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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환장한 우리네 민족, 돈만 밝히는 우리네 교회

Joyfule 2015. 9. 25. 09:28

    돈에 환장한 우리네 민족, 돈만 밝히는 우리네 교회

 

 

돈이 싫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물론 필자도 돈이 무지 좋다.ㅎㅎ 그러나 하나님보다 돈을 더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자본이 주인이 되는 곳이다. 그래서 국가가 돈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재계를 중심으로 이를 감독하는 금융기관이 나라의 중심이 된다. 그래서 대통령도 경기가 안 풀리면 재계의 수장들을 불러 아침식사자리에 초대해놓고는 돈을 풀라고 은근히 종용한다. 물론 세금혜택이나 규제를 풀어준다는 당근책을 내놓은 것은 당연하다. 재벌의 위법이나 폐해를 감독해야 하는 국회의원들이 재벌회장의 해결사노릇을 하는 것은 유치원 어린아이도 다 아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정치도 돈이 있어야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회의원 배지를 오래 달고 싶으면 재벌회장에게 굽신거려야 떡고물이라도 떨어진다. 그러다보니 정치계와 행정부 그리고 재계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을 찾아다니게 마련이다. 결국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시스템이 자본주의의 척추가 되는 것이다.

 

개인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누구나 부자를 꿈꾸고, 사업에 성공하는 게 누구나의 소망이다. 아이를 낳으면 한글을 깨우치기도 전에 영어를 가르치는 명품유치원에 보낸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하교를 하면 집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학원버스를 타야 한다. 그런 상황은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이어진다. 명문대학에 들어가야 고소득을 얻는 직업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배우자의 조건도 고소득을 얻는 능력이나 재산이 최우선이다. 그래서 부자가 되면 자식들에게도, 부자의 사다리를 대물림해주는 게 우리네 민족의 현주소이다. 그래서 성령께서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돈에 환장한 너희 민족이라고 필자에게 말씀하셨다.

 

이런 현상은 돈이 일만 악의 뿌리이기 때문에, 멀리하라고 가르쳐야 하는 교회에도 판박이다. 교회가 돈이 필요한 이유는 목회자가 돈맛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목회성공의 시작은 웅장하고 럭셔리한 교회를 지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상가 지하실의 개척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면 죄다 문을 닫기 때문에, 무리해서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얻어서라도 100평의 이상의 교회부터 시작해야한다. 그래서 교회를 시작하면 엄청난 원금과 이자를 상환해야 하기 때문에 돈만 밝히는 목사가 되는 것이다.

 

목회자가 돈을 밝히는 유형은 여러 가지이지만, 가장 두드러진 게, 십일조의 강조와 교회 건축을 위한 특별헌금이다. 십일조 명단은 주보뿐 아니라 교회 엘리베이터에도 붙여 있으며,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예배 때마다 헌금자 명단을 호명하는 행사를 거르지 않는다. 십일조를 드려야 교회의 직분자의 후보에 오르게 되며, 교회단체의 임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교회에 드리는 헌금의 원칙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헌금자 명단을 호명하고 주보에 싣고 교회 게시판이나 엘리베이터에까지 붙이는 것은, 교인 간에 경쟁을 유도하며 은근히 압박을 가하여서 십일조를 내게 하는 고전적인 방법일 뿐이다. 이 같은 헌금방식은 세상적이고 마귀적이고 인본적인 방법이지 성경적인 방식이 아니다. 이같이 집요하게 헌금을 유도하는 이유는 목사가 돈에 환장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교활한 수법이 세간에 알려져서 주춤한 추세이지만, 아직도 교회 신축이나 리모델링을 하려고 하면, 그 분야(?)에 전문가로 유명한 부흥사를 초빙해서 대대적인 부흥회를 연다. 그 부흥회의 주제는 헌금을 많이 내면 세상의 축복을 받는 것이며, 교인들은 너르고 안락한 아파트에 살면서 하나님이 좁고 누추한 교회에 살도록 하는 것은 사악한 짓이라는 죄책감을 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분위기를 띄우고 헌금을 경쟁적으로 유도한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건축헌금을 작정시키며, 각종 직분자를 일으켜 세워 서로 경쟁시킨다. 또한 쪽지에 작성한 작정헌금 용지를 헌금함에 내게 하며, 이를 못하면 죄책감이 들게 하는 교묘한 방식을 사용한다. 아시다시피, 이런 부흥회에서 나온 헌금은 거의 대부분 부흥사의 몫이며, 건축헌금을 유도하는 데 전문가인 부흥사를 초빙하면 수백만원의 강사료가 오가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같이 건축헌금을 유도하는 수법은 거의 사기꾼 수준이다. 성경적인 헌금의 원칙은 자발적이고 기쁜 마음으로 미리 정해서 내는 것이다. 그런데 야바위꾼 같은 수법으로, 분위기를 띄워 엄청난 건축헌금을 유도하는 교회가 과연 하나님이 계시는 교회이겠는가?

 

그뿐 아니다. 예배당의 뒤에 가면 수많은 용도의 헌금봉투가 결려있다. 십일조, 감사, 장학, 선교, 건축헌금 등 종류가 수도 없다. 그러나 이 같은 헌금봉투를 나누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라 세상적이고 마귀적인 지혜를 빌려온 것으로, 헌금을 쥐어짜는 악의적인 수법일 뿐이다. 성경적인 헌금 방식은, 교회에 헌금으로 드리면 교회에서 구제와 선교에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교묘한 방식을 동원해서까지 헌금을 강요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게다가 임직식 때 내야 하는 특별헌금도 비성경적이다. 장로나 권사, 집사 등은 교회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라고 주어진 직분이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이를 격려해주고 선물이라도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어떻게 직분별로 특별헌금을 미리 정해놓고 내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어느 나라의 법인가? 그래서 돈이 없는 사람은 대출을 받아 내야 하는 게 우리네 교회의 어두운 현실이다. 과연 이런 교회에 하나님이 계시겠는가?

 

최근에는 일천번제나 작정기도회를 만들어 기도 때마다 헌금봉투를 가져오라는 교회가 넘쳐나고 있다. 일천번제는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의 낙성식 때 일천마리의 소나 양을 번제로 드렸다는 일화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단어가 일천일 동안 기도하는 것으로 둔갑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천일기도나 백일기도는 무속인들이 하는 기도방식인데, 이런 기복적인 기도방식이 교회까지 흘러 들어와서 맹위를 떨치고 있으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일이다. 게다가 기도 때마다 헌금봉투를 가져와야 응답이 신속하게 내려온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영문인가? 이처럼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뜯어내는 것은, 이미 교회가 돈맛을 알아버렸으며 목회자들이 돈에 환장했기 때문이다.

 

교회가 맘몬의 앞잡이가 되어 돈을 우상시 하는 것은, 이미 교회에 귀신들이 판을 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런 교회에 있으면 재산을 뜯기고 영혼까지 털리게 된다. 이런 교회의 담임목사는 최고급자가용에 골프를 즐기며 자녀들을 해외유학을 시키면서 교인들의 등골을 빼고 주머니를 탈탈 털고 있다. 성경은 탐욕은 우상숭배이며, 돈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탐욕스런 목회자가 있는 교회에서 뒤도 돌아보지 말고 나오시라. 그길 만이 당신과 당신 가족의 영혼이 사는 길이다. 그러나 아직도 모르시겠다면, 이 땅에서 알거지가 되어 고통스럽게 살다가 지옥 불에 던져질 때까지 기다리시라.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