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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6 - 알퐁스 도데

Joyfule 2012. 5. 5. 04:57
 
 
     꼬마 철학자6 - 알퐁스 도데  
 
꼬마 철학자 다니엘3
   그러고는 의자를 뒤로 탁 차버리고 일어나서는 자끄 형이 
   왜 돌아오지 않고 있는지를 밖에 나가 직접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현관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때 나는 우리 아버지를 따라갈 만큼 
   차갑고 무뚝뚝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현관문을 확 열어  젖히자 문 앞 계단 위에 
양손을 축 늘어뜨린 채 입을 꼭 다물고 화석처럼 굳어진 모습으로 서 있는 자끄 
형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자 형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서는 다 죽어가는 비통한 목소리로 덜덜 떨면서 들릴 듯 말듯 머뭇머뭇 말했다.
  "...단지를... 깨뜨리고... 말았어요."
 불쌍한 형은 단지를 깨뜨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아버지의 험상궂은 얼굴을 대하자 갑자기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억지로 참으려고 
애쓰는 형의 표정을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우리는 그 이후 자끄 형이 단지를 깨버린 그 일을 두고 '단지 사건'이라 불렀다.
리용으로 이사온 지 두 달 가량 지났을 때야 비로소 부모님들은 우리의 학교 문제에 대해 거론했다. 
아버지는 우리가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러려면 많은 돈이 있어야 했다.
  "저애들을 성가대 양성소에 보내서 공부하게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
아버지는 어머니의 그 제안에 동조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쌩 니지에 성당이 우리 집과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나와 자끄 형은 쌩 니지에 성가대 양성소에 가게 되었다.
그 성가대 양성소에서의 생활은 정말 재미있었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애들처럼 써먹을 데도 없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머리속에 꾸역꾸역 집어 넣는 대신에 우리는 예배하는 법과 찬송가 부르기, 
무릎을 얌전히 꿇는 법, 품위 있게 향을 피우는 법 등을 배웠는데, 
그런 학습은 몹시 까다롭고 어려웠다. 
간혹 하루에 한두 시간 문법과 역사 수업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고 
중요한 수업을 하기 위한 곁다리씩의 보충수업처럼 생각되었다. 
그곳에서는 무엇보다도 철저한 종교의식을 가르치기 위한 수업을 중시했다. 
우리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쯤 미꾸 신부님과 함께 장례식이나 결혼식,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영세를 주는 의식에 참석하여 성가를 불러야만 했는데 
그런 날은 수업을 하지 않았다. 
그런 의식에 참석하여 지체 높은 양반들을 보거나 
임종의 순간을 맞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량을 준다는 것은 무척이나 기쁜 일이었다. 
성량!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성량을 준다는 것에 뿌듯한 보람과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성체할 때 쓸 빵과 성유를 양손에 드신 미꾸 신부님이 
우산 같이 생긴 사제용 빨간 빌로드 닫집 아래에 서면 
두 명의 성가대원이 그 닫집을 양쪽에서 받치고 걸었다. 
나머지 단원들은  커다란 금빛 등불을 들고 신부님을 수행했는데 
행렬의 맨 앞에서 다섯번째에 서게 되는 아이는 따르라기를 흔들게 되어 있었다. 
따르라기 흔드는 일은 주로 내 임무였다. 
성량의 행렬이 지나가면 그 연변에 서 있던 남자들은 엄숙하고 경건한 자세로 
모자를 벗어 들고 고개를 숙였으며, 여자들은 성호를 그었다. 
행렬이 군인들의 초소 앞을 지나가게 되면 흩어져 있던 군인들도 보초병의
 "총을 들엇"하는 고함소리에 따라 기겁을 하고 달려와서는 총을 어깨에 메고 열을 맞추곤 했다.
 장교가 구령을 내질렀다.
  "받들어... 총!"
  "무릎 꿇어!"
철그럭대는 총소리가 진동하고 북소리가 저멀리 들판에까지 울려퍼져 나갔다. 
나는 삼성창을 부를 때처럼 들고 있던 따르라기를 힘차게 세 번씩 연거퍼 흔들었다. 
행렬은 주위에 몰려 선 사람들을 압도하고 
군대마저도 감히 어쩔 수 없는 엄숙함을 자아내며 마을을 가로질러 지나갔다. 
이 모든 엄숙함과 경건함과 권위를 가진 성가대 양성소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었다.
우리들 모두는 자기의 작은 사물함 속에 성직자들이 지녀야 할 
장구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하게 가지고 있었다. 
긴 검은색 법의, 사제가 입는 장백의, 빳빳하게 풀을 먹인 
커다란 소매가 달린 법의 겉에 입는 중백의와 명주로 만들어진 검은색의 긴 양말, 
순모와 빌로드로 만들어진 빵모자 두 개, 
가장자리에 조그맣게 하얀 진주무늬가 예쁘게 수놓아진 가슴 장식 등, 
이 모든 것들은 우리 성가대원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들이었다.
내게는 그런 복장들이 아주 잘 어울렸고 날 한층 돋보이게 해주었다.
 "다니엘, 넌 정말 멋져 보여. 정말 잘 어울려. 아주 귀여워."
어머니는 곧잘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런데 내게는 몹시도 속상하고 나 자신이 정말 한심해질 정도로 실망스런 점이 하나 있었다. 
키가 너무 작았던 것이다. 
조금만이라도 커지고 싶어서 아무리 발돋움하며 안간힘을 써봐도 우리 성당의 
예장 순경인 까뒤프 씨의 길다란 흰 양말보다도 작았다. 
게다가 또 얼마나 허약했는지! 언젠가 미사를 드릴 때였다. 
복음서를 옮겨 놓아야 했는데 그 복음서란 것이 너무나 두껍고 무거워서 
내가 책을 드는지 책이 나를 드는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였다. 
결국 나는 제단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서 뒹굴듯이 널브러졌다. 
책상은 넘어지고, 미사는 중단되었다. 
더군다나 그날은 바로 '성신강림첨례일'이었다. 
그 얼마나 꼴불견의 추태였겠는가? 
나는 너무나 수치스럽고 창피해서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감히 신부님을 쳐다볼 염두조차 나지 않았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무 작고 허약해서 저지른 그 치욕적인 실수를 제외하면 
난 비교적 성실하고 훌륭하게 내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 
하루의 모든 일과가 끝나고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밤이 되면 
난 옆 침대에 누운 자끄 형에게 이렇게 속삭이곤 했다.
 "자끄 형, 이곳은 정말이지 훌륭한 곳이야. 
난 여기가 정말 마음에 들어, 정말 행복해! 형도 그렇지?"
그러나 아버지와 절친하기 그지없는 친구분의 제안으로 
우린 불행하게도 오랫동안 머물고 싶었던 성스러운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그분은 남부지방에 있는 어떤 대학교의 총장이었는데 만일 아들 중에 한 명만이라도 
정규교육을 받게 되기를 원한다면 리용 중학교에서 실시하는 통학생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하여 그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야! 이건 바로 다니엘을 두고 한 말이군."
  아버지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럼 자끄는요?"
  어머니는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이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자끄 말인가? 그애는 내가 데리고 있겠어. 그애는 아주 쓸모가 많거든. 
난 그애가 장사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우린 그애를 상인으로 만들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