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7 - 알퐁스 도데
꼬마 철학자 다니엘4.
그 방면으로는 남다른 눈썰미를 가진 아버지가
자끄 형이 장사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눈치챈 것일까?
그때 어머니와 내겐 불쌍한 형이 예의 그 우는 것말고는
어떠한 소질도 없는 듯이 보였는데 아버지는 어떻게 그걸 잘 안다고 하시는 것일까?
만일 아버지와 우리가 자끄 형에게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 보았다면 그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그러나 자끄 형에게는 물론이고 내게도 그 문제에 대해선 한마디도 묻지 않고
아버지는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며 리용 중학교로 나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맨 처음 리용 중학교에 등교하던 날 나는 셔츠를 입은 아이가
오로지 나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이나 놀랐으며
셔츠를 입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아주 형편없이 불량스러운 애로 취급되었다.
리용의 부잣집 아이들은 결코 셔츠를 입지 않았고
'곤느'라고 불리우는 거리의 불량아들만이 셔츠를 입었다.
나는 허름한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들에게는 내가 마치 '곤느'처럼 보였던 모양이었다.
내가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히죽히죽 비웃어 대며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야, 저애 좀 봐! 셔츠를 입고 있잖아!"
"아니, 불결해."
"쟤 혹시 곤느 아니야?"
선생님마저도 오만상을 찌푸리며 나를 마치 징그러운 벌레 대하듯 했다.
선생님이 처음 나를 봤을 때부터 그랬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으나
교실 안이 웅성거림으로 소란해지자 그때부터 선생님의 태도는
아주 부자연스럽고 거북스럽게 변하며 나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도 선생님이 나를 부를 땐 경멸감과 혐오감을 나타내지 않으면 못배기겠다는 듯이
"헤이, 너!" "거기, 꼬마!"라고 불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주 침착하고 단정하게 그리고 단호한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했다.
"제 이름은 다니엘 에 세 뜨입니다."
아마 스무 번도 더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 비열한 선생님의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결국 우리 반 급우들도 나를 '꼬마'라고 불렀고, 어느새 "꼬마"가 내 별명이 되고 말았다.
내가 다른 아이들과 쉽게 구별되었던 것은 항상 셔츠를 입고 다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은 노란색의 예쁜 가죽 책가방, 향긋한 냄새가 풍기는 회양목 잉크병,
두꺼운 판지로 장정이 된 값비싼 노트,
밑에 많은 주석이 달린 잉크 냄새가 펄펄 풍기는 새책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가죽 책가방이나 회양목 잉크병은 커녕 책마저도 제대로 된 것을 갖고 있지 않았다.
내 책들은 강둑을 따라 줄지어 있는 헌책방에서 산
너무나 오래되어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고, 낡고, 찢어진 헌책들뿐이었다.
겉표지는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 버렸고 주석은커녕
군데군데 페이지가 찢겨져 읽기에도 아주 힘들 정도였다.
보다 못한 착한 자끄 형은 두꺼운 판지와 풀로 제본을 해주느라고 무척 애를 먹었다.
하지만 자끄 형은 안 그래도 될 텐데 풀을 너무 많이 덕지덕지 발라서
책에서는 고약한 풀 냄새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고 책을 볼 때면 항상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자끄 형은 또 내게 주머니가 많이 달려서 쓰기에 아주 편리한 책가방을 만들어 주었지만
그 가방 역시 풀을 너무 많이 발라서 고약한 냄새가 가득 배어 있었다.
그래서 내게서는 항상 풀 냄새가 진동하여 우리 반 아이들이 내 곁을 지날 때면
항상 코를 싸쥐고 다니거나 내 옆으로는 지나치지 않고 빙 둘러서 돌아가곤 했다.
어쨌든 자끄 형은 비상한 재주인 우는 일만큼이나 풀을 바르고 파지로 장정하는 일에 열중해 있었다.
자끄 형은 자기가 일하는 가게에서 빠져나오면 항상 불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풀단지를 앞에 놓고 열심히 풀을 바르면서 제본을 하거나 판지로 장정을 해대는 것이었다.
정말 너무 열심이었다.
그가 그 일을 하고 있을 때면 옆에서 감히 얘기도 붙이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에
나는 항상 풀이 지나치게 덕지덕지 발라진 그 책을 울며 겨자 먹기로 가지고 다녀야만 했다.
그즈음 자끄 형은 낮에 시내에서 짐을 나르고, 불러 주는 대로 받아쓰는 등의 일을 하면서
장사꾼이 되는 데 필요한 예비지식을 배우고 있었다.
그는 점점 장사꾼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장학생이었기 때문에 한푼도 들이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지만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끊임없이 조롱섞인 놀림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셔츠를 입고 다닐 수밖에 없었으며
아무리 '다니엘 에세뜨'라고 강조해도 그들 모두는 아마 별종동물인지 '꼬마'라고 불러 댔는데,
난 그 경멸섞인 야유를 그저 속으로 참아 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동등해지기 위해서, 아니 그들보다
내가 훨씬 더 똑똑하고 우수한 학생이란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열성을 다해 공부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불기도 없는 방에서 다리에 이불만 겨우 덮고 책상 앞에
오도마니 앉아 밤을 낮삼아 공부에 파고들던 어린시절의 내가 대견스러워진다.
그 방은 성에가 유리창에 아름다운 별무늬를 만들어 놓을 정도로 추웠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있노라면 거실에서 아버지가 소리를 죽여
자끄 형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소리가 나즈막하게 들려오곤 했다.
"저는 이 달 8일부로 귀하가 보내 주신 서한을 잘 받아보았습니다."
두 눈 가득히 눈물이 고여 있을 자끄 형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렸다.
"저는 이 달 8일부로 귀하가 보내 주신 서한을 잘 받아보았습니다."
이따금 어머니가 들어와서 내게 다가와 내 뺨에 입을 맞춰 주었다.
"다니엘, 공부하고 있니?"
"네, 엄마."
"춥지 않아?"
"아... 아니요!"
나는 거짓말을 했다. 그렇지 않은데... 나는 몹시 추웠다.
어머니는 내 곁에 앉아 뜨개질을 하면서 낮은 소리로 그물코를 세어 나갔다.
그렇게 어머니가 내 옆에 있으면 난 정말 포근함과 따사로움으로 추위를 잊곤 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책 속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어머니는 때때로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불쌍한 어머니, 어머니는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을
그 아름답고 정든 마을에서의 즐거웠던 날들 에 대한 향수에 늘상 젖어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우리에게 몰아닥친 또 하나의 불행,
우리의 뇌리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그 불행 때문에 곧 그 정든 마을로 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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