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5 - 알퐁스 도데
꼬마 철학자 다니엘2
그 집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정말 끔찍하게 느껴졌다.
나는 죽을 때까지 그 집을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층계는 오물로 끈적거렸고, 마당은 너무 좁아서
마당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인 데다가 문지기와 가난한 구두장이가
마당 한구석에 있는 펌프 옆에다 집을 지어 마당은 더욱더 좁았다.
리용에 도착하던 날 저녁, 안누 할머니가 부엌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비명을 내질렀다.
"악! 바퀴벌레다! 바퀴벌레야!"
비명소리를 듣고 우리는 부리나케 달려갔다.
아니,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부엌은 온통 그 흉칙한 벌레로 가득 차 있었다.
사방의 벽뿐만 아니라 벽난로나 찬장서랍 등 어디를 둘러봐도
그 고약한 녀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득실대고 있었다.
우리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망연자실해서 서 있다가
동시에 마음이 통하기라도 한 듯 이 벌레들을 마구 짓이겨 죽이기 시작했다.
이미 안누 할머니가 죽여버린 바퀴벌레도 나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죽여도 죽여도 바퀴벌레들이 줄어들기는커녕
원군이 지원을 하듯 수채구멍에서 계속 기어나왔다.
우린 아예 수채구멍을 틀어막아 버렸다.
그러나 다음날 저녁이 되자 바퀴벌레들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오는지 끝없이 튀어나와 모여드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바퀴벌레들을 잡기 위해서 일부러 고양이를 사다가 키웠지만 헛수고였다.
저녁마다 부엌은 끔찍한 바퀴벌레의 도살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 극성스러운 바퀴벌레들 때문에 나는 첫날 저녁부터 그곳 리용을 증오하게 되었다.
날이 갈수록 바퀴벌레들의 극성은 심해만 갔고 그 이전의 생활습관은 모조리 버려야만 했다.
심지어는 식사시간까지 바꿔야만 했다.
빵은 랑그도끄에 있던 집에서 먹던 것과는 모양부터 달라졌는데
식구들은 그것을 '왕관빵'이라고 불렀다. 얼마나 터무니없는 이름인지!
한번은 안누 할머니가 푸줏간에 가서 '불고기감 쇠고기'를 달라고 했더니
푸줏간 주인이 코웃음치면서 대놓고 비웃었다고 할머니는 펄펄 뛰면서 분개했다.
미개인 같은 이 리용 사람들은 도대체 불고기가 무엇인지조차도 모른단 말인가?
랑떼른느 거리며, 바퀴벌레가 득실대는 집이며, 좁아터진 마당이며, 미개인처럼 멍청한 리용 사람들!
나는 이곳에서의 생활에 아주 진저리가 나기 시작했다.
일요일이면 우리 식구들은 지긋지긋한 그곳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모두들 양산을 받쳐 들고 론 강가로 산책을 나갔다.
우리 가족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옛날 집 방향인 쁘라슈 쪽을 향해 걸어갔다.
"이렇게 그쪽을 보고 걷노라면 우리가 살던 곳에 가까이 가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져."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나보다 더 괴로와하고 있음에 틀림없을 어머니가 그렇게 말했다.
모처럼 기분을 전환하기 위한 산책이었는데 어머니의 말에 오히려 모두들 우울해졌다.
아버지는 투덜거렸고, 자끄 형은 계속 눈물을 짜 댔으며, 나는 뒤에 처져 힘없이 걸었다.
그러나 아마 어머니의 말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이제 가난해졌기 때문에
거리에 나가는 것조차 창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리용에서의 생활도 어언 한 달이 흘러갔을 즈음에 안누 할머니가 병에 걸렸다.
항구 도시인 리용을 휩싸고 있는 지독한 안개 때문에 할머니는 숨쉬기조차 매우 힘들어 했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를 다시 해가 하루종일 내리쬐는 남부로 보내야만 했다.
어머니를 끔찍이도 사랑하던 안누 할머니는 우리와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슬퍼서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이곳에 계속 머물러도 결코 죽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 함께 살도록 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할머니의 건강을 위해선 남부로 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우리 부모님은
안 가려고 발버둥치는 안누 할머니를 강제로 배에 태워 남부로 가게 했다.
안누 할머니가 우리 집을 떠난 후 새로운 하녀를 구하지 않았다.
하녀를 구하지 않고 어머니가 손수 집안일을 한다는 것은
우리 집의 가난이 절정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했다.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땐 문지기의 부인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그토록 입맞추기를 좋아하던,
어머니의 부드럽고 하얀 손은 화덕불에 그을려 점점 검고 거칠어져 갔다.
시장에 가는 일은 자끄 형의 차지가 되었다.
"자끄, 가게에 가서 비누하고 소금을 좀 사와라. 그리고 햄도."
어머니가 커다란 바구니를 들려 주며 이렇게 일러 주면
자끄 형은 계속 눈물을 흘려 대면서도 사오라는 물건들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잘 사왔다.
불쌍한 자끄 형! 자끄 형은 점점 불행해져 갔다.
점점더 어려워져 가기만 하는 이곳에서의 생활에 짜증이 나서 못 견디게 된 아버지는
자끄 형이 항상 울고만 다니는 걸 이제는 더이상 못 참아 했다.
아버지는 마침내 자끄 형을 미워하고 때리기까지 했다.
"자끄! 이 멍청한 놈아! 이 덜 떨어진 얼간이야!"
아버지가 형을 구박하는 소리를 식구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들어야만 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무섭게 돌변해 버리자,
불쌍한 자끄 형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갈팡질팡했다.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려고 애쓰는 바람에
그의 얼굴은 몹시도 흉하게 일그러지곤 했다.
자끄 형은 날이 갈수록 완전히 불행해졌고 정신적인 안정도 잃게 되었다.
어느날 저녁이었다.
식사를 하려고 모두들 식탁에 둘러앉고 나서야 집안에 물이 한 방울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가 바라는 모양인데 제가 물을 떠오겠어요."
마음씨 착한 자끄 형이 이렇게 말하며 일어나서 커다란 사기 단지를 들었다.
아버지는 의외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떠오겠다고? 그런데 네가 간다면 틀림없이 그 단지를 깨뜨릴게다."
"자끄야! 단지를 깨지 않도록 아주 조심해야 한다."
어머니께서 차분하게 타일렀다.
"당신이 그 아이한테 단지를 깨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고 해서 그 아이가 단지를 안 깰 것 같소?
아마 틀림없이 단지를 깨뜨리고야 말 거요."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자끄 형은 울먹이면서 말했다.
"아버지는 마치 제가 단지를 깨뜨리기를 원하시는 것 같네요."
"아니다. 난 네가 단지를 깨는 걸 바라지 않아.
다만 네가 반드시 단지를 깨고야 말 것이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아버지는 말대꾸하는 것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자끄 형은 더이상 대꾸를 하진 않았으나,
'흥! 내가 단지를 깰 거라구요? 좋아요, 어디 두고 봅시다'라고 속으로 삭이는 듯이 보였다.
그러고는 기분이 몹시 상해서 본때를 보여 주겠다는 듯이 단지를 들고는 휭하니 나가 버렸다.
그런데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형이 들어올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몹시 걱정이 되는지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제발 그 아이에게 아무런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아무렴, 당신은 그애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고 있겠지.
하지만 그애는 분명히 단지를 깨뜨렸기 때문에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을 거야."
아버지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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