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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30 - 알퐁스 도데

Joyfule 2012. 5. 31. 11:51
 
 
꼬마 철학자30 - 알퐁스 도데  
 
   어린 돈 주앙의 눈물 2.
   그때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학생들은 군수에 대해 뭐라고 계속 떠들어 대면서 
   정문 앞에 서 있는 자동차 앞을 줄지어 지나갔다. 
   학생들이 수업을 받으러 교실 안으로 들어간 후 
나는 일단 그들에게서 벗어나 두세 개씩 계단을 뛰어 단숨에 고미다락방으로 올라갔다. 
혼자서 조용히 자끄 형의 편지를 읽고 싶었다.
  "다니엘 씨, 교장실에 손님이 와 있읍니다."
  '교장실에?... 교장선생님이 내게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서 있자 
수위가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 불현듯 군수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군수님이 와 계신가요?"
희망으로 가슴이 쿵쿵 뛰는 걸 느끼며 나는 계단을 네 개씩 뛰어올랐다.
살다 보면 당치도 않은 허황된 생각을 하는 날도 있는 법이다. 
군수가 날 기다린다는 전갈을 받은 순간 내겐 허무맹랑한 생각이 느닷없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그런 엉뚱한 생각 말이다. 
그 양반이 쌩 테오필 축제 때 내 시를 듣고 날 좋게 봐두었다가 
이제야 자기 비서로 삼으려고 급히 학교로 달려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는 그가 날 찾을 만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의당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 늙은 후작 얘기를 쓴 자끄 형의 편지 때문에 머리가 잠시 돌았던 게 틀림없었다.
하여튼 계단을 올라가면서 나는 군수의 비서가 될 거라는 생각을 점점 확고히 굳혔다. 
하늘로 날아오를 듯이 기뻤다.
복도를 막 꺾어 돌아서던 나는 로제와 마주쳤다. 
그는 얼굴이 백지창처럼 하얘져 있었다. 
뭔가 말을 하려는 듯 나를 바라보며 입을 달싹댔다. 
하지만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를 그대로 지나쳐 갔다. 
군수는 나를 기다릴 만한 여유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서둘러 댔다.
교장실 앞에 도착한 순간 내 가슴은 숨이 넘어갈 듯 뛰고 있었다. 
군수의 비서가 된다니, 정말 꿈만 같았다.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나는 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넥타이를 고쳐 맸다. 
나는 한번 더 손으로 머리를 매만지고는 손잡이를 살짝 돌렸다.
교장실 안에서 나를 기다리던 군수는 멋드러진 구레나룻을 기른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벽난로의 대리석판에 지그시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실내 가운을 입은 교장선생님은 빌로드 모자를 손에 든 채 
군수 옆에 공손하게 서 있었고, 
급히 불려온 비오 씨는 한쪽 구석에 숨을 죽이고 서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군수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 양반이 우리 집 하녀를 유혹했단 말이오?"
그는 계속 미소를 지으며 빈정거리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처음에 나는 군수가 농담하는 줄 알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들떠 상기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러나 군수는 농담을 하자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려는지 나를 쏘아봤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다시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난 지금 당신에게 한 가지 확인할 게 있어 이렇게 직접 찾아오게 되었소, 
다니엘 에세뜨 씨. 당신이 바로 내 아내의 몸종을 유혹한 다니엘 에세뜨 씨가 맞소?"
나는 군수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하녀라는 말이 군수 입에서 내뱉아지는 순간 나는 수치심으로 얼굴을 붉혔다. 
너무도 분개한 나머지 나는 목에서 튀어 나오는 대로 소리쳤다.
 "하녀라구요?... 난 결코 하녀를 유혹한 적이 없읍니다!"
군수는 계속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벽난로의 선반 위에서 자그마한 종이 꾸러미를 집어들었다. 
언뜻 보아서는 그게 뭔지 몰라 흥분을 삭이고 멍청히 그를 바라보았다. 
내 쪽으로 몸을 돌린 그가 그 꾸러미를 건성으로 흔들어 댔다.
  "선생, 이게 바로 당신의 죄를 밝혀 주는 뚜렷한 증거요. 
그 문제의 하녀 방에서 찾아 낸 편지란 말이오. 
서명도 돼 있지 않고, 또 그 하녀도 이름을 밝히려 하지 않았지. 
이 편지에는 중학교 얘기가 자주 언급되어 있더군. 
당신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비오 씨가 당신 필체와 문체라는 걸 확인했단 말이오."
그러자 구석진 곳에서 열쇠꾸러미가 사납게 흔들리며 쨍그렁댔다. 
군수의 얼굴엔 여전히 미소가 담겨 있었지만 목소리는 똑똑 부러지고 있었다.
 "싸르랑드 중학교의 모든 교사가 시인은 아니란 말이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머리속으로 번개처럼 지나가는 어떤 생각을 붙잡았다. 
그 종이를 더 자세히 보고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군수 쪽으로 돌진해 들어가듯 뛰어갔다. 
소란이 일까 두려워진 교장선생님이 나를 제지하려는 동작을 취했다. 
하지만 군수는 침착하게 내게 그 종이꾸러미를 내밀며 말했다.
  "보시오!"
 하나님 맙소사! 그것은 내가 쎄실리아에게 쓴 편지였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있었다.
 '오, 쎄실리아. 이따금씩 황량한 바위 위에서'로 시작되는 편지와 
'꿈결처럼 행복한 하룻밤을 보내도록 허락하신 천사...' 
어쩌구 하며 쓴 감사 편지까지 몽땅 다 묶여 있었다. 
밤을 지새고 머리를 쥐어 짜며 아름다운 꽃 같은 미사여구를 만들어 
겨우 하녀의 발 밑에다 갖다바쳤다니!... 
고귀한 귀족계급인 그 여인이 사실은 
군수 부인의 나막신에 묻은 흙이나 터는 하녀였다니! 
내 얼굴에는 분노와 놀라움이 뒤범벅되어 떠올랐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방안에 있던 다섯 사람을 짓눌렀다. 
군수가 히죽거리며 침묵을 깼다.
 "흠, 어떻소, 돈 주앙 공? 그 편지들을 당신이 정말 쓰지 않았단 말이요?"
 대답 대신 나는 고개를 아래로 푹 수그렸다. 
물론 한마디쯤 변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 
로제의 이름을 밝히느니 차라리 내가 그 모든 비난을 받을 각오가 돼 있었던 것이다.
그 헤어날 길 없는 재난의 와중에서도 
나는 친구의 정직함에 대해 추호도 의심을 품지 않고 있었다. 
그 편지를 보는 순간 나는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을 머리에 떠올렸던 것이다.
'로제는 아무 생각 없이 내 필체를 흉내내서 그대로 베껴 썼을는지도 몰라. 
차라리 당구 게임이나 하면서 당구공을 치는 게 나았을 텐데!'
나는 정말 순진하게도 동료 교사인 로제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군수는 
편지를 호주머니에 다시 집어넣더니 교장선생님과 비서에게로 몸을 돌렸다.
  "여러분은 이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아시겠죠."
이 말에 비오 씨의 열쇠는 구슬픈 소리를 냈고, 
교장선생님은 머리를 땅에 닿을 정도로 숙이면서 죽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에세뜨 씨는 지금 당장 쫓겨나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소란을 막기 위해서는 여드레쯤 더 남아 있어야 해요."
 새 교사를 데려오는 데 여드레가 필요했던 것이다.
  '쫓겨난다'라는 끔찍한 말에 나는 모든 용기가 다 빠져나가 버리는 듯싶었다. 
맥이 쭉 빠진 나는 아무 말 없이 절을 하고는 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밖에 나오자마자 눈물이 한꺼번에 왈칵 쏟아졌다. 
나는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단숨에 내 방까지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