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50 - 알퐁스 도데
엄마의 소꼽동무2.
세월은 흘러서 삐에로뜨 씨가 파리에 온 지도 3년째에 접어들었다.
그해는 바로 혁명이 일어나던 18xx년이었다.
파리 시민들은 쓸모없는 늙은 왕을 몰아 내기에만 너무나 열중해서
삐에로뜨 씨의 외침에는 더이상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루종일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러 대도 대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매일 저녁 빈 수레를 끌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으며 설상가상으로 아나스타지도 죽어 버렸다.
그래서 그는 고물장사를 때려 치웠다,
그때 노약해진 라루트 부부는 가게에 점원을 한 명 두기로 결정했는데
그 일을 삐에로뜨 씨에게 맡기고 싶어했다.
삐에로뜨 씨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그 보잘것없는 일을 오래 하지는 않았다.
파리에 온 이후로 로베르트는 삐에로뜨 씨에게 매일 저녁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기 때문에
그는 글을 쓰는 데 별 불편이 없을 정도로는 실력이 있었고
사투리도 많이 고쳐져 파리 시민들과 대화도 제법 잘 통했다.
라루트 상회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더욱더 노력했고 학원에 다니면서 계산법을 배우기도 했다.
그런 덕분에 그는 일자무식이나 다름없는 라루트 영감을 대신해서 장부정리를 하게 됐고
늙어서 다리조차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라루트 부인 대신 물건을 팔기도 했다.
그럴 즈음 삐에로뜨 양도 세상에 태어났고, 재산도 날이 갈수록 불어났다.
처음에는 라루트 상회의 장사에만 관계했는데 좀 지난 후에는 동직조합에도 가입했다.
그러던 어느날,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된 라루트 영감이 장사에서 손을 떼면서,
자신의 영업권을 삐에로뜨 씨에게 양도했다.
영업권을 인수 받은 그는 사업을 더욱 확장시켜 3년 만에 가게를 완전히 자기 소유로 하고
드디어 꽤 번창한 멋진 가게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더니 그 즈음에
마치 남편이 자길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으면 죽으려고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로베르트는 그만 병에 걸렸고 시름시름 앓더니 이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날 저녁 삐에로뜨 씨의 집으로 가면서 자끄 형은
내게 이 소설 같은 삐에로뜨 씨의 이야기를 쭉 들려 주었다.
자끄 형은 내게 새 웃도리를 사준 것이 무척 뿌듯했던지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빙 돌아서 삐에로뜨 씨의 집에 갔다.
그래서 그 집에 도착할 때쯤엔 그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자끄 형의 귀띔으로 그 착한 삐에로뜨 씨는
자기 딸과 라루트 씨를 우상처럼 떠받들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한 그가 약간 말이 많아 상대방을 피곤하게 한다는 사실도 알려 주었다.
그는 말하는 도중 할 말을 찾느라고 세 마디가 끝날 때마다
반드시 이렇게 덧붙인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꼭 들어맞는 말인데...."
그가 왜 그런지도 이해가 갔다.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지 못한 세벤느 지방 사람들은 사투리가 너무나 심해
파리 시민들이 사용하는 고급 프랑스어엔 쉽게 익숙해지지 못했다.
그래서 뭐든지 그가 생각하는 것은 우선 랑그도끄 사투리로 입에서 맴돌았기 때문에
말을 하기 전에는 속으로 되뇌이면서 단어 하나하나마다 고급 프랑스어로 바꾸어야만 했다.
그래서 딴에는 "이런 경우에 꼭 들어맞는 말인데..."라고 말하며 내심 시간을 벌려는 말버릇이었다.
자끄 형의 말을 빌자면 그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번역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형은 삐에로뜨 양에 대해선 그녀가 열여섯 살이며,
이름은 까미유라는 것만을 말했을 뿐 마치 철갑상어처럼 입을 다물어 버렸다.
9시쯤 되어서야 그 유서깊은 리루트 상회에 도착했는데 막 문을 닫으려 하고 있었다.
빼꼼이 열려진 문 앞의 인도에 나사못과 덧문, 쇠막대기 등 신기한 장치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가게 안에선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올 뿐 어두컴컴했다.
도자기 램프 하나가 카운터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 불빛을 받으며 뚱뚱하고 혈색이 좋아 보이는 삐에로뜨 씨가 웃으며 금화를 세고 있었다.
누군가가 가게 뒷방에서 플루트를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자끄 형이 카운터로 다가가 소리쳤다.
"안녕하세요, 삐에로뜨 씨!"
계산을 하고 있던 삐에로뜨 씨가 자끄 형의 목소리에 눈을 들었다.
그러더니 램프 불을 받으며 형 옆에 서 있는 나를 보고는 두 손을 맞잡으며 고함을 내질렀다.
"아니, 이게 누구야...."
그러고는 놀란 듯이 입을 쫙 벌린 채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자끄 형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내가 뭐라고 그랬어요?"
그 착한 삐에로뜨 씨가 중얼거렸다.
"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응, 이게... 이런 경우에 꼭 들어맞는 말인데...
마치 에세뜨 부인을 보는 것 같군."
자끄 형이 말했다.
"특히 눈이 닮았어요. 눈을 보세요, 삐에로뜨 씨."
"턱도 닮았군 그래. 오목하게 들어간 게 꼭 닮았어."
삐에로뜨 씨가 이렇게 대답하더니 날 더 자세히 보려고 램프갓을 걷어 올렸다.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두 사람은 나를 바라보면서 눈짓, 손짓을 계속 해대는 것이었다.
삐에로뜨 씨가 갑자기 카운터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향해 팔을 벌리고 다가왔다.
"다니엘, 어디 한번 껴안아 보세... 이런 경우에 꼭 들어맞는 말인데...
마치 에세뜨 아가씨를 보는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나는 모든 걸 알아차렸다.
그맘때에 나는 어머니를 많이 닮았었고 오랫동안 어머니를 보지 못했던 삐에로뜨 씨로서는
젊은 시절의 어머니의 모습을 내게서 발견했던 모양이었다.
그 착한 사람은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계속 내 손을 잡고,
날 포옹하고 쳐다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우리 어머니와 2천 프랑, 자기 아내, 딸 까미유,
아나스타지에 대해 띄엄띄엄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는 밤새도록 끝도 없이 계속될 것 같았다.
자끄 형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그의 말을 중도에서 끊으며 말했다.
"자, 이제 그만 카운터에 앉으세요, 삐에로뜨 씨!"
삐에로뜨 씨가 무안해 하며 말을 그쳤다.
그는 자기가 너무 많이 말을 한 것이 창피한 모양이었다.
"자네 말이 옳아. 자끄. 내가 너무 떠들었어...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했군...
그리고 또 우리 딸아이가... 이런 경우에 곡 들어맞는 말인데...
우리 딸아이가 너무 늦는다고 투덜댈 거야."
"까미유가 안에 있나요?"
자끄 형이 지나치는 말투로 흥미 없다는 듯 물었다.
"그렇다네, 자끄... 딸애는 안에 있어...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
이런 경우에 꼭 들어맞는 말인데...
딸애는 다니엘과 만나게 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네.
그러니 어서 올라들 가게나.. 계산이 끝나면 나도 곧 올라가지..
이런 경우에 꼭 들어맞는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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