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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목이 간당간당한 목사이다.

Joyfule 2018. 2. 16. 10:07

 

 

나는 목이 간당간당한 목사이다.

필자는 목이 간당간당한 목사이다. 그렇다고 장로들에게 나가라고 위협을 받는 목사도 아니고, 설교가 시원치 않아서 교인들의 눈치를 실실 보고 있는 목사도 아니다. 아니면 교인들이 죄다 나가버려서, 휑하니 비어버린 예배당에서 가족들만을 교인으로 삼아 예배를 드리는 목사도 아니다. 그런데 왜 목이 간당간당할까? 그 이유는 필자의 영성학교는 보통의 교회와는 설립목적과 정체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3년 전에 성령께서 충주의 한적한 시골로 보내면서, 많은 물고기들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진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성학교의 교인들은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래서 주일예배를 드리려고, 아침부터 부산하게 아이들을 챙겨서 차에 몰아넣고 두세 시간을 꼬박 운전해서 오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주변에 교회가 없어서 충주의 시골에까지 오는 것은 아니다. 영성학교에는 그들이 바라는 그 무엇이 있다고 믿고 찾아오는 것이다.

그게 무엇일까? 영성학교는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을 시키고 있다고 말하니까, 그들이 정말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훈련하기 위해 오는 것일까? 그런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속내는 아닐 것이다. 영성학교에서는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과 정신질환을 치유하며 지난한 삶의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공표했으니까,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찾아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귀신이 쫓겨나가고 고질병과 정신질환이 치유되고 각종 삶의 문제가 기적적으로 해결되어야 유지되는 셈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 필자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수많은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걸 자랑하려고 또 끄집어내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대로, 그런 사건들은 어제 내린 눈일 뿐이다.

 

말하자면, 영성학교는 매일처럼 성령의 기적이 일어나야 유지되는 곳이다. 그래서 필자의 목이 간당간당한 것이다. 그럴듯한 신학교를 나와서 목사안수를 받고 나름대로 설교를 괜찮게 한다는 평을 받아 교회의 담임목사로 자리를 잡아서, 그 교인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면 아마 정년 때까지 자리를 보존하고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담임목사 청빙을 받아서 온 것이 아니고, 새로 개척을 한 목사이니 그런 걱정은 없다. 그러므로 설교를 쫀득쫀득하게 하고 교인들의 마음을 알아서 잘 만져주는 목사가 되어야 자리보존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진짜 큰 문제는 그게 아니다. 성령의 능력이 유지되고 있는지를, 날마다 기도의 현장에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이 간당간당하다. 어제까지 잘 했다 하더라도, 그건 어제 내린 눈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어제는 어제일 뿐이고, 오늘의 문제는 오늘 해결해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어제까지 한 경력과 이력을 홍보하면서 재탕, 삼탕 우려먹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필자가 마주한, 식은 땀나는 문제일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

 

예수님은 육체의 사람에서 성령으로 태어난, 성령의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성령이 누구인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성령이 함께 하셨던 사도들과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고 각종 질병을 치유하는 기적과 이적으로 영혼을 구원하고 초대교회를 세워나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네 교회는 1분짜리 영접기도에 아멘 하기만 하면 성령이 자동적으로 들어오신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사도들과 제자들이 보여주었던, 성령의 증거와 변화, 능력과 열매는 눈 씻고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지만 그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한 성경구절을 들이대면서, 이를 믿으라고 강요하고 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그러나 영성학교는 아니다. 성경에 나타난 대로, 성령이 내주하는 증거와 능력이 없다면 인정하지 않는다. 이를 필자가 모본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귀신이 쫓겨나가고 고질병과 정신질환을 치유하고 각종 삶의 지난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성령의 증거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필자의 목만 간당간당한 게 아니라, 영성학교의 모든 식구들을 포함해서 우리네 교인들의 목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이런 걱정을 하지 않고 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그러나 자기 확신의 믿음이나 자의적으로 해석한 성경구절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셔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을 증명하는 때가, 바로 심판대 앞에 설 때일 것이다. 그러나 그 때 비로소 자신의 착각과 오류를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 때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지옥의 불길로 던져져야 할 참혹한 운명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매일이 마지막 날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하루해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하루살이가 동병상린의 동료처럼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 지금까지의 사역의 성과와 사람들의 평가가 중요하지 않다. 오늘도 성령께서 필자와 동행하고 계시는 증거가 나타나야한다. 필자는 매일 수많은 귀신들이 잠복한 사람들에게 축출기도를 해주고 있으며, 고질병과 정신질환 환자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치유해주는 기도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매일매일 시험을 보는 학생과 다를 바가 없으며, 시험성적은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되고 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21:36)

 

깨어 있다는 게 무슨 말인가? 항상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차서, 날마다 어떤 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를 고민하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며,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오는 사람이다. 그래서 당신은 깨어 있으신가? 아니라면 천국에서 당신의 얼굴을 볼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성령이 계신 사람이든지, 그도 아니라면 성령의 내주를 간절히 간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예수님은 당신이 세상에 살고 있는지조차 모르시고 계실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