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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24 - 알퐁스 도데

Joyfule 2012. 5. 24. 10:59
 
 
꼬마 철학자24 - 알퐁스 도데  
 
   괴롭고 긴 나날 4.

   성신미사가 있고 난 이틀 뒤 다시 새로운 의식이 거행되었다. 
   영세명 성인을 기념하는 본명첨례일이었다. 
   이날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그래 왔듯이 모든 학생들은 
   냉동육과 리모산 포도주가 잔득 쌓인 풀밭에서 쌩 테오필 축제를 거행했다. 
여느때처럼 이번에도 교장선생님은 가족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 조촐한 축제가 흡족한 결과를 낳도록 하기 위해 뭐하나 아끼지 않았다.
학교에는 전혀 누를 끼치지 않으면서 성심성의껏 준비했는데 
그럴 때의 그는 무척 자비로운 사람처럼 보였으며 그 자신도 아주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동틀 무렵이 되자 시를 상징하는 깃발로 장식된 대형 합승마차들이 
학생과 선생들을 가득 태우고 서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포도주 광주리와 음식 바구니를 가득 실은 두 대의 운송차가 그 뒤를 이었으며 
맨 앞에 가고 있는 꽃마차에는 지체 높은 양반과 악대가 타고 있었다. 
악사들이 오피클레이드를 힘차게 연주하기 시작하자 아름다운 노래소리가 
채찍소리, 방울소리, 접시들이 양철 반합에 부딪는 소리 사이로 광장에 울려퍼졌다. 
아직도 나이트캡을 쓰고 있는 싸르랑드 사람들이 모두들 창가로 몰려들어 축제행렬을 구경했다.
축제는 풀밭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내가 학생들과 야외수업을 나가곤 하던 그 풀밭에 도착하자마자 풀밭 위에는 식탁보가 펼쳐졌고, 
마치 애들처럼 그늘을 찾다가 제비꽃 위에 앉은 선생들을 보고는 아이들이 배꼽을 잡고 웃어 댔다. 
파이 조각을 담은 접시가 돌려졌고, 병마개가 튀어올랐다. 
흥분과 기쁨으로 눈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여기저기서 왁자지껄 웅성거리며 들뜬 분위기였다. 
모두들 즐거워하는데 오직 나만은 불안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갑자기 내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여러분, 나는 방금 누군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느 무명 시인의 시를 받았습니다. 
핀다로스같이 훌륭한 서정시인인 비오 씨가 금년에는 호적수를 만난 것 같소. 
나는 이 시를 재미있게 읽었읍니다만, 여러분들에게 읽어 드려야 할지...."
  "좋아요, 좋아요... 읽으세요! 읽으세요!"
그러자 교장선생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 시를 읽기 시작했다.
그것은 교장선생님과 교사들을 찬양하는 아주 훌륭한 시였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꽃을 바치듯 찬사를 보내는 내용이었다. 
시인은 안경잡이 마귀할멈도 빼놓지 않고 그녀에게 
'식당에서 일하는 천사'라고 찬사를 보냈는데, 그 표현은 아주 썩 잘 된 표현 같았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며 그 시를 쓴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고 아우성을 쳐 댔다. 
나는 마치 석류열매처럼 얼굴이 빨개져서 마지못해 머뭇머뭇 일어나서는 겸손하게 절을 했다. 
모두들 감탄을 연발하며 환호를 했다. 
나는 그날 축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교장선생님은 나를 껴안으려고 했으며 나이 든 선생들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내 손을 꼭 잡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중급반 담임 교사는 내 시를 신문에 실어야 한다고 하며 
꼭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교장선생님에게 부탁했다. 
불안감이 가시고 대단히 기분이 흡족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제르만느 신부님과 비오 씨의 얼굴이 떠올랐는데 
신부님이 '바보 같은 녀석!'이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 오는 듯했고, 
이 방면에 있어서만큼은 대등한 위치가 된 비오 씨의 열쇠도 사납게 쨍그렁거리는 것 같았다.
온통 시끌벅적거리며 흥분되어 있는 분위기를 가라앉히려고 교장선생님은 
손뼉을 치며 조용히 하라고 한 다음 말했다.
 "자, 자, 여러분. 이제 비오 씨 차례입니다. 
익살스런 뮤즈여신의 차례가 끝났으니 이제 근엄한 뮤주여신의 시를 들어 봅시다."
약속어음책처럼 두툼하게 제본되어 있는 수첩을 호주머니에서 꺼낸 비오 씨는 
나를 힐끔힐끔 곁눈질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비오 씨의 작품은 학교 규율에 경의를 표하는 내용으로 로마시인 버질 풍의 목가적인 전원시였다. 
학생인 메날크와 도릴라가 한 귀절이 끝날 때마다 다시 거기에 답하는 시를 읊었다. 
메날크는 규정이 아주 잘 지켜지는 학교의 학생역을 했고, 
도릴라는 규정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 학교의 학생역을 했다. 
메날크는 엄격한 규율을 지킬 때 느껴지는 책임감 있는 자유에 대해, 
도릴라는 어리석은 자유의 보잘것없는 즐거움에 대해 읊었다.
결국 각본대로 도릴라가 졌고, 자기를 정복한 자의 손에 싸움의 성과물을 갖다바치면서 
메날크와 함께 목소리를 합쳐 규율의 영광스러움을 찬양하는 
환희의 노래를 부름으로써 시를 끝맺고 있었다.
시낭송은 모두 끝났다. 죽음과도 같은 침묵만이 흘렀다. 
아이들은 시를 읊는 동안 접시를 들고 풀밭 끝으로 가서는 
메날크와 도릴라가 뭐라고 떠들어 대건 상관없다는 듯 파이를 먹어 댔다. 
비오 씨가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교사들은 비록 잘 참아 내긴 했지만 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은 전혀 
아닌지 그저 묵묵히 앉아 있었다. 
비오 씨는 완전히 패배했다. 
교장선생님이 그에게 위로를 하노라고 한마디했다.
 "주제가 너무 딱딱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그 딱딱한 주제도 아주 아름답게 표현했군요."
 "저도 아주 아름다운 시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마지못해 이렇게 뻔뻔스럽게 말했다. 
나는 비오 씨의 참패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승리했다는 것에 대해서 겁이 나기 시작했다.
비겁한 패배자인 비오 씨는 위로받고 싶어하지 않았다.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숙이고는 계속 쓰디쓴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는 그날 하루종일, 박자도 안 맞는 악대의 반주에 맞춰 부르는 
학생들의 노래소리에 어우러져 잠든 도시의 아스팔트 위를 구르는 
합승마차의 바퀴소리가 거리에 울려퍼질 때까지 내내 그러고만 있었다. 
나는 내 라이벌의 열쇠뭉치가 쨍그렁거리며 투덜대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쨍그렁! 쨍그렁! 쨍그렁!"
  '시인 선생, 언젠가는 꼭 복수하고 말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