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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49 - 알퐁스 도데

Joyfule 2012. 6. 23. 13:15
 
 
꼬마 철학자49  - 알퐁스 도데  
 
 엄마의 소꼽동무
 삐에로뜨 씨가 스무 살 정도의 청년시절엔 
 장차 그가 쏘몽 가의 라루트 도자기상회를 이어받아서 
 연간 20만 프랑의 거액을 벌어들이는 큰 상회를 경영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 당시 삐에로뜨는 한번도 마을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었고 세벤느 지방 사투리밖에 할 줄 몰랐다. 
정직하고 건실한 젊은이였던 그는 누에를 쳐서 연간 5백 프랑을 모으기도 했다. 
게다가 오르베뉴 지방의 춤도 썩 잘 추는 호탕한 기질이었으며, 찬송가도 잘 불렀다. 
하지만 다른 청년들처럼 술을 먹고 술집 주인에게 행패를 부리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 
그 또래의 청년들처럼 삐에로뜨에게도 아주 착한 성품을 가진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는 일요일마다 저녁기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녀를 뽕나무 밑으로 데리고 가서 함께 가보트 춤을 추곤 했다. 
그녀는 유난히 키가 커서 꺽다리 로베르트라고 불렸다. 
로베르트는 열여덟 살로 그녀 역시 삐에로뜨처럼 고아였는데 
가난했지만 성실하게 누에를 쳤고 읽고 쓰는 것도 아주 능숙했다. 
세벤느 지방에서는 지참금보다도 이러한 능력이 더 값어치 있게 여겨졌다. 
로베르트를 매우 자랑스러워하던 삐에로뜨는 자기가 당첨만 되면 그녀와 결혼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세 번씩이나 성수에 손을 담그고 기원한 후에 뽑았는데도 당첨되지 않았다. 
불쌍한 삐에로뜨는 로베르트와 결혼할 비용을 마련하지 못했고 실망하여 비탄에 잠겼다. 
보다 못한 어머니는 유모였던 삐에로뜨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소꼽동무인 그를 도와 주기로 결심했다. 
그때만 해도 에세뜨 집안은 부자였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에게 2천 프랑을 빌려 줄 수 있었다. 
그래서 삐에로뜨는 로베르트와 결혼할 수 있었고 
이 세상의 행복을 몽땅 차지한 행운의 사나이처럼 보였다. 
항상 어머니의 착한 마음씨에 고마와하며 은공을 갚으려고 고심하던 그들 두 사람은 
고향에서는 도저히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여 
돈을 벌기 위해선 파리로 가야 한다고 용단을 내렸다. 
고향을 떠난 지 일 년이 지나도록 그들에게서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이었다. 
어머니는 '삐에로뜨와 그의 아내'라고 서명이 된 감동적인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그 편지에는 저축하여 처음으로 모은 돈 3백 프랑도 동봉되어 있었다. 
다음 해에도 그들은 '삐에로뜨와 그의 아내'라고 서명이 된 편지와 함께 천 이백 프랑을 보내왔다. 
편지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에세뜨 가족들에 대한 축원이 쓰여 있었다. 
그 편지가 배달되었을 당시엔 우리 집은 완전히 거덜난 상태였다. 
공장을 막 팔아치웠으며, 이번엔 우리가 고향을 등져야 할 판이었다. 
어머니는 비탄에 빠져 '삐에로뜨와 그의 아내'에게 답장을 쓰는 것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소식이 두절되어 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자끄 형이 파리로 가서 그를 찾아갔을 때 그 착한 삐에로뜨 씨는 그의 아내가 
파리에 와서 생활을 일구기까지의 이야기들은 참으로 감동적이고 시적이었다.
파리에 도착하자 삐에로뜨 씨의 아내는 일을 가리지 않고 남의 집 하녀 일부터 하기 시작했다. 
맨 처음 들어간 집이 바로 라루트 상회였다. 
라루트 집안은 인색하고 편집광적인 부유한 상인 집안이었는데 점원도 하녀도 두려고 하지 않았다. 
모든 일을 손수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선생, 난 쉰 살 때까지만 해도 내가 직접 바지를 만들어 입었단 말이요!"
라루트 영감은 늘 그렇게 자랑했다고 한다. 
말년이 되어서야 겨우 그들은 바로 그 자리에 로베르트가 들어간 것이었다. 
12프랑밖에 못 받고도 해야 할 일은 또 얼마나 많았던지! 
가게, 가게 뒷방, 오층에 있는 아파트, 매일 아침 가득 채워야 하는 물통 두 개... 
그런 열악한 조건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마 세벤느 지방 사람들밖에 없을 것이다. 
세벤느 출신인 로베르트는 젊고, 민첩하고, 어린 암소모양 허리 힘도 좋았고, 일도 열심히 했다. 
그녀는 단숨에 그 많은 일들을 해치웠고 게다가 힘든 기색은 전혀 내보이지 않고 
하루종일 두 노인을 보며 예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주인들은 싹싹하고 꿋꿋한 성격의 로베르트를 차츰 마음에 들어 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그녀의 사생활에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고, 
라루트 영감은 어느날 자진해서 삐에로뜨 씨가 원한다면 장사 밑천을 약간 빌려 주겠다고 제의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아무리 쌀쌀맞은 인간도 이렇게 느닷없이 친절을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삐에로뜨 씨는 늙은 조랑말 한 마리와 짐수레를 사서 고물장사를 시작했다. 
그는 온 파리 장안을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휩쓸고 다녔다.
  "쓸모없는 물건들을 몽땅 치워 드립니다!"
 꾀바른 삐에로뜨 씨는 팔지는 않고 사들이기만 했다. 
깨진 항아리, 고철, 헌 종이, 병조각,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가구, 낡은 장식즐 등 
이젠 값어치도 없고 쓸모도 없으면서 버리기도 아깝고 해서 
그냥 가지고 있는 것이면 뭐든지 모조리 달갑게 사들였다. 
거저 얻는 것들도 상당히 되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돈도 받지 않고 그냥 가져가기만 해도 고마와했다.
"쓸모없는 물건들을 몽땅 치워 드립니다!"
삐에로뜨 씨는 몽마르뜨르 거리에선 꽤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그 북적거리는 거리에서 기반을 닦으려는 모든 행상인들처럼 
그 또한 안 주인이나 하녀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을 독특하고 기묘한 노래가락을 하나 만들어 냈다.
 "쓸모없는 물건들을 몽땅 치워 드립니다!"
삐에로뜨 씨는 조랑말에게 아나스타지한테 느릿느릿 구슬픈 어조로 주절주절 얘기를 하며 다녔다.
 "자! 가자, 아나스타지! 가자, 아가...."
 착한 아나스타지는 머리를 푹 숙인 채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그를 따라다녔다. 
그가 아나스타지와 골목을 누비며 외쳐 댈 때마다 이 집 저 집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봐! 여봐! 아나스타지!"
 순식간엔 짐수레엔 고물이 수북이 쌓였다. 
그러면 아나스타지와 삐에로뜨 씨는 몽마르뜨르 거리에 있는 
고물 도매상에 가서 짐을 부려놓고 꽤 많은 돈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그는 다른 사람들에겐 전혀 쓸모없고 귀찮은 물건을 팔아 상당한 수입을 벌어들였다.
그 기발난 장사로 비록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먹고 살기에는 넉넉할 정도는 되었다. 
첫해에 그는 라루트 영감에게 빌린 돈을 갚고도 우리 집에 3백 프랑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