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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기도하기 싫은 이유

Joyfule 2018. 9. 16. 08:06




     당신이 기도하기 싫은 이유



대다수의 크리스천들은 기도하기를 싫어한다. 마치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학생처럼 말이다. 그러나 딱딱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골치 아픈 수학문제를 풀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누구나 난해한 수학문제는 풀기 어려운 인생의 문제라는 것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학문제를 제대로 못 푼다고 인생이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며, 최종학교를 졸업하면 두 번 다시 난해한 수학문제를 마주할 일은 없다. 그러나 수학문제보다 더 난해한 문제가 삶의 여정에 존재한다. 특히 교회에 오면 마주치게 되는 기도라는 거대한 문제이다.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는 크리스천은 거의 아니,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수학문제를 제대로 못 풀어도 다른 과목에서 점수를 얻으면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지만, 기도의 습관을 들이지 못하면 천국은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현실은, 악하고 나쁜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사실조차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기도하기를 싫어하는 교인들은 예외 없이 지옥 불에 던져질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 문제를 풀어보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22:37,38)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3:20)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21:36)

 

이 세구절의 성경말씀은 기이하고 난해하다. 먼저, 예수님은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 바로 하나님을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크리스천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주일성수에 십일조,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근거로 들면서 말이다. 그런데 바로 두 번째 구절이 문제이다. 이 말씀은 초대교회인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아서, 밖에서 문을 기다리면서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아니,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은 초대교인이 예수님에게 마음을 열고 있지 않다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초대교인들의 문제로 넘어가고 덮어둘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구절을 보자. 종말이 가까울수록 인자 앞에 서려면, 항상 기도해야 할 것을 명령하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당신은 이 명령을 잘 이행하고 있는가? 대다수의 크리스천들은 이 명령에 준행하고 있지 않지만, 그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먼저 새벽기도를 다니는 일부의 크리스천들은 자신은 항상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 하루에 10~20분에 불과한 시간을 할애하며 기도하는 게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 거라고? 항상 기도하는 것과 유사한 말씀이 바로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다. 하루에 10분 기도하는 것을, 쉬지 말고 기도하고 있다고 우기는 이들에게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새벽기도회에 나가서 기도하는 이들조차 별로 찾아볼 수 없는 게 우리네 교회의 현실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하루 10분도 기도하지 않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경멸하고 멸시하고 있는데 천국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나름대로 기도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조차,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나고 싶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를 할 생각조차 없다는 것이다. 새벽기도에 나와서 기도하는 이들이나, 어쩌다 기도자리에 앉아서 기도하는 내용을 들어보라. 죄다 자신의 소원을 이루거나 삶의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내용이지, 하나님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원하고, 찬양하고 감사하며 경배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 기도를 마치, 부자 하나님으로부터 재산을 뜯어내는 수단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나고 싶어서, 애걸복걸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이들을 찾기 어렵다. 기도란 하나님의 영과 내 영혼이 깊고 친밀하게 사귀고 교제하는 통로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사모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만나서 교제하고 싶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인 셈이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1:28)

 

당신이 기도자리에 앉기 힘들어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상실한 마음을 내버려 두어 귀신들이 살육하고 지배하도록 어둠에 내버려 두신 이유이다. 물론 당신도 그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에, 필자의 칼럼을 여기까지 읽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기도하고 싶어지고, 기도하기를 좋아하게 되느냐며 필자에게 물어보고 싶을 것이다. 당신이 물에 빠졌으면 소리를 지르고 싶어서 지르는가? 죽기 싫으니까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기도하고 싶고 기도하기 좋아져야 기도한다면, 평생 당신은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죽기 살기로 하나님을 부르고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이 명령을 지키는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마다 죽기 살기로 하나님을 부르는 자녀들에게, 성령이 찾아오셔서 기도의 기쁨을 누리게 해주신다.

그러나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다면, 평생 기도하지 못하다가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주인을 싫어하는 마음을 가증스럽게 여겨서 귀신에게 던져버리고 거들떠보지도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건조하고 냉랭한 영혼과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다가 이 땅을 떠나면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하나님은 자신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사람들과 천국에서 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마당을 밟고 있지만,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 거의 모든 우리네 교인들이 참혹한 운명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