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수저 - 이부림
부엌이 내 차지가 되었을 때 먼저 눈에 띈 것이 한 개의 놋숟가락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놋그릇이 겨울철 식기였던 것은 알고 있었는데 놋숟가락 한 개가 밥상에도 오르지 못하고 허드재비로 푸대접을 받고 있어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나무주걱을 오래 쓰면 한쪽이 닳아서 비뚤어지듯 구리 10분에 아연 3을 섞어 만든 단단한 쇠붙이인 놋숟가락도 거의 직선으로 기울어져 사용하기에는 더욱 편리했다.
양은솥 바닥에 고소하게 눌어붙은 누룽지를 긁거나 냄비를 태웠을 경우 검뎅이를 떼어 내는데 안성맞춤이었다. 고향 시골에서도 가마솥의 누룽지를 이 숟가락으로 긁었으리라.
나물을 볶을 때면 묵직하고 튼튼한 놋숟가락이 손에 척 붙는 맛이 있어 어떤 주걱보다 편했다. 양념이나 반찬을 옮겨 담아도 스푼보다 놋숟가락을 먼저 집었고 미나리를 씻어 물에 담가놓을 때는 언제나 이 놋숟가락을 넣어 두었다.
놋그릇은 오래두면 깔이 없어진다. 기왓장을 가루 내어 짚수세미에 무쳐 가마니 위에서 굴리고 뒤집어 가며 닦는 것을 자라면서 보았었다. 새댁일 때 만난 외톨이 놋숟가락은 「이쁜이 비누」로 닦아 주었고 요즘은 고운 수세미에 치약이나 중성세재로 문질러도 된다. 광택제도 있다.
20년이 넘도록 닦아 쓰는 동안 밥숟가락보다 더 정이 많이 들었다. 금방 닦은 놋숟가락은 반짝거리는 진노랑 빛이 두루 스며드는 듯 은근하면서도 화려하다. 모양이 의젓하고 쓰임새도 많았지만 나는 놋숟가락만이 가진 이 색깔에 끌려 기품 있게 밝으면서 후덕한 색감이 나에게도 깊게 배어지기를 바랬었다.
그런데 어느 날, 1993년 5월 10일이었을 것이다. 습관대로 집어든 숟가락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밤새 안녕이라더니 멀쩡하던 숟가락에 웬 구멍인가 하고 만져보니 가운데가 닳고 닳아서 얇아지다가 끝내 뚫어져 버린 것이다. 달걀 껍질이 콩알만하게 떨어져 나간 형국이었다. 구멍의 가장자리는 불규칙 했다. 계란처럼 속껍질 같은 막이라도 한 겹 남아 있었으면 좋으련만, 휑한 구멍으로 숟가락의 세월이 바람 되어 빠져 나가 버리고 더 큰 구멍이 가슴으로 다가왔다.
이제 숟가락으로서의 사명을 다한 것이니 죽음을 뜻하겠지. 부엌에서 동고동락하던 너의 죽음을 예견하지 못하고 임종마저 할 수 없었으니 섭섭하고 미안하다. 너를 만나기 전보다 훨씬 두터워진 내 손바닥 안에서 너는 네 몸을 깎여가며 나를 도와주었구나.
맞구멍이 날 정도였으면 너를 씻을 때 얇은 막 정도는 느낌으로라도 알았을 법한데 고무장갑 때문이었을까, 전혀 상태를 알려주지 않은 네가 야속하다.
구멍이 나기 전에 너와 더불어 한번쯤 성찬을 나누고 네 식구 곁으로 보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니. 너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옴을 감지하지 못한 나의 무관심을 원망하지 않고 너는 뚫리는 아픔을 견디었을 테지. 사람의 일생도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마무리 되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너를 보내는 나의 심정이다.
구멍을 본다. 대양을 이어주는 운하가 개통되는 순간이, 양쪽에서 파 들어간 땅굴이 한 지점에서 만나는 감격이 울컥 치민다. 밥상에 가지런히 놓였다가 윤기 자르르한 쌀밥을 한 술 떠서 입안에 가득 넣어 주지도 못해보고 허드렛일만 하면서 일생을 마친 한이 남아 구멍 주위를 배회할 것 같아 안스럽다.
놋숟가락은 시증조할머니의 수저였다고 한다. 아흔까지 장수 하시다가 50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하니까 20대부터 이 수저로 진지를 드셨더라도 100년이 넘도록 공씨네 부엌을 지켜온 셈이다. 만년에 치매증세가 있어 대변까지 떠 잡수시던 숟가락이라고 해서 드나드는 이들이 <똥숟가락>이라고 했다 한다.
일제시대까지는 시증조할머니와 시할머니 손에서, 해방 후에는 시어머니와 나랑 함께 지낸 놋숟가락은 우리민족의 격변기에 못지않게 달라진 부엌역사의 증인이다. 솔가지를 꺾어 밥을 짓던 구한말부터 장작불, 연탄아궁이, 석유곤로, 가스렌지로 이어지는 여인 4대에 걸친 부엌살림의 말없는 주인이었다. 대대로 부엌을 지켜온 여인들과 삶의 애환을 함께 하면서 웃음소리는 넘쳐 버리고 한숨만 가득히 고이던 숟가락이었다.
일제 말기의 쇠붙이 강탈에도 어렵사리 보존해 온 그릇들, 쌀 한말짜리 용기인 놋말이며 놋대야, 놋주발, 대접, 숟가락, 젓가락들이 지금도 뒤주 속에 숨어있다. 그 중에서 증조할머니의 수저는 <똥숟가락>이라고 하는 만큼 재수있는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어 시어머니께서 이 숟가락 한 개만 부엌에 내 놓으셨다고 한다. 증조할머니의 수저가 며느리 삼대에 걸쳐 여러 용도로 쓰이다가 내 손에서 수명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뿌듯하면서도 서운하기 그지 없다.
처음 만졌을 때나 지금이나 두께와 무게에 차이가 없어 보여 무심한 세월인 줄 알았더니 세월은 무서운 것. 시나브로 너를 이토록 여위게 했구나.
결혼을 일찍 했으면 며느리를 보았을 나이이니 한 대를 더 대물림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어쨌거나 놋숟가락은 나와의 만남에서 일생을 막수저로 끝내고 인간과의 인연에 종지부를 찍었다. 만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었겠지.
아이들이 구멍난 숟가락을 새삼스럽게 들여다본다. 국물을 뜨면 입에 들어갈 때는 반도 남지 않을 테니까 이제는 다이어트 숟가락이라고 하자면서 딸아이가 떠먹는 시늉을 한다. 막내는 안과에 가지고 가서 몰래 들여다본다고 한쪽 눈을 가려 보이며 “엄마는 현대판 조침문이나 계속 읊으세요.” 라고 한마디를 보탠다.
이제서야 식구들의 관심꺼리가 된 너를 꼬옥 쥐어 본다. 부엌에서 너는 언제나 내 손이었다. 내 손바닥이 너를 닮아 얇아지는지 허전하다. 인간의 생활도구로 만들어진 제 몫을 끝까지 몸으로 때워 해낸 고마운 너. 다른 놋그릇과 함께 공씨 집안 가보로 내리내리 간직하면서 너의 이야기를 제일 먼저 들려주도록 하고 싶다. 하긴 여러 가지 놋그릇 가운데서 구멍 뚫린 놋수저를 보면 내력을 설명해 주기 전에 누구든지 먼저 집어 들겠지.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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