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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37 - 알퐁스 도데

Joyfule 2012. 6. 8. 07:46
 
 
꼬마 철학자37 - 알퐁스 도데  
 
   싸르랑드여, 안녕! 2.

   마침 나를 알아본 그는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예의 그 후덕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가 점차 내게 가까와질수록 
   지난밤 궁륭에서 들었던 끔찍한 얘기가 되살아났다.
 "당신을 한참 동안 찾았읍니다. 
내가 무슨 얘길 들었는 줄 아십니까? 당신이...."
내 눈치를 살피며 떠벌리던 그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뚫어지게 쏘아보는 내 시선을 의식한 그는 
거짓과 미사여구로 가득 찬 말을 어물어물 얼버무렸다. 
분명히 그 비열한 인간은 자기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내 눈 속에서 
많은 것을 읽어 냈을 것이었다. 
그의 낯빛이 갑자기 창백해지는가 싶더니 허둥지둥 당황해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일순간에 불과했다. 
몇 번 헛기침을 하고 다시 의젓함을 되찾은 그가 마치 
강철과도 같이 차갑고 반짝이는 눈길로 내 두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단호한 표정으로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불만스런 것이 있으면 자기한테 와서 얘기하라고 중얼거리면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악당 같은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가벼운 전율이 온몸에 퍼져 드는 걸 느꼈다.
학교에 돌아와 보니 모두 수업에 들어가고 학교 구석구석이 적막에 쌓여 있었다. 
짐꾼을 데리고 나는 고미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짐꾼이 한 꾸러미로 싸놓은 트렁크를 어깨에 걸머지고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얼음 창고처럼 으시시하게 소름이 돋는 골방에 잠시 머물렀다. 
나는 장식품 하나 없는 더럽고 지저분한 벽과, 
가장자리가 들쭉날쭉하게 파여진 새까만 책상을 휘둘러보고 
창가로 가서는 흰눈이 소복이 쌓인 운동장의 플라타너스들을 무심히 내다보았다. 
그리고 그동안 정들어 버린 모든 것들에게 하나씩 마음 속으로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바로 그 순간, 천둥을 치듯 우렁찬 고함소리가 교실에서 들려왔다. 
제르만느 신부님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자 내 마음은 아주 푸근해 졌으며, 눈가에선 몇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뭔가 잃은 듯한 허전함에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두 번 다시 찾아 보지 못할지 모르는 그곳의 모습을 
내 눈에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담아가고 싶었다.
나는 철망이 쳐진 높다란 창문이 연이어 나 있는 긴 복도를 지나갔다. 
내가 처음으로 어둠 속을 더듬으며 헤매다가 검은 눈동자 아가씨를 봤던 그 복도 말이다. 
사랑하는 그녀에게 언제까지나 신의 가호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나는 이중문으로 된 교장실 앞을 지나쳤다. 
그리고 몇 걸음 더 가자 비오 씨의 방이 나타났다. 
나는 그 방 앞에서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열쇠, 그 끔찍한 열쇠꾸러미가 자물통에 매달린 채 바람결에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두려움에 몰아넣곤 하던 그 무시무시한 열쇠꾸러미를 잠시 노려보았다. 
범하기 힘든 어려움이 밀려들자 갑자기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살그머니 열쇠 뭉치를 빼낸 나는 
그걸 외투자락에 감추고는 황급히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중급반 운동장 끝에는 썩은 물이 고인 꽤 깊은 우물이 하나 있었다. 
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모두 수업을 받고 있을 때라 그 시간엔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다. 
그 안경잡이 마귀할멈도 아직 커튼을 걷어올리지 않았다. 
범행을 하기에는 절호의 기회였다. 
날 그토록 괴롭혔던 그 빌어먹을 열쇠꾸러미를 외투자락 안에서 꺼낸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힘껏 우물 속에다 집어던졌다... 
쨍그렁! 쨍그렁! 쨍그렁!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던 열쇠꾸러미가 
우물벽에 부딪쳐 튀어 올랐다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물 속으로 잠겨 버렸다. 
이전에는 감히 상상조차 못할 범행을 저지르고 난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곳을 유유히 떠났다.
학교에서 막 빠져나오는데 정문 앞에서 비오 씨와 맞닥뜨렸다. 
그는 빈손으로 얼이 빠진 듯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내 곁을 지나치던 그는 불안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불쌍한 인간은 내가 그 열쇠를 혹시 봤는지 묻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입만 달싹댈 뿐 아무 말도 못하고 안절부절했다. 
바로 그때, 수위가 계단 위편에서 몸을 기울이고 소리쳤다.
  "비오 씨, 아무리 찾아도 열쇠가 안 보여요!"
  비오 씨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구, 저런!"
  그러고는 그는 탐험여행을 떠나는 미친 사람처럼 사라졌다.
비오 씨가 곤경에 처해 허둥대는 꼴을 좀더 오래 즐기고 싶었지만 
아름므 광장 쪽에서 합승마차의 출발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나는 마차가 나만 남겨두고 떠날까 봐 조급해 하며 다 녹슬어 버린 철근과 
거무스름하게 그을린 돌로 된 학교를 뒤로 한 채 서둘러 광장으로 뛰어갔다.
이제 가면 나는 음침하게 웅크린 싸르랑드 중학교도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이다. 
무례하고 말썽만 피우며 지긋지긋하게 속만 썩혔던 중급반 학생들도 내게서 멀어져 가고, 
터무니없는 규율로 옥죄던 비오 씨의 규정집도 다시는 안 봐도 될 것이다. 
악몽 같았던 한 시절을 추억 속에만 묻어 둘 뿐 결코 이곳을 찾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재수좋은 드 부끄와랑 후작은 오랫동안 바르베뜨 까페에서 갈고 닦았던
내 복수의 칼을 피하게 되었으니 내가 떠난 것을 몹시 좋아할 것이다.
나는 모든 걸 훌훌 떨쳐 버리고 세 마리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최고 속력으로 달려 바티스트 삼촌 댁으로 향했다. 
나는 어머니를 만나 뜨거운 포옹을 하고 파리의 라땡 구역에 있는 
사랑하는 자끄 형의 방에서 하루빨리 형을 만나 보고 싶은 마음에 한없이 부풀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