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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29 - 알퐁스 도데

Joyfule 2012. 5. 30. 13:23
 
 
꼬마 철학자29 - 알퐁스 도데  
 
   어린 돈 주앙의 눈물1. 
   2월도 중순으로 접어들어 18일 아침이 밝았다. 
   일어나 보니 밤새도록 눈이 내렸는지 
   무릎까지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쌓여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아침 자습시간과 첫 수업시간 사이의 휴식시간 동안 
눈 쌓인 운동장으로 나가지 말고 강당에서 놀라고 했다. 
강당 안은 마치 벌집을 쑤신 듯 소란스러웠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이 밖을 나가거나 
말썽을 피우지 못하게 감독하는 일을 맡았다.
그 강당은 옛날 해군학교였을 당시에는 체육관으로 사용하던 곳이었다. 
쇠창살이 쳐진 자그마한 창문이 수십 개 붙어 있었고, 
사방 벽에는 변변한 장식품 하나 걸려 있지 않은 썰렁하게 크기만 한 방이었다. 
군데군데 못이 떨어져 나가 덜렁덜렁한 꺾쇠가 보였고, 
사닥다리가 있었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리고 천정의 대들보에 매달린 커다란 쇠고리가 흔들거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강당 창문에 개미떼처럼 달려들어 유리창에 코를 박고 밖을 내다보았다. 
눈 치우는 사람들이 운동장을 뒤덮은 눈을 삽으로 퍼서 
덤프차에 휙휙 던지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그들은 무척 즐거운 표정으로 떠들어 댔다.
하지만 강당이 떠내려 갈 듯한 소란스런 아이들 뛰는 소리와 
아우성 소리도 내 귀엔 전혀 들어 오지 않았다.
아이들과 떨어져 홀로 한구석에 자리잡은 나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편지 한 통을 읽고 있었다. 
아마 그 순간 아이들이 체육관을 송두리째 부숴 버렸다 
하더라도 나는 그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내 손에 들려져 눈물로 번지고 있는 편지는 자끄 형이 보낸 것이었다. 
그 편지에는 파리 소인이 찍인 우표가 붙어 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동생, 다니엘! 
이 편지를 받고 아마 너는 몹시 놀라겠지. 전혀 뜻밖이지, 응? 
난 2주일 전부터 파리에 와 있단다. 
난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고 몰래 리용을 떠나왔어. 
일시적인 기분에 좌우된 행동이었지... 어쩔 수가 없었어. 
특히 네가 떠난 이후로 난 그 끔찍한 도시에 있기가 너무 지겨웠어.
나는 39프랑과 미꾸 신부님이 내게 써 눈 대여섯 통의 소개장만 가지고 여기에 왔어. 
신이 보호해 주신 덕분에 나는 한 늙은 후작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그분의 비서로 일하게 되었단다. 
그분이 회고록을 출판하려 하는데 나는 그분이 불러 주는 대로 받아쓰기만 하면 돼. 
그리고 한 달에 백 프랑씩 받기로 했어. 
너도 알겠지만 대단한 액수는 아니야. 
하지만 그걸 아껴쓰면 가금 집에 얼마씩이라도 보내줄 수 있을 거다.
아! 사랑하는 다니엘, 
파리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야, 
네가 직접 봐야 하는 건데. 여긴 안개가 끼지 않는단다. 
이따금씩 비가 오기는 하지만 그런 날조차도 
햇살이 비치면서 부슬부슬 내리는 즐거운 비야. 
넌 아직 한번도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겠지? 그리고 나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됐단다! 
난 이제 절대로 울지 않아. 아마 너는 믿지 못하겠지?
여기까지 읽고 났을 때 갑자기 창문을 뒤흔들며 
귀청을 찢는 듯한 자동차 엔진소리가 울려 왔다. 
자동차가 학교 정문 앞에서 멈추고 사람이 내리자 
아이들은 입을 모아 목청껏 함성을 지르며 소리쳤다.
  "군수님이다! 군수님이 오셨다!"
군수의 방문은 분명히 뭔가 특별한 일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는 일 년에 한두 번 싸르랑드 중학교를 방문하곤 했는데 
그의 방문이 있을 때마다 학교가 온통 난리 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싸르랑드 군수의 방문으로 갑자기 바빠진 학교가 
야단법석을 떠는 아이들에게조차도 나는 아무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 순간 만큼은 나에게는 자끄 형의 편지만이 전부였다. 
신바람이 난 학생들이 자동차에서 내라는 군수를 보려고 
창문 앞에서 서로 밀치고 곤두박질치고 있는 동안 
나는 한구석으로 되돌아가 다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우리 착한 다니엘, 
아버지는 지금 브르따뉴에서 회사를 위해 능금주 장사를 하고 계시단다. 
내가 후작 비서로 일한다는 것을 아신 아버지는 
후작 집에다가 능금주를 몇 통 들여놨으면 하고 바라셨지. 
하지만 불행히도 후작은 아직까지도 포도주만, 그것도 스페인산 포도주만 마신단다. 
그래서 난 그런 사실을 편지에 써서 아버지한테 보냈지. 
그런데 그분이 뭐라고 답장을 써 보낸 줄 아니? 
'자끄, 넌 바보 같은 녀석이야!'라고 쓰신 거야. 하지만 상관없어.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아버지는 마음속 깊이 날 사랑하신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어머니는 지금 혼자 계신다. 너도 어머니한테 편지 쓰도록 해. 
너한테 아무 소식도 없다고 걱정하시더구나.
틀림없이 네가 기뻐할 소식을 빠뜨릴 뻔했구나. 
난 라땡 구역에 방을 하나 얻었단다... 라땡 구역에 말이다! 
생각 좀 해봐!... 내가 살고 있는 방은 소설책에 나오는 시인의 방처럼 
자그마한 창문이 있고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면 계속 이어지는 지붕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침대는 크진 않지만 필요할 경우에는 우리 두 사람이 잘 수 있을 정도는 된단다. 
방 한구석에는 책상이 있는데, 거기서 네가 시를 쓰면 좋을 것 같구나. 
아! 네가 지금 너와 함께 있으면....
네가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지금이라도 당장 날 만나러 오고 싶어할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나 역시 너랑 함께 있고 싶어. 언젠가는 오라는 연락을 보낼께.
그때까지는 늘 날 잊지 말고 사랑해 줘. 
그리고 학교 일은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가끔씩 쉬기도 하렴. 병이 나면 큰일이니까.
네게 따뜻한 키스와 사랑을 함께 보내며.
네 형 자끄 씀.
자끄 형은 정말 훌륭했다. 형의 편지는 감미로운 아픔을 안겨 주었다. 
나는 너무 기뻐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격한 감정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러자 지난 몇 달 동안 방탕하게 보냈던 내 생활이 떠올랐다. 
펀치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며 돌아다니거나 하사관들이 어울려 치는 
당구 게임에 끼어들어 점수를 계산해 주며 하고많은 날을 보냈던 
바르베뜨 까페에서의 생활은 정말 악몽처럼 생각되었다.
 '그래, 이제부터라도 모든 걸 청산해야지. 이젠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어. 
자끄 형처럼 용기를 갖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