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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31 - 알퐁스 도데

Joyfule 2012. 6. 1. 13:08
 
 
꼬마 철학자31 - 알퐁스 도데  
 
   어린 돈 주앙의 눈물 3.

   다락방에서는 로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불안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방안을 거닐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는 걸 본 그가 황급히 내게로 다가왔다.
   "다니엘 씨!"
그는 곁눈질로 계속 나를 살피며 내게 말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트렁크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린애처럼 눈물을 흘리다니!... 그래 무슨 일인지 한번 말해 보시오. 
자, 빨리 말해 봐요!... 무슨 일이 있었지요?"
나는 교장실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울먹이며 그에게 얘기해 주었다.
내 말을 다 듣고 나더니 로제는 얼굴이 환해졌다. 
그는 더이상 깔보는 듯한 거만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지 않았다. 
결국 내가 자기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학교에서 쫓겨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내게 손을 뻗치더니 이렇게 말했다.
"다니엘 씨, 당신은 정말 고귀한 마음씨를 가졌어요."
 그 순간 밖에서 자동차소리가 들려 왔다. 군수가 떠나는 것이었다.
"당신은 고귀한 마음씨를 가졌어요. 난 이 말밖에 할 수가 없군요... 
하지만 나는 그 누구도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는 그런 몹쓸 놈이 아니오."
내 좋은 친구인 펜싱 교사가 내 손목을 부서질 정도로 힘껏 쥐면서 말했다. 
갑자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울지 말아요, 다니엘 씨. 난 가서 교장선생님을 만나겠소.
 맹세코 당신이 쫓겨나도록 내버려 두진 않겠소."
그는 나가려고 한 발자국을 옮기더니 뭔가를 잊은 듯 다시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내가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모든 사실을 밝히기 전에 내 말대로 해줘요. 
사실 난 혈혈단신이 아니오. 외진 산골에서 병을 앓고 계시는 어머니가 계십니다... 
오로지 나만 믿고 의지하시는 어머니!... 불쌍한 어머니!... 
모든 일이 끝나면 제 어머니에게 사실대로 편지를 써주겠다고 약속해 주시오."
그는 차분하면서도 심각하게 말했다. 
그의 표정을 살피며 듣던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아니, 어떻게 하려구요?"
 로제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웃도리를 들쳐 보이며 호주머니 속에 있는 
피스톨의 반짝거리는 손잡이만을 슬쩍 보여 주는 것이었다.
나는 혼비백산해서 그에게 덤벼들었다.
  "자살하려는 거요? 당신 자살하려는 겁니까?"
  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친애하는 친구여, 내가 처음 교사라는 직업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나는 혹시 내가 경솔하게도 내 자신의 위신을 추락시키게 된다면 
굳이 불명예를 감수해 가면서까지 살아남진 않겠다고 다짐했었소... 
이제 그 약속을 지킬 순간이 왔어요... 
5분 내로 난 학교에서 쫓겨날 거요. 불명예를 감수해야 된단 말이오. 
한 시간 후면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될 것이오! 나는 마지막 총알을 삼키겠소."
그 말을 들은 나는 나가려는 그를 두 팔로 막고 문 앞에 버티고 섰다.
  "안 돼요! 로제, 당신은 나갈 수 없어요... 
당신이 죽도록 내버려 두느니 차라리 내가 그만두겠소."
  "내 의무를 다하도록 날 내버려 둬요."
그는 완강한 어조로 말하며 말리는 나를 떠밀고는 문을 조금 열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그의 어머니, 궁벽한 산골 어디엔가 살고 있다는 
그의 불쌍한 어머니 얘기를 그에게 해줘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당신 어머니를 위해서도 살아야 한다는 것, 
나는 어렵잖게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것, 
게다가 어쨌든 앞으로도 여드레가 남아 있다는 것, 
그토록 어마어마한 결심을 내리기 전에 최후의 순간까지 기다리는 건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차근차근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마지막 말이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았다. 
그는 교장선생님을 찾아가는 일과 또 
그 이후에 일어날 일을 몇 시간 늦추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때 종이 울렸다.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나는 교실로 내려갔다. 
인간이란 보잘것없고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망에 휩싸여 다락방에 들어갔던 내가 다소 즐거운 기분이 되어 다락방을 나오다니! 
나는 절친한 친구 펜싱 교사의 목숨을 구했다는 생각에 우쭐해졌다.
하지만 일단 의자에 앉고 나서 친구를 구했다는 감격이 사라지고 나자 
나는 곰곰이 되짚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로제는 살기로 작정했으니 그건 일단 잘 된 일이야. 하지만 난 어떻게 하나? 
그렇게 남을 위해 내 목을 헌신한 덕분에 학교에서 쫓겨나고 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절대로 유쾌한 상황이 아니었다. 
뿔뿔이 흩어져 사는 가족을 위해 멋진 집을 마련하기는 이미 글렀다. 
눈물을 흘릴 어머니와 노발대발하실 아버지가 머리속에 떠올랐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자끄 형이 생각났다. 
형의 편지가 마침 아침에 도착했으니 얼마나 잘 된 일인가! 
어쨌든 이런 곤경에서 헤어날 길이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형의 침대는 두 사람이 잘 수도 있다고 편지에 쓰여 있지 않았던가? 
여하튼 파리에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먹고 살아갈 방도가 있다니까....
그런데 여기서 어떤 두려운 생각 때문에 나는 주저하게 되었다. 
떠나려면 돈이 필요했다. 우선 기차삯이 있어야 하고, 
수위에게 빚진 58프랑도 있어야 하며, 상급생한테서 빌린 10프랑도 갚아야 하고, 
바르베뜨 까페에 내 이름으로 달아놓은 외상도 꽤 많았다. 
어떻게 그 많은 돈을 구한단 말인가?
 '쳇! 겨우 그깟 일로 불안해 하더니 나도 참 어리석군. 로제가 있잖은가? 
로제는 부자인 데다가 시내에서 펜싱을 가르치고 있으니 
자기 목숨을 구해 준 나한테 몇 프랑쯤은 빌려 줄 수 있을 거야'
일단 돈 문제를 해결하고 나자 나는 좀전에 있었던 
그 끔찍한 사건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즐거운 파리 여행만을 생각했다. 
나는 너무도 즐거워서 도저히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절망에 빠져 있는 모습을 즐기려고 자습실에 내려왔던 비오 씨는 
내 즐거운 표정을 보고는 실망하는 빛을 띠고 돌아갔다. 
나는 왕성한 식욕으로 점심식사를 잽싸게 먹어치웠다. 
나는 학생들이 눈 쌓인 운동장에서 노는 것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드디어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우선 로제를 만나는 일이 시급했다. 
나는 단숨에 구의 방까지 뛰어 올라갔다. 
그의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좋아! 바르베뜨 까페에 가 있을 거야.'
그날 아침부터 그런 엄청난 일을 겪었으니 그도 가만히 
방에 처박혀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나는 방이 비었다는 데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바르베뜨 까페에 뛰어가 문을 왈칵 열어 젖히고 
안을 들여다 보았지만 그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내가 그를 찾자 하사관들이랑 풀밭에 갔다고 누군가가 말해 주었다.
 '제기랄, 이런 고약한 날씨에 거긴 뭐하러 갔담?'
나는 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당구를 치자는 제의도 거절하고 나는 바지를 걷어 붙인 채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풀밭 쪽으로 달려갔다. 
내 좋은 친구 펜싱 교사를 만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