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25 - 알퐁스 도데
끔찍한 풍문의 계절
쌩 테오필 축제와 함께 방학은 끝나 버렸다.
그 이후로는 우울한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사육제가 끝나는 '참회의 화요일' 다음날 같은 쓸쓸하고 허전한 분위기였다.
마지 못해 학교로 끌려 온 듯한 선생이나 학생들의 모습 속에
모든 의욕을 상실한 권태로운 분위기가 배어 있었다.
두 달씩이나 푹 쉬고 났으니 그동안 몸에 배어 버린 나태한 습관을 떨쳐 버리고
이전과 같이 팽팽한 생활리듬을 되찾기란 몹시 힘든 일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태엽을 감지 않아 녹슬기 시작하는 벽시계의 톱니바퀴처럼
모든 일이 삐걱거리며 잘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비오 씨가 설치고 다니며 게으름을 피우는 그들을 다그치는 바람에
학교는 서서히 기지개를 켜듯 질서를 잡아 가기 시작했다.
등교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운동장의 곁문이 열리면서 아이들이 나와선
병정개미떼처럼 어색한 걸음걸이로 둘씩 짝을 지어 나무 밑을 줄줄이 지나갔다.
그러고 나서 수업을 끝내는 종소리가 땡! 땡! 울리면
아이들은 아침에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기상 종소리와 취침 종소리가 일정한 시각에 어김없이 울리면
모두들 마치 최면에 걸린 듯 기계처럼 움직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아이들이나 선생들의 몸 구석구석엔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고치기 힘든 습관처럼 규칙이 배어들었다.
모범적인 싸르랑드 중학교에서 메날크 같은 학생들이 비오 씨의 엄격한 감시를 받으며
규칙대로 그날그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보기에도 썩 훌륭했다.
다만 비오 씨의 그 그림에 오직 나만이 오점을 찍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중급반 아이들은 도무지 그런 규칙에 쉽게 길들여지지 않았다.
그들은 산악지방에 있는 자기 집에서 뒹굴다가 방학 전보다
더 보기 흉한 몰골로 더욱 악랄하고 사나와져서 내게로 돌아왔다.
나 또한 긴 방학 동안 더욱 까다로운 성격의 인물로 변해 있었다.
병을 앓고 난 뒤로는 모든 게 짜증스러웠고 툭하면 성을 내는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고통스런 삶에 지쳐 버린 나는 더이상 아무것도 견뎌 낼 수 없었다.
방학 전만 해도 바보처럼 보일 정도로 온순하기만 했었는데
새학기가 시작된 후에는 모든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엄격하게 굴었다.
그래서 그런지 심술궂은 악동들을 굴복시켜 보고 싶은 충동을 강렬하게 느끼곤 했다.
아이들이 조금만 엉뚱한 짓을 하거나 삐딱하게 나가는 듯싶으면
감당하기 힘든 숙제를 내주거나 쉬는 시간에 교실에 남아 반성문을 쓰는 벌을 주곤 했다.
그러나 벌을 주어 그들이 내게 복종하도록 하려는 방법은 성공하지 못했다.
매번 그런 벌을 계속 남발하다 보니 아무런 효과도 거둘 수 없었고
마침내는 1797년의 아씨냐 지페만큼이나 가치가 떨어졌다.
그렇게 서로 무감각하게 지내던 어느날이었다.
교실 안에선 마치 내가 아이들에게 포위당한 듯한 낌새가 풍겨나고 있었다.
중급반 아이들은 내게 정면으로 들고 일어나 반란을 일으켰고
나는 그 폭동을 진압할 만한 무기를 더이상 갖고 있지 않았다.
아이들이 질러 대는 야유와 불평에 대해 무방비 상태로 교단 위에 서서
나는 눈물로 범벅이 된 채 고함을 지르며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저 꼬마 선생을 거부하는 시위를 벌이자!... 다들 일어서라!...
이제 폭군은 물러나야 한다!... 이런 부당한 벌을 받으며 더이상 공부할순 없다!"
그러자 교단 위로 잉크병과 책들이 비오듯 쏟아졌고,
꼬깃꼬깃 구겨진 딱딱한 마분지 뭉치들이 교실 안을 온통 휩쓸었다.
그 녀석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마치 장글 속의 원숭이들처럼
괴성을 지르며 떼거리로 내게 달려들어 몸에 매달렸다.
부당하게 내려지는 벌에 대한 항의라고 고래고래 외치며 나를 마구잡이로 몰아붙였다.
이따금씩 생각다 못해 나는 무기력한 자신을 저주하며
비오 씨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다.
쌩 테오필 축제 때의 그 쓰라린 패배 이후로
그 인간은 독한 앙심을 품고 나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가 곤경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를 보며
은근히 기뻐한다는 걸 나는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그가 손에 열쇠꾸러미를 든 채 부랴부랴 교실로 들어서면
교실은 마치 개구리가 들끓는 연못에 돌멩이 하나가 던져진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들은 순식간에 제자리에 돌아가서는 책에다 코를 처박고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러면 교실 안은 파리 한 마리가
윙윙거리며 날아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비오 씨는 열쇠꾸러미를 흔들어 대면서 그 고요한 침묵 속을
잠시 여유 있게 이리저리 거닐며 아이들의 뒤통수를 하나씩 노려보았다.
그러고 나서는 빈정거리듯 경멸어린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싸늘한 바람을 일으키며 휑하니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다 내게 주어진 듯싶었다.
동료 교사들까지도 대놓고 나를 비웃었으며
교장선생님도 나와 우연히 마주칠 때면 말을 건네려고 쭈뼛대는 나를
냉담한 표정으로 잠시 쏘아볼 뿐 아무 대꾸도 없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래도 내게 유감이 많은 비오 씨가 그들에게 농간을 부렸음이 분명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끄와랑 사건까지 터지는 바람에
그나마 지탱하고 있던 자습감독 교사로서의 권위와 자격마저 위태롭게 휘청댔다.
부끄와랑 사건은 틀림없이 그해의 가장 큰 사건으로
그 학교의 연감에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싸르랑드 사람들은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로 그 사건을 들먹일지도 모른다.
더욱 흥미있게 윤색되고 과장이 덧붙여져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을 게다.
그들처럼 즐거운 기분은 아닐지라도 나 역시 가슴에 응어리처럼 남은
그 끔찍한 사건의 내막을 모조리 털어놓아 홀가분해지고 싶다.
넓적하고 뭉툭한 발에 개구리처럼 툭 불거진 눈과
솥뚜껑 같은 손을 지닌 열다섯 살 된 부끄와랑은 뻔뻔스럽고 싸가지없는 녀석으로
중급반 운동장을 자기 집 정원마냥 휩쓸고 다니는 깡패였다.
그는 싸르랑드 중학교에 다니는 유일한 세벤느 지방 귀족이었다.
교장선생님은 그 아이가 다님으로 해서
그 학교가 귀족적인 냄새를 풍긴다고 생각하고는 그 아이를 깍듯이 대하며 무척 아꼈다.
하교에서는 그 아이를 '후작'이라고 불렀다.
모두들 그를 어려워하거나 두려워했다.
나 또한 알게 모르게 그런 전체적인 분위기의 영향을 받아
그 아이한테 말을 할 때는 될수록 신중을 기하며 조심했다.
나의 그러한 노력으로 얼마동안 우리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후작 녀석은 이따금씩 오만불손한 태도로 나를 쳐다보거나 말대꾸를 서슴지 않았다.
마치 귀족계급에서 온갖 권리를 부여하던 혁명 이전의
봉건시대로 되돌아간 것처럼 귀족계급이란 점을 내세워 거들먹거렸다.
나는 거만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자식의 태도에 별로 신경을 안 쓰는 척했지만
내심 강적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수업시간중에 그 깡패 같은 후작 녀석이 불손한 말로 대꾸를 하는 것이었다.
속이 끓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밀었지만
나는 냉정해지려고 애쓰면서 그 녀석에게 말했다.
"부끄와랑 군, 책을 챙겨서 지금 당장 나가시오."
그것은 그 녀석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권위 있는 행동이었다.
그 녀석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제자리에서 꼼짝 않고
멍청하게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순간 그 녀석의 태도가 나를 곤경에 빠뜨렸다는 것을 알아챘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가시오, 부끄와랑 군!"
나는 다시 한 번 명령했다.
삽시간에 교실 안에 불안감이 감돌았고 아이들은 근심스런 표정으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아이들을 침묵시킨 것이었다.
나의 두번째 명령에 정신을 차린 후작 녀석은
느긋한 표정을 되찾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안 나가겠어요!"
감탄스런 수근거림이 온 교실 안에 퍼졌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는 교단에서 일어섰다.
"안 나가겠다는 거요?... 어디 두고 봅시다."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나는 교단을 내려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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