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36 - 알퐁스 도데
싸르랑드여, 안녕!
방금 본 그 섬뜩한 광경에 얼이 빠진 채
허겁지겁 학교 정문을 빠져나오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수위실 문을 왈칵 열어 젖히고 누군가가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에세뜨 씨! 에세뜨 씨!"
바르베뜨 까페의 주인과 그의 친구 까싸뉴 씨가 당황한 듯
아주 불손한 태도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까페 주인이 먼저 말을 꺼냈다.
"떠나신다는 게 사실인가요, 에세뜨 씨?"
나는 되도록 침착하려고 애쓰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오늘 떠납니다."
바르베뜨 씨가 얼굴색이 하얘져서는 팔짝 뛰었고,
옆에서 잠자코 있던 까싸뉴 씨도 몹시 놀란 듯했다.
하지만 바르베뜨 씨는 까싸뉴 씨보다 훨씬 놀라고 당황한 듯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댔다.
나는 그동안 그의 까페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며
술을 퍼마시고 질탕하게 놀아 댔기 때문에 갚아야 할 외상값만도 엄청나게 많았다.
"뭐라구요? 오늘 떠난다구요?"
"예, 오늘 떠납니다. 그래서 지금 좌석을 예약하러 가는 중입니다."
그들은 내 목덜미를 잡아쥐려는 듯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서며 내게 덤벼들려는 자세를 취했다.
"외상값은요?"
바르베뜨 씨가 물었다.
"그럼 내 돈은 어떡합니까?"
까싸뉴 씨도 목청을 높여 질새라 소리쳤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먼저 수위실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굳어진 표정으로 제르만느 신부님이 준 금화를
호주머니에 한줌 가득히 끄집어 내어 책상 위에다 올려놓고
두 사람에게 갚아야 할 돈을 계산해 건네주었다.
돈을 받아 쥔 그들은 최면에서 풀린듯 잔뜩 지푸려져 있던 오만상을 펴며
온화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행여나 돈을 받지 못할까 봐 잡아 먹을 듯 다그쳤던
자신들의 행동을 조금쯤 부끄러워하면서도 돈을 받아 냈다는 데 즐거워진
두 사람은 돈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늘어놓으면서 우정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에세뜨 씨, 정말 떠나시는 겁니까?...
아 정말 유감이로군요! 학교 측으로 봐서는 크나큰 손실입니다."
그들은 계속 혀를 차면서 오! 아! 하는 한숨을 연거퍼 내쉬었다.
그것뿐만
아니었다. 그들은 울먹거리며 나를 포옹하고 손을 맞잡고 흔들어 대며 법석을 떨었다.
어젯밤만 같았어도 나는 그들의 입바른 우정에 속아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나는 감정의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도가 트이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볼 만큼 성숙해 있었다.
15분 동안 궁륭 밑에서 보낸 지난 밤의 처절한 경험으로 말미암아
나는 인간과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하룻밤 사이에 난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고
전혀 새로운 각도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그 가증스런 인간들이 싹싹하게 굴수록 나는 그들이 더욱 혐오스러워졌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우스꽝스런 수다를 중간에 가로막아 버렸다.
나는 학교에서 잽싸게 빠져나와 나를 그 괴물같은 인간들로부터
멀리멀리 데려갈 합승마차에 자리를 예약하러 부리나케 뛰어갔다.
역마차 매표소에서 돌아오던 중에 나는 바르베뜨 까페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난 들어가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지난 몇 달 동안 그곳에서 보낸 방탕한 나날이 떠올라 치가 떨렸다.
그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못된 호기심에 이끌려
진열장 너머로 그 안을 슬쩍 들여다보았을 뿐이었다.
까페는 그야말로 장날처럼 복작대고 있었다.
그날은 내기 당구가 벌어지는 날이어서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모양이었다.
파이프 담배 연기 사이로 모자걸이에 걸린 기병
모자와 술장식이 달린 혁대가 칸델라 빛을 막아 번쩍이고 있었다.
양의 가면을 뒤집어 쓴 인간들이 전부 모인 듯한
그 무리 속에 펜싱 교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나는 유리창에 코를 박고 피둥피둥 살찐 불그레한 얼굴들을 바라보았다.
술잔마다 가득 찬 압셍뜨술이 넘실넘실 춤추고 있었으며,
한쪽 식탁 구석에는 브랜디 술병이 주둥이가 깨어져 나간 채 넘쳐 흐르고 있었다.
시궁창 같은 곳에서 몇 달 동안을 살았다고 생각하자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당구공을 굴리고, 점수를 기록하고, 펀치술 값을 지불하고,
모욕과 경멸을 받으며, 날이 갈수록 타락해 갔었다.
나는 파이프를 끊임없이 씹어 대며 군가를 진창 불러 대던 내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러한 과거의 환상들은 강당 안에 매달린 자주색
넥타이가 흔들거리는 모습을 봤을 때 느꼈던 그 섬뜩한 환상보다
더욱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나는 몸을 돌려 마구 달음질쳤다.
트렁크를 운반해 줄 짐꾼과 함께 학교 쪽으로 걸어가다가
펜싱 교사가 광장 위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손에 든 지팡이를 휘두르며 그는 펠트 모자를 삐닥하게 쓴 채
가느다란 콧수염을 반짝반짝 윤기나는 멋진 구두에 비춰 보면서
즐거운 표정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멀리서 경악스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저렇게 잘생긴 인간이 그토록 못된 성품을 갖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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