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다 - 신상래 목사
필자의 노모가 사는 대전의 아파트 후문에 있는 교회가 몇 해 전에 주인이 바뀌었다. 예전의 교회가 몇 백미터 앞에 큰 교회를 신축하여 이사하고 나서, 그 자리에 다른 교회가 들어와 새 주인이 되었다. 그 교회는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주차장과 예배당과 교육관 건물이 있었는데, 새 교회의 담임목사는 대전에 새롭게 개척하는 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무려 기십억원이 넘는 금액을 주고 교회를 사들인 것을 보니, 필자는 담임목사가 거부이신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담임목사는 맥 잡기 성경강의로 인터넷에서 유명한 분이셨다. 그 분의 강의는 모세오경의 장절에다 제목을 붙여 일목요연하게 가르치는데, 놀랍게도 한번 듣는 수강료가 백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백억 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여 기존교회를 인수했다고 한다.
그 교회 담임목사의 강의를 배우려는 수강생은 전부 목회자들이다. 한 번에 백만 원이 넘는 강의료를 마다하지 않고 모세오경을 잘 배워서 설교에 접목하려는 것이다. 백만 원이 넘는 강의료를 내가면서까지, 성경을 배우려는 목회자들의 열정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런데 굳이 비싼 수강료를 내가면서까지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하는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모세오경을 줄줄이 꿰면서 설교하면, 교인들은 목사님의 해박한 성경지식에 감탄해하며 성경지식이 날로 성장하겠지만 말이다.
물론 성경공부를 하지 않는 목회자들에 비해, 열정적으로 공부해서 교인들을 가르치려는 분들의 노력을 폄훼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새로운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계발해서 거액의 수강료를 받는 그 담임목사의 능력(?)을 추호도 비난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구약성경을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목회자라면 신대원을 졸업한 석사출신이 아니신가? 그런데 비싼 돈을 내면서까지, 구약의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배워서 가르칠 정도로 새로운 방식의 성경지식이 필요한가?
우리가 교회에 가서 배우는 성경공부는, 죄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예수님에 대한 사건과 인물에 대한 성경지식을 쌓아두는 것에 그치고 있다. 물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기록된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가 배우는 성경공부는 인물이나 사건, 문화나 배경을 배우는, 성경에 관한 다양한 관련지식을 빼곡하게 채우는 것에 너무도 치우쳐 있다. 사실 한글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성경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내용은 별로 없다. 사건이나 인물, 역사 중심의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의 복음서나 사도행전은 드라마틱하여 재미있다. 다만 바울서신 등으로 넘어가면 신학적이거나 관념적인 종교용어가 있어서 얼른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학적인 용어는 성경사전을 찾아보면 자세히 나와 있다. 그렇지만 작금의 우리네 교회의 성경공부는 성경지식을 쌓아줄 뿐, 하나님의 뜻을 배우는 목적에 소홀한 느낌이다.
우리가 배우는 구약성경공부는 하나님의 사자나 선지자, 사사 등의 자신의 종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신 기록을 배우는 것이며, 신약성경공부도 예수님에 대한 행적을 기록한 지식을 배우는 것에 그치고 있다. 필자가 말하려는 의도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시대가 성령의 시대라는 것을 소홀히 취급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성령에 배우려면 지식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목회자들이 맞닥뜨린 딜레마이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에 대한 성경공부는, 성경에 기록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지식을 잘 가르치고 배우게 하면 훌륭하다. 그러나 성령에 대한 성경공부는 지식으로 될 수 없다. 성령은 지식이 아니라 탁월한 영적 능력으로 나타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이 등장하는 사도행전부터는, 성령의 기적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사도와 제자들의 기록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롬15:18,19)
그렇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지식으로 배우는 것으로 그칠 수 있지만, 성령은 지식뿐만 아니라 그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예수님은 말할 것도 없고 사도들과 제자들은, 성령이 함께 하시는 기적과 이적, 능력과 표적으로 귀신을 쫒아내고 질병을 치유하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작금의 우리들은 능력 있는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과거에 나타나신 성부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건에 대한 지식만을 쌓아둘 뿐이다. 그 이유는 성령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령은 과거의 행적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기도의 능력을 눈앞에서 증거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영적 능력이 없음을 통탄하고 회개하며 전심으로 구하기보다, 형식적인 예배행위나 희생적인 신앙행위로 대체하고 있다.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19,20)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자들은 자신의 무지와 무능을 인정하기보다, 성령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성령의 사람들을 훼방하고 폄훼하기 일쑤이다. 그래서 당신에게도 성령의 활동과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아랑곳없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천국의 자격을 맹신하고 있는 이유이다. 믿는 거야 자유지만, 성경에 약속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교회는 죽은 교회일 뿐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요3:5), 지금이라도 무지와 어리석음을 회개하며, 성령의 능력을 부정하는 교회에서 빠져나와서 성령과 동행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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