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성을 위한 ━━/Speech

마음을 헤아리고 체면을 살려줘야 특별한 관계가 된다

Joyfule 2012. 10. 23. 10:02

 마음을 헤아리고 체면을 살려줘야 특별한 관계가 된다    
  *사람과의 사귐에 있어서 가장 해로운 것은 허영심이다
허영심은 항상 눈에 보이게 마련이며 제일 바보스러운 것이다
마음을 여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현명한 일이다 - 성 어거스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줘라
사람들이 원하는 최적의 소통 상태는 무엇일까?
서로 마음이 맞아서 끊임없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 
아니면 긴 대화를 통해 서로가 모르던 부분을 알게 되어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시원한 느낌을 갖는 것?
하지만 이런 예상과는 반대로 수다스런 대화보다도 
오히려 사람들이 바라는 최적의 상태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서로 바라보기만 해도 뜻이 통하는 상태라고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구차하게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바로 알아차리고 내가 바라는 것을 해주는 것,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과 같은 느낌.
그것이 바로 누구라도 원하는 최상의 소통 상태일 것이다
우리가 텔레파기 능력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읽어낼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며, 
더불어 말 때문에 생기는 수많은 오해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간절한 욕구가 마음  속 깊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온전하게 이해받고 싶고 
타인과 완벽하게 소통하고 싶다는 근본적인 욕구때문에 
'텔레파시'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는 건 아닐까
드러내지 말고 체면을 세워줘라
사람들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이심전심을 바라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기대 때문에 오해의 위험은 더욱 커진다
나무 아래 누워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듯이 서로 코드를 맞출 노력은 하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으로"내가 그와 보낸 시간이 얼마나 많은데...
하고는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이라고 혼자 단정 짓는다
그리고 그가 내가 원하는 만큼 보답을 하지  않으면 혼자서 섭섭해 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을 얘기하는 것은 조금 구차한 것이라 
여기는 심리가 강하면 강할 수록 이심전심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진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은 특히나 체면이라는 것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서구권에서는 명확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야 
소통이 할발하고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심전심을 믿는 한국인들에게는 정서상 똑부러지게 자기 의사를 밝히는 방식은 
익숙하지도 않고 또 그리 바람직하게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교양 없거나 예의가 없는 행동이라고 여기기까지 한다.
또, 원하는 바를 대놓고 노골적으로 밝힌다면 
상대가 나약하거나 절박한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어진다 
우리는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의 체면을 살리며 
최대한 돌려 말하는 방법을 어릴 때부터 배우며 자란다.
설령 원하는 것을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의 요구를 받아준다고 해도
그 사람이 딱히 맘에 들어서가 아니다.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은 여전히 무례하고 공격적인 것으로 기억된다
체면은 말 그대로 몸과 얼굴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로 하기전에 
내 몸과  얼굴을 보고 알아서 해주면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 된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흔히 하는 '한 번만 봐 달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서 봐달라는 것은 얼굴을 보고 알아서 용서를 해달라는 것이다
따라서 봐달라는 애원이 허용되지 않았을 때의 반응은 수치심을 넘어서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라는 식의 분노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체면을 중시하며 사회적 자존심을 손상받는 것에 민감하고
특히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을 매우 불쾌하게 여긴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이심전심의 상황을 만들 수 있도록 가능한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한 노력은 서양인들처럼 둘 사이의 이해의 정도를 깊게 하기 위해 
대화를 많이 나누는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이심전심에 이르기 위해 정情을 돈독히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소통의 기술--하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