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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이끄는 삶 - 34 종의 마음으로 생각하기 2

Joyfule 2007. 1. 17. 02:56


목적이 이끄는 삶 -  34 종의 마음으로 생각하기 2   
신실한 종은 자신의 일에만 집중한다
그들은 다른 종들의 사역과 비교, 비판, 경쟁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받은 사역을 하기에도 바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종들 사이에서 서로 경쟁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불합리하다. 
우리는 다 한 팀에 속해 있고, 
우리의 목표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데 있으며, 
각자 맡은 일이 다를 뿐 아니라 각기 독특한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말했다. 
“우리는 마치 누가 더 좋고, 나쁘다고 하는 듯 서로를 비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이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것들이 있다. 
우리 각자는 모두 고유한 존재다”(갈 5:26, Msg).
종들 사이에는 사소한 질투가 있을 자리가 없다. 
우리가 섬기는 일로 바쁘다 보면 다른 사람을 비판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비판할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누군가를 섬겨야 한다. 
마르다가 예수님께 마리아가 자기를 돕지 않는다고 불평했을 때
 이미 그녀는 종의 마음을 잃어버렸다. 
진실한 종은 불공평함에 대해 불평하거나 자기 자신을 측은히 여기지 않으며, 
섬기기 않는 사람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저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계속 섬긴다.
주인의 다른 종을 평가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다. 
성경은 말한다.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롬 14:4). 
또한 비판에 대해 방어하는 것도 우리의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은 주님이 처리하시도록 맡겨버리라. 
느헤미야나 모세처럼 그들이 반대하는 무리 앞에서 보여줬던 진정한 겸손의 예를 따르라. 
느헤미야는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지금 하던 일을 중단하고 너희를 방문하기에는 내 일이 너무 중요하다”
(느 6:3, CEV)라고 간단하게 반응했다.
주님과 같이 섬길 때 비판이 있을 것을 예상하라. 
세상이 그리고 심지어 많은 교회들도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수님께 드려졌던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행위 가운데 
하나도 제자들에게는 비판 받을 일이었다. 
마리아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가장 귀한 것, 곧 값비싼 향유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을 때 제자들은 이것을 ‘낭비’라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을 ‘좋은 일’(마 26:10)로 부르셨다. 
예수님이 어떻게 보시는가 하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 
그리스도를 위한 우리의 섬김은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절대로 낭비가 아니다.
진실한 종은 그리스도 안에 정체성을 둔다
그들은 조건 없이 사랑받고, 은혜로 용납받은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불확실한 자아상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을 비하하는 일도 기꺼이 용납한다. 
확실한 자아상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섬겼던 가장 좋은 모범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일이다. 
발을 씻긴다는 것은 구두닦이 소년이 되는 것처럼 
어떠한 지위도 갖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신지 아셨기 때문에 그 일이 예수님의 자아상을 위협하지 않았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요 13:3~4).
우리가 종이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정체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확실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섬길 수 있다. 
정체성이 불안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항상 걱정한다. 
그들은 약점이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만과 가식 아래 숨는다. 
우리가 불안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이 우리를 섬겨주고 인정해주기를 원하게 된다.
헨리 나우웬(Henry Nouwen)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무관심해져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의미와 가치를 그들의 잣대로 재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그들을 동정할 만큼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의 가치와 정체성을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둔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로부터 자유롭게 되며, 
우리의 최선을 다해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좋은 그들의 방을 그들이 한 일을 증명해주는 상패나 상장으로 도배해 놓을 필요가 없다. 
이름 뒤에 직함을 넣어서 불러달라고 주장하거나 
높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특별한 가운을 입지 않는다.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도 필요하지 않고, 이룩한 업적으로 
자신들의 가치를 측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고후 10:18).
평생 동안 예수님과 관련된 관계를 가지고 가장 많이 
과시할 수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였을 것이다. 
예수님의 동생으로 예수님과 함께 자란 그는 
누구보다도 신빙성 있는 신임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신에서 자신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약 1:1)’으로 불렀다. 
주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을 드러내 떠벌일 필요가 없다.
진실한 종은 사역을 의무가 아닌 기회로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을 돕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사역하는 사람, 
그는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자’(시 100:2)다. 왜 기쁨으로 섬기는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때문이며, 
섬김이랴말로 우리의 삶을 가장 의미 있게 사용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상 주신다는 약속을 알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요 12:26)고 약속하셨다. 
바울은 말했다.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 6:10).
전 세계 크리스천의 10%가 진실한 종으로서의 역할을 진지하게 감당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 지 상상해보라. 
얼마나 많은 선한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당신은 기꺼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될 의향이 있는가?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이렇게 말했다. 
“섬기는 법을 배운 사람만이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