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46 - 알퐁스 도데
그립고 먼 추억의 겨울밤 3.
우리는 꽤 즐겁게 식사를 했고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된 듯한 기분으로 나는 열심히 먹어 댔다.
식사를 마치고 우린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창문 위에 말타듯 걸터앉아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있는 동안
자끄 형은 책상에 앉아 열심히 계산하고 있었다.
형은 몹시 불안해 하는 것 같았다.
손톱을 깨물기도 하고 뒤치락거리기도 하면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손가락을 꼽아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환성을 지르며 일어섰다.
"만세!... 성공이다!"
"뭐가 성공이야, 형?"
"우리들의 예산을 짜는 데 성공한 거야.
내 빠듯한 수입으로 예산을 짜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그렇지 않겠니?
조금만 아껴쓴다면 우리 둘이 살아가는 데 한 달에 60프랑만 있어도 되겠어."
"뭐, 60프랑?... 형은 후작님한테 한 달에 백 프랑씩 받지 않아?"
"그래. 그런데 그 중에서 40프랑은 엄마한테 보내드려야 돼.
그래야 우리 가족이 다시 모여 살 수 있지...
그럼 나머지 60프랑 중에서 방세 15프랑 내고...
그리 비싼 건 아니야. 그저 잠이나 자고... 유지비도 많이 드는 방은 아닌 데다가...
별 신경쓸 일도 없을 정도로 작은 방이지.
자고 나서 침대시트나 정리하면 돼. 그것도 내가 하면 되고."
"나도 그쯤은 할 수 있어, 형."
"아냐, 그럴 순 없지. 아카데미 회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야.
그건 그렇고 다시 예산 문제로 돌아가자꾸나...
그러니까 방세가 15프랑, 석탄값은 5프랑만
들여도 돼. 내가 매달 공장에 가서 직접 석탄을 가져오니까.
그럼 40프랑이 남지? 네 식비로 30프랑을 쓰자.
넌 아까 갔던 그 간이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도록 해라.
디저트 없이 한 끼에 15쑤우인데, 너도 먹어 봐서 알겠지만 그다지 나쁘진 않아.
그런데 점심은 5쑤우짜리로 때워야 한다. 괜찮겠니?"
"그럼! 난 괜찮아."
"좋아, 그래도 아직 10프랑이 남지? 세탁비로 7프랑이 필요할 거고...
내가 시간이 있으면 직접 해도 될 테지만, 유감이야...
그러면 3프랑이 남는데 그 중 30쑤우는 내 점심식사에 들어갈 거고...
참, 너도 알지? 난 후작님 댁에서 매일 훌륭한 저녁식사를 하니까
너처럼 영양가 많은 점심식사를 할 필요는 없단 말이야.
마지막으로 남은 30쑤우는 잡비나 담배값, 우표값으로 쓰고
그리고 예비비로 좀 남겨 두는 거야.
이렇게 되면 정확히 60프랑이 맞아 떨어지지? 자, 어때?"
자끄 형은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우뚝 섰다.
"아니야, 예산을 다시 짜야겠는데... 뭘 빠뜨렸어."
"뭘?"
"초값 말이야!... 초가 없으면 밤에 네가 어떻게 시를 쓰겠니?
그건 꼭 필요한 지출이고, 한 달에 최소한 5프랑은 있어야 해... 어디서 5프랑을 빼낸다지?
엄마에게 보내는 돈에선 절대로 안 돼... 음... 그래, 그거야!
이제 3월이 되면 곧 봄이 되고, 그러면 따뜻할 거야."
"그래서, 형?"
"그럼, 다니엘, 날씨가 따뜻해지면 석탄이 필요없잖아?
석탄 살 돈 5프랑으로 초를 사는 거야. 그럼 문제는 해결됐지.
분명히 난 타고난 재무부 장관감이야...
어때? 이번엔 빠뜨린 것 없이 딱 들어맞지? 쯧,
아직 구두하고 옷 문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그건 내가 어떻게 해결해 보기로 하고...
난 매일 저녁 8시부터는 자유의 몸이니까 어디 자그마한 가게의 경리자리를 찾아 봐야겠어.
틀림없이 내 친구 삐에로뜨 씨가 쉽게 자리를 얻어 줄 거야."
"아! 그럼 형이랑 삐에로뜨 씨랑은 꽤 친한가 보구나? 그 집에 자주 가?"
"그럼, 거의 매일 가다시피 하지. 밤에는 음악을 연주하거든."
"야! 삐에로뜨 씨는 음악가인 모양이지?"
"아냐! 그가 아니고 그의 딸이 음악가지."
"딸이라구? 딸이 있단 말이야? 형! 삐에로뜨 양은 예뻐?"
"아이 참, 넌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묻는구나. 나중에 대답해 줄께.
지금은 너무 늦었다. 자도록 하자."
형은 무척 당황한 듯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아주 큰 동작으로
마치 아가씨처럼 정성스럽게 침대시트의 가장자리를 매트리스 밑으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 침대는 우리가 옛날 랑떼른느 가에 살 적에 함께 쓰던 것과 거의 똑같은 일인용 쇠침대였다.
"자끄 형, 랑떼른느 집에 있던 우리 침대 생각나?
우리가 밤에 몰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아버지가 '빨리 불 꺼라!
안 그러면 내가 달려갈 테다!'라고 고래고래 소릴 지르셨잖아!"
형이 어찌 그것을 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추억에 잠겨 옛날을 더듬어 보았다.
쌩 제르멩 종탑에서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러나 우린 두 눈이 더욱 말동말똥해지고 있었다.
"자, 이제 그만 자자!... 잘 자!"
형이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형은 이불 밑에서 킥킥거리고 웃어 댔다.
"왜 웃는 거야, 형?"
"미꾸 신부님 때문에... 후후후... 너 그 성가대 양성소의 미꾸 신부님 생각나지? 생각나니?"
"물론이지!"
그러고 나서 우린 쉬지 않고 웃어 대며 얘기하고, 또 얘기했다.
이번에는 내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형 이제 그만 자자구."
그런데 잠시 후에 오히려 내가 또 입을 열고 말았다.
"그리고 루제 말이야, 형! 그 아이 생각나?"
그러자 다시 웃음이 터져나왔고, 다시 얘기가 끝없이 계속되었다.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주먹으로 힘차게 벽을 치는 바람에 우린 깜짝 놀랐다.
형이 내 귀에다 대고 소곤거렸다.
"꾸꾸블랑이야."
"꾸꾸블랑? 그게 뭔데?"
"쉿!... 목소리를 낮춰... 옆방에 사는 여자의 이름이야.
우리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다고 투덜거리는 거야."
"얘기해 줘, 형! 옆방 여자는 왜 그렇게 이상한 이름을 갖고 있지?
흰 뻐꾸기처럼 생겼어? 왜 꾸꾸블랑이야? 젊어?"
"왜 그런진 보면 알게 돼. 언젠가는 계단에서 마주치겠지.
여하튼 빨리 자자. 안 그러면 꾸꾸블랑이 더 화를 낼지도 모르니까."
형이 촛불을 끄고 눕자 나는 어릴 때처럼 형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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