운 배가 우리 배 옆으로 지나쳐갔는데 
그들이 불러 대던 노래는 몹시 흥겨웠다.
내가 탄 배는 가끔씩 등심초와 버드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찬 섬을 지나가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낮게 신음소리처럼 "오! 무인도!"라고 중얼댔다. 
그러고는 한시도 눈을 때지 않고 그 섬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어스럼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무서운 돌풍을 만날 것 같은 조짐이 보였다. 
한떼의 먹구름이 몰려 와 삽시간에 하늘을 뒤덮어 버렸다. 
때마침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가 강 위로 몰려 오더니 춤추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칸델라 하나가 갑판 위를 환히 비춰 주었다. 
나는 갑작스런 변화에 전율을 느꼈고 놀라움과 무서움으로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내 곁에 서 있던 누군가가 외쳤다.
  "리용이다!"
바로 그때 거대한 경적이 울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리용에 도착한 것이었다.
두터운 안개 저편으로 강변에서 새나오는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론 강의 지류에 들어선 것이었다. 
우리 배는 두 개의 다리 밑을 지나갔는데, 다리 밑을 지날 때마다 
그곳을 통과하기 위해 높은 굴뚝의 윗부분이 분리되고, 
그러면 짧아진 굴뚝에서는 마치 급류가 기침을 해대는 것처럼 검은 연기가 뿔룩뿔룩 뿜어나왔다. 
갑판 위는 온통 시끌벅적 북새통이었다. 
승객들은 저마다 트렁크를 찾느라 수선을 피웠고, 
선원들은 어둠 속에서 무슨 통인지 시끄럽게 굴리면서 알아듣지 못할 욕설을 퍼부어 댔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갑판 한쪽 구석에서 서성이던 어머니와 자끄 형 그리고 안누 할머니에게로 급히 달려갔다. 
배가 부두의 도선장을 찾아 정박을 하고 하선이 시작될 때까지 
우리 가족은 모두 안누 할머니가 들고 있는 커다란 우산 밑에 서로 꼭 붙어 서 있었다.
정말이지 아버지가 우리를 마중나오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이 노한 듯 퍼부어 대는 비 속에서 한 발자국도 옮겨 놓지 못하고 마냥 서 있어야 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자끄! 다니엘!"하고 우리 형제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리저리 허둥지둥 뛰어다니다 드디어 우리를 찾아 냈다. 
귀에 익은 "자끄!"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우리는 너무나 기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우리들은 한꺼번에 "여기예요!"하고 목청을 높여 대답했다. 
아버지는 재빨리 달려와 우리를 포옹하더니 양손으로 형과 나의 손을 붙잡고 
어머니와 안누 할머니에게 말했다.
  "날 따라와요!"
그러고는 앞장서서 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아버지가 얼마나 남자답게 보였는지,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란 존재의 소중함을 느꼈다. 
어느새 주위는 어두워져 있었고, 부두에 연결된 다리는 몹시 미끄러워 
우리는 한발씩 조심조심 옮겨 놓으며 걸어야 했다. 
걸음을 옮겨 놓을 때마다 흔들거리는 트렁크에 몸이 부딪쳐 몹시 아팠다. 
그때였다. 갑자기 배 저편 끝에서 비 속을 뚫고 날카롭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 왔다.
  "로빈슨! 로빈슨!"
  "아니, 이럴 수가!"
나는 몸부림을 치면서 아버지에게 꼭 잡혀 있는 손을 빼내려고 애썼다. 
그러자 아버지는 더욱 세게 내 손을 잡고 놓아 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때 더욱 구슬프고 날카로운 울부짖음이 다시 내 귀를 파고들었다.
  "로빈슨! 내 불쌍한 로빈슨!"
  "내 앵무새! 내 앵무새!"
  나는 울부짖으며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지금 앵무새가 말하는 거니?"
  자끄 형이 물었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앵무새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너무나 소란스러워서 깜박 잊고 갑판에 있는 닻 옆에다 앵무새를 두고 왔던 것이다. 
거기에 홀로 남겨진 앵무새가 있는 힘을 다해서 
"로빈슨! 로빈슨! 내 불쌍한 로빈슨!"하고 울부짖으며 나를 찾고 있었다.
불행히도 그때 나는 앵무새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더군다나 제니에 선장은 "서두릅시다, 여러분. 서둘러 주십시요"라고 외쳐 대며 
승객들을 재촉하고 있어서 사람들의 물결을 헤치며 거슬러 올라가기는 무척 어려웠다.
  "내일 앵무새를 찾으러 다시 오면 돼. 배 안에서는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아."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울고 있는 나를 끌고 앞으로만 나아갔다.
다음날 앵무새를 찾아 오라고 사람을 보냈으나 그는 그냥 빈 손으로 돌아왔다. 
이젠 방드르디도, 앵무새도 모두 내 곁을 떠나 버렸다! 
나는 더이상 로빈슨이 될 수가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되돌아갈 수 없는  나의 무인도와 앵무새를 그리워하며 
비탄과 실의에 빠져 하루종일 허공만을 바라보는 것뿐이란 말인가! 
그것도 삭막한 랑떼른느 거리에 있는 지저분하고 습기찬 건물의 오층 방에 틀어박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