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26. - 알퐁스 도데
끔찍한 풍문의 계절 2.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폭력을 사용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는 그저 내 단호한 태도를 보여 줌으로써
그 녀석에게 겁을 주려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교단에서 내려서는 걸 본 그 녀석이
가소롭다는 듯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계속 이죽거렸기 때문에
나는 그 녀석을 의자에서 끌어내려고 와락 멱살을 움켜잡게 되었다.
그 야비한 녀석은 웃도리 속에다 커다란 쇠자를 감추고 있었다.
내가 손을 들어올리는 순간 그 녀석이 내 팔을 쇠자로 힘껏 후려쳤다.
예기치 못한 일격에 고함을 내지르며 나는 아픈 팔을 움켜쥐고는 몸을 비틀어 댔다.
학생들은 교실이 떠나가도록 책상을 두드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후작, 잘한다!"
아이들의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다가 순간적으로 나는 머리가 홱 돌아 버렸다.
단숨에 책상 위로 뛰어오른 나는 후작 녀석에게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녀석의 목덜미를 틀어 쥐고 발과 주먹, 이빨 등
하여튼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그 녀석을 자리에서 끌어 낸 다음
교실 밖 운동장 한가운데로 밀쳐 내 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내 힘이 이렇게 센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었다.
사태가 너무 갑작스럽게 돌변해 버리자 아이들의 얼굴에선 핏기가 싹 가시고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잔뜩 겁을 집어 먹고는 오들오들 떨었다.
학교에서 가장 강력한 위치에 있는 부끄와랑이 난장이같이 생긴
자습감독 교사한테 꼼짝 못하다니 이건 놀랍고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나는 실추된 권위를 되찾았고,
후작 녀석은 위신을 잃어 우리의 위치는 완전히 역전된 것이었다.
내가 여전히 흥분되어 온몸을 떨면서 창백한 얼굴로 교단으로 올라가자
모든 학생들이 얼굴을 책상 위로 푹 숙였다.
완전히 기가 죽어 있는 꼴을 보니 아이들은 이제 나에게 한풀 꺾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과 비오 씨는 이 사건을 어찌 생각할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지? 결국 학생에게 손찌검을 하고 말았으니!
쫓겨나려고 작정을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감히 이런 행동을...!'
이것저것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얄미운 후작 녀석에게 본때를 보여 준
통쾌함과 아울러 공포와 초조감이 겹쳐 점점 불안해졌다.
이번에는 내가 두려워진 것이었다.
후작 녀석이 지금쯤 분명히 어디다 하소연하러 갔을 거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시간이 흐를수록 파랗게 질린 교장 선생님이 교실 문을 박차고
당장이라도 들이닥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나는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자습시간이 끝날 때까지 나는 내내 마음을 졸이며 이제나 저제나
교장선생님이 들이닥칠까 조바심했지만 끝내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 되어 부끄와랑이 다른 아이들이랑 어울려서
웃고 뛰노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걸 보니 약간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무사히 하루가 지나가자 나는 그 녀석이
그 일에 대해 입을 다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괜히 두려움에 사로잡혀 지낼 필요가 없을 성싶어 그날 일은 잊어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날은 불행히도 외출이 허용된 목요일이었다.
후작 녀석은 이슥한 밤이 되어도 끝내 기숙사에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불길한 예감에 시달리며 그 긴 밤을 꼬박 새우고야 말았다.
다음날 첫번째 자습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부끄와랑의 빈 자리를 바라보면서 수근대기 시작했다.
나는 함부로 내색하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으며
불안하고 초조하여 죽을 지경이었다.
아침 7시가 되어 막 자습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교실문이 느닷없이 드르륵 열렸다.
아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야말로 소스라치게 놀라 정신이 확 달아났다.
맨 앞에 교장선생님을 위시해서 비오 씨가 따라 들어오더니 곧이어
턱까지 단추를 채운 투박해 보이는 긴 외투에 20센티 정도의
말총 깃 넥타이를 늘어뜨린 키큰 노인이 차례로 들어왔다.
맨 뒤에 들어선 노인네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으나
나는 부끄와랑의 아버지 드 부끄와랑 후작이라는 걸 즉각 알아차렸다.
그는 긴 콧수염을 신경질적으로 만지작거리면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 양반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교단에서 내려설 용기조차 내게는 없었다.
그들 역시 내게 인사하지 않았다.
교실 한가운데 버티고 선 세 사람은 나갈 때까지 내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시종 아이들만 휘둘러보며 더이상 할 말이 없을 때까지 떠벌여 댔다.
교장선생님이 자기 임무에 충실해야겠다는 열의로 먼저 포문을 열었다.
"여러분, 우리는 괴로운 , 아주 괴로운 임무를 수행하려고 여기 왔읍니다.
여러분의 선생님 한 분이 꽤 무거운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읍니다."
일단 입을 열어 비난을 쏟아붓기 시작한 그는
15분 동안이나 쉬지 않고 계속 나를 매도했다.
그러나 그의 입을 통해서 나온 모든 말들은 왜곡된 거짓말이었다.
후작 녀석은 항상 품행이 단정한 모범생인데,
내가 아무 이유도 없이 트집을 잡아서 학대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자습감독 교사로서의 의무를 망각해 버리고
애매한 학생만 다그치는 같잖은 선생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듣고만 있을 수 없어서 이따금씩 나는 변명을 하려고 애썼다.
"천만부당한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교장선생님!"
하지만 그는 내 말을 들은 체도 않고 끝까지 날 공개 비난하는 것이었다.
교장선생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드 부끄와랑 후작이 뒤를 이었다.
그 노인네는 마치 검사가 논고를 하는 것처럼 지껄여 댔다.
그의 모습은 자기 자식밖에 모르는
불쌍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마치 자기 아들을 내가 살해하기라도 한 듯한 태도였다.
아무런 방어태세도 갖추지 못한 불쌍한 나를 향해 그들은 마치...
마치 물소떼처럼 마구 덤벼들었다.
더이상은 도저히 형용할 수도 없이... 정말 치떨리는 일이었다.
후작 녀석은 아예 병석에 드러누웠으며
그의 어머니는 눈물을 멈추지도 못하고 하루종일 간호하고 있다고 했다.
'아! 만일 내가 어른이라면 그런 자식은 가만 두지 않을 텐데...
아직 내가 어리기 때문에 오히려 난폭한 선생에게
동정을 베풀어 용서해야만 하다니 서글퍼요.'
후작 녀석은 되지도 않는 말을 지껄이며 헛소리를 해대는 모양이었다.
드부끄와랑 후작은 그런 아들이 몹시 애처로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다며
앞으론 누가 됐건 자기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건드리면
그 녀석의 두 귀를 싹뚝 잘라 버리겠다고 눈을 부릅뜨고 외쳐 댔다.
귀를 틀어막고 싶은 그들의 연설이 계속되는 동안 학생들은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비오 씨의 열쇠꾸러미는 기쁨으로 쨍그렁거렸다.
분노로 얼굴이 창백해진 나는 교단에 선 채 그 모든 욕설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들이 결코 끝내 줄 것 같지 않은 모든 모욕을 감수해 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이를 악물고 대꾸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자칫 잘못하다가 한마디라도 대꾸하게 되면 이 학교에서 쫓겨날 것이 뻔했다.
그렇게 되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그렇게 한 시간 동안을 떠벌리고 나더니 이야기거리가 떨어졌는지
같은 말을 몇 번씩이나 반복하다가 그들은 나가 버렸다.
그들이 나가자 교실은 온통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아이들은 나를 맞대놓고 비웃었다.
부끄와랑 사건은 간당간당 지탱해 왔던 나의 권위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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