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53 - 알퐁스 도데
붉은 장미와 검은 눈동자
라루트 상회를 처음 방문한 이후로 나는 얼마 동안 '거기'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형은 일요일마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거기'를 찾아갔다.
그때마다 형은 거울에 모습을 비춰보며 넥타이를 매혹적인 모양으로 고쳐 매곤 했다.
자끄 형이 정성껏 맨 그 넥타이야말로 겉으론 표출되지 않은 열정적인 사랑의 시였다.
그것은 또한 알제리의 최고 지휘관이 연인들에게 갖다바칠 때
가장 은밀한 열정까지도 표현해주던 상징적인 꽃다발이기도 했다.
내가 만일 여자였다면 형이 그렇게 몇 번이고 넥타이를 고쳐 매는걸 보고는
아마도 말로 사랑의 고백을 받는 것보다 더 감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들은 그런 사실에 무감각한 것 같았다.
그러니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는 노릇이었다.
일요일이 돌아올 때마다 불쌍한 형은 출발하기 전에 꼬박꼬박 내게 물어 왔다.
"다니엘, 나 '거기'가는데... 너도 갈래?"
"아냐, 형. 난 공부할래...."
늘 변함없는 똑같은 내 대답을 듣고는 형은 재빨리 사라져 갔다.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된 채 책상에 몸을 기울이고 시를 썼다.
나는 삐에로뜨 씨네 집에 가지 않기로 이미 굳은 결심을 했다.
삐에로뜨 양의 검은 눈동자가 두려웠다.
'다시 그 검은 눈동자를 보게 되면 파면할지도 몰라.'
나는 다시는 검은 눈동자를 보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악마처럼 검은 눈동자는 한시도 내 머리속에서 사라지지를 않았다.
어디를 가나 그 검은 눈동자는 나를 따라다녔고
눈앞에 떠올라 어른거렸으며 심지어 꿈 속에도 나타났다.
빨간수첩을 펼쳐 들어도 거기엔 기다란 속눈썹을 가진
커다란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그려져 있곤 했다.
검은 눈동자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착각의 세계를 헤매는 것이었다.
자끄 형이 처음 선보이는 넥타이를 매면서 기쁨으로 눈을 반짝이고 넘어질 듯 방을 나가고 나면
나는 형을 뒤쫓아 계단을 뛰어내려가서 '기다려!'라고 소리치고 싶은 미칠 듯한 충동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 오는
'거기' 가선 안 된다고 경고하는 소리가 내 발목을 묶어 버리곤 했다.
마음 한구석엔 방에 남아 시를 써야 한다는 각오가 굳게 자리잡고 있었다.
"아냐, 자끄 형. 난 공부하겠어."
이렇게 대꾸하면서 몇 주가 흘러갔다.
그러는 동안 나는 결국 뮤즈여신의 도움을 받아 내 머리에서 검은 눈동자를 쫓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어처구니없는 경솔한 짓을 저질러 검은 눈동자를 또다시 만나고 말았다.
형을 위한 나의 결심은 허물어지고, 결국 내 머리와 가슴은 온통 검은 눈동자에 빠져들었다.
강가에서 모든 걸 고백한 이후로 자끄 형은 자신의 사랑 얘기를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형이 바라는 대로 일이 잘 안된다는 사실을 형의 태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일요일에 삐에로뜨 씨 집에서 돌아오는 형의 얼굴은 늘 우울한 그림자로 뒤덮여 있었다.
나는 밤마다 형이 긴 한숨을 내쉬며 뒤척이는 소리를 듣곤 했다.
어쩌다 내가 "형, 무슨 일이야?"하고 물으면
형은 "아무것도 아냐"라고 한마디 내던지는듯 대꾸해 버리곤 그만이었다.
하지만 나는 말투만 듣고도 형에게 심각한 일이 있었다는 걸 눈치챘다.
한없이 착하고 참을성 많던 형이 곧잘 내게 버럭 화를 내곤 했으며
이따금씩 마치 싸우고 나서 사이가 틀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대하기도 했다.
나는 형이 사랑의 상처를 입어 열병을 앓고 있다고 짐작했다.
하지만 형이 그 문제에 대해 입을 꼭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감히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형이 삐에로뜨 씨 집에서 밤늦게 돌아온 어느 일요일이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인가 알아나 보자고 작정했다.
나는 형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 좀 봐, 형! 도대체 무슨 일이야?... '거기' 일이 잘 안 돼?"
불쌍한 형은 풀죽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잘 안돼...."
"도대체 무슨 일이야? 삐에로뜨 씨가 뭔가 눈치챈 거야?
형이 자기 딸을 좋아하는 걸 원치 않는 거야?"
"아, 아냐! 다니엘. 삐에로뜨 씨 때문에 그러는 게 아냐...
그 애가 날 좋아하지 않아. 절대로 날 좋아하지 않을 거야."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자끄 형? 그 여자애가 형을 절대로 안 좋아하리라는 걸 형이 어떻게 알아?
그애한테 사랑을 고백해 보기라도 했어... 아니지?... 그렇다면...."
"그애가 좋아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 말 없어. 그 사람은 아무 말 안해도 그애에게 사랑받고 있지..."
"그렇다면, 그앤 그 금발 청년을?"
형은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은 듯했다.
잠시 후 뭔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다시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애가 좋아하고 있는 사람은 아직 말을 않고 있어."
그 이상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쌩 제르멩 종탑의 종소리가 자정을 알릴 때까지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끄 형은 내내 창가에서 하늘의 무수한 별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 쉬었다.
'내가 "거기" 가서 사태를 좀더 정확히 파악해 봐야겠는데...
어쨌든 형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몰라.
삐에로뜨 양은 형이 정성껏 매만진 넥타이 주름 속에
사랑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거야....
자끄 형은 분명히 자기 마음을 그녀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서만 속을 끓이고 있음에 틀림없고,
내가 대신 얘기해 주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래, 찾아가서 그 속물 같은 처녀애한테 얘길하면 모든 게 수월하게 풀릴 거야.'
다음날 나는 형에게 아무 말도 않고 그 멋진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맹세코 '거기' 가면서 나는 흑심 같은 건 전혀 품지 않았다.
자끄 형을 위해서, 오직 불쌍한 자끄 형을 위해서 나는 그곳에 갔던 것이다.
하지만 쏘몽 가 모퉁이를 돌아서면서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라루트 상회가
'도자기 크리스탈 판매'라는 간판을 보자 내 가슴은 가볍게 뛰었다.
내게 뭔가를 경고하는 듯 말이다.
나는 힘껏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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