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세계문학

꼬마 철학자27 - 알퐁스 도데

Joyfule 2012. 5. 28. 00:25
 
 
꼬마 철학자27  - 알퐁스 도데  
 
   끔찍한 풍문의 계절3.
   그것은 정말 끔찍한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싸르랑드의 모든 사람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크고 작은 모임이나 까페 등 어딜가나 그 사건에 대한 얘기가 난무했다. 
   누구보다도 그 사건에 관해 자기가 가장 정확하게 안다고 자부하면서 
사람들은 머리칼이 곤두설 만큼 황당하게 풍선처럼 부풀려 낱낱이 묘사했다.
 '그 자습감독 교사는 유령이나 식인귀임에 틀림없어. 
우린 상상도 못할 교묘한 방법으로 잔인하게 어린아이를 고문한다지 뭐야....'
그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퍼져 갔다.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할 땐 나를 그저 '냉혈한'이라고 불렀다. 
온통 부풀려지고 과장되어 나는 그들에게 그렇게 무서운 인간으로 비춰졌다.
부끄와랑 녀석은 하루종일 침대에만 있는 게 지겨워지자 
자기네 집 응접실의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침대 의자를 옮겨 놓으라고 시켜서는 거기서 내내 빈둥댔다. 
그 응접실에는 여드레 동안이나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 흥미로운 희생자야말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던 모든 사람들의 표적이 되었던 것이다.
문턱이 닳아 빠지도록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에게 찾아와 그 사건을 직접 듣고 싶어했으며, 
그 비열한 녀석은 그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내서 흥미진진하게 떠벌렸다. 
그 녀석이 꾸며대는 거짓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부인네들은 
부르르 치를 떨었고, 노처녀들은 그 녀석을 '불쌍한 천사!'라고 혀를 차며 
슬그머니 사탕을 쥐어 주기도 했다. 
큰 사건이 터지기만을 기다려 온 신문이 때마침 이 사건을 특종으로 다루어 
인근의 종교학교와 비교해서 싸르랑드 중학교의 비인간적인 교육을 
맹렬히 비난하는 기사를 실어 그 사건은 더욱 크게 확대되어 온 마을을 휩쓸었다.
신문과 거리거리에서 싸르랑드 중학교를 비난하는 소리가 드높아지자 
교장선생님은 노발대발했다. 
그가 나를 해고하지 않은 것은 오직 교육장이 보호해준 덕분이었다. 
난 차라리 해고를 당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지도 몰랐다. 
이젠 자습감독 교사 직무를 수행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더이상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어쩌다 입만 벙긋해도 그들은 자기도 부끄와랑처럼 
아버지한테 일러바치겠다고 을러 대는 것이었다. 
난 결국 그들을 포기하고 말았다.
내겐 부끄와랑 집안에 대한 복수심이 불타올랐다. 
그 늙은 후작이 불손한 태도로 나를 윽박지르던 당시의 광경을 떠올리면 
분노로 귀까지 달아오르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당한 모욕을 잊어버리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있는 야외수업일이 되어 에베쉐 까페 앞을 지나갈 때마다 
드 부끄와랑 후작은 모자를 벗은 채 손에 당구 큐대를 든 
몇 명의 주둔군 장교들에 둘러싸여 문 앞에 우뚝 서 있었다. 
그들은 야유하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목소리가 들릴 만큼 학생들이 가까와지면 
후작은 도전적인 표정으로 나를 훑어보며 큰소리로 외쳐 댔다.
  "오늘은 괜찮냐, 부끄와랑?"
  "네, 아버지!"
그 고약한 어린 녀석은 열 가운데서 태연하게 소리쳤다. 
그러면 장교들과 학생들, 까페의 급사들 모두가 왁자지껄하게 웃는 것이었다.
'오늘은 괜찮냐, 부끄와랑?'이라는 그 말은 
내게는 너무나 끔찍한 형벌이었지만 그걸 피할 방법이 없었다. 
풀밭에 가려면 어쩔 수 없이 에베쉐 까페 앞을 지나쳐야 했으며 
그 늙은 후작은 단 한번도 야외수업 가는 날을 걸러 본 적이 없었다.
이따금씩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서 도전을 해보고 싶은 무모한 충동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내가 머리끝까지 치솟는 그 충동을 억누르는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우선은 학교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후작이 차고 다니는 파랗게 날이 선 긴 칼 때문이었다. 
밑쪽이 굵고 끝이 뾰족한 괴상한 모양의 그 칼은 그가 경비대에 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의 목을 베어 버린 무시무시한 내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날, 
더이상 그들의 수모를 참을 수 없게 된 나는 펜싱 교사인 로제를 찾아갔다. 
나는 후작에게 결투를 신청해서 한번 겨뤄보겠다는 결심을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털어놓고 말았다. 
오랫동안 서로 얘기를 나눠 보지 못했던 로제는 처음으로 아주 신중하게 내 말을 듣는 듯했다. 
그렇게 내 말을 모두 듣고 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입에 침을 튀기면서 내 두 손을 맞잡아 힘껏 쥐었다.
  "다니엘 씨, 정말 훌륭한 결심을 하셨소. 
당신 같은 사람은 결코 염탐꾼 노릇을 못하리라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었읍니다.
당신은 왜 비오 씨한테 늘 쩔쩔맸읍니까? 앞으로 두고 보십시오.
모든 일은 잊혀 질 거요. 당신이 주도권을 잡게 될 겁니다. 
이렇게 당신과 직접 상대해 보니 참 의젓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려. 
이젠 당신이 복수할 차례요. 모욕을 당했다구요? 좋아요! 
사죄를 받고 싶지요? 좋아요! 당신은 펜싱의 초보도 모르지요? 
아뭏든 좋아요, 좋아! 그래도 좋다구요! 
그 늙은 바보 녀석의 칼에 찔리지 않도록 내가 도와 주기를 당신이 바라는 거죠? 
잘 됐어요! 연습장으로 갑시다. 
여섯 달 만 연습하면 당신은 그 늙은이를 이길 수 있을 거요."
그 뛰어난 인물 로제가 열을 내가며 마치 내 결투를 떠맡으려는 듯한 기세에 
나는 기쁨으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는 일주일에 세 시간씩 그에게서 펜싱을 배우기로 합의를 보는 한편, 
교습비는 특별히 따로 정했다. 
사실 어이없게도 엄청난 교습비를 지불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내게서 사람들보다 두 배나 많은 교습비를 받았던 것이다. 
펜싱을 배우는 데 필요한 모든 계약에 관해 얘기를 끝내고 로제는 정답게 내 팔짱을 꼈다.
 "다니엘 씨, 오늘은 첫 수업을 하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하지만 바르베뜨 까페에 가서 계약을 조인할 수는 있어요. 
갑시다! 자, 이제 어린애 같은 짓은 하지 마세요. 
혹시 바르베뜨 까페에 가기가 겁나는 건 아닌가요?... 
그러니까 가야 되는 겁니다. 제기랄! 유식한 체 그만하시고... 
거기 가면 호탕하고 점잖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요! 
그들이랑 함께 있으면 당신은 그 여자 같은 티를 벗고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방탕의 늪 속으로 발을 들여 놓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바르베뜨 까페에 갔다. 
그곳은 여전히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고함소리와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꽉 찬 담배 연기, 새빨간 바지를 입은 하사관들로 가득 차 있었다. 
똑같은 모양의 보병 군모와 혁대가 모자걸이에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로제의 친구들은 열렬히 나를 환영했다. 
로제의 말대로 그들은 고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다. 
나와 후작 사이에 있었던 일과 내가 내린 결정을 로제에게 듣고 
나서는 그들은 한 명씩 내 손을 굳게 잡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훌륭해. 아주 훌륭한 결심이오."
나는 그들의 착한 마음씨에 감동해서 한턱 사겠다고 호기롭게 내뱉고는 
펀치술을 한 병 시켜서 서로 돌려가며 내 승리를 위한 축배를 들었다. 
술기가 오를수록 나는 학년 말쯤에는 드 부끄와랑 후작을 한 칼에 쓰러뜨려서 
지금껏 참아 왔던 모든 수모와 모욕들을 깡그리 되돌려 줄 거라는 확신으로 들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