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알아야 할 기독교 핵심진리 20
10 속죄란 무엇인가?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에 천사가 요셉과 마리아에게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어주었습니다.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로 알려 주었습니다.(마 1:21) 그 천사의 말대로 예수님은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처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삶과 죽음을 통해 이루신 일을 우리는 ‘속죄(贖罪)’라고 합니다.
Ⅰ. 속죄의 원인
하나님의 공의는 예수님을 ‘화목제물’,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롭게 바라보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진노”를 충분히 감당해낼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롬 3:25에서 확증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제물로 삼으신 것입니다.(롬 3:26) 하나님이 의롭게 되시려면 하나님이 오랫동안 간과하신 죄, 즉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전에 형벌을 내리지 않으신(구약 시대의) 그 죄를 어떤 식으로든 처벌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죄들에 대하여 누군가는 처벌을 받아야 했는데, 그 “누군가”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으심에서 우리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Ⅱ. 속죄의 필요성
하나님은 그 사랑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일부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한 번 하나님이 그렇게 작정하시자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공의로 인해 이 땅에서 그처럼 죽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주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눅 24:26)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우리 대신 죽는 길 외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다른 길이 없음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셔야 했습니다. 구약시대의 희생제사는 영원한 효력이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히 9:12) “자기를 단번에 제사의 제물로 드려”(히 9:26) 죄를 없애셨던 것입니다.
Ⅲ. 속죄의 본질
그리스도가 자기를 희생 제물로 드려 우리의 죄를 없애는 일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완벽한 순종의 삶을 드려서 그 순종의 “적극적 공로”가 우리의 것으로 간주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는 바울의 말은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의(義)’에 의지하지 않고 대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義)”에 의지하는 것입니다.(빌 3:9)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는 죄 없는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의로움”이 되셨습니다.(고전 1:30)
예수님은 고난의 삶을 사셨습니다.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였습니다.(사 53:3) 심지어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단의 유혹과 공격을 받으셨습니다.(마 4:1-11) 예수님은 “죄인들의 반역”(히 12:3)을 참으셨습니다. 또한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그 죽음을 매우 슬퍼하셨습니다.(요 11:35) 예수님은 이런 고난과 순종을 통하여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히 5:8-9)
Ⅳ. 고난의 절정, 십자가
주님에게 죽음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고난도 커졌습니다. “심히 고민이 되어 죽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마 26:38) 예수님은 자신이 고통을 경험하고 있는 것을 친히 제자들에 내비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가장 끔찍한 형태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겪으신 고통은 어마어마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몸무게로 인하여 질식됨으로 서서히 죽어가셨습니다. 온 몸은 짝 펴져서 십자가에 못으로 고정되었습니다. 양 팔은 몸의 전 무게를 지탱했습니다. 몸은 사방으로 잡아당기는 형태로 달리셨기 때문에 숨을 쉬기 어려웠습니다. 숨을 쉬려는 순간마다 사지는 대못에 고정되어 격렬한 고통을 주었던 것입니다. 사지에서 느껴오는 통증은 이미 채찍으로 벗겨진 온 몸의 상처들과 함께 고통을 더욱 극심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육체적인 고통은 영적인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죄 없으신 주님은 죄를 미워하셨습니다. 그런데 죄인들의 죄를 자신에게 자진해서 짊어지셨습니다. “그가 많은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었으며”(사 53:12) 가장 미워했던 죄가 예수님에게 쏟아졌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벧전 2:24)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그리스도로 “죄를 삼으신” 것입니다.(고후 5:21) 예수님은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저주”를 받으셨습니다.(갈 3:13) 그 때에 제자들이 모두 주님의 곁을 떠났습니다.(마 26:56) 심지어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주님을 버리셨습니다.(마 27:46)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그 순간 예수님은 슬픔으로 가득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의 감미로운 교제에서 단절을 경험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고난의 정점에 홀로 계셨습니다. 육체적인 고통보다 영적인 고통이 더욱 극심하셨던 것이 자명합니다.
Ⅴ.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으심
주님은 창세 이후로 쌓아 오신 죄에 대한 강렬한 증오와 복수의 대상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필연적으로 흔쾌히 우리의 죄에 대하여 모든 형벌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는 충족되었습니다.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셨습니다.(히 9:26) 이처럼 그리스도가 완벽하고 죄 없는 삶을 사시고, 끔찍한 죄인의 죽음을 당하신 것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죄인으로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감당하신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으셔서 우리에게서는 하나님의 진노를 푸셨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하여 단절된 하나님과 교제가 열리고, 죄의 속박에서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구원입니까!
함께 생각해 봅시다.
1문.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셔서 완벽한 삶을 사셔야 했습니까?
2문. 왜 예수님은 죽으셔야 했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실 다른 방법은 없으셨습니까?
3문. 속죄를 이해함으로 여러분은 어떻게 겸손해지고 위로를 얻게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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