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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찾아 헤맸나?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Joyfule 2023. 2. 6. 01:21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무엇을 찾아 헤맸나?



몇 년 전 한 교도소장이 나보고 감옥 체험을 하라고 권유한 적이 있다. 또 어떤 사회단체에서 관속에 들어가는 ‘죽음의 체험’을 하라고 권유한 적이 있다. 그런 체험은 드러나지 않고 남모르게 나홀로 조용히 해야 할 것 같아서 사양을 했었다. 한 기자가 ‘죽음체험’현장을 취재한 글을 읽었다. 자기차례가 되면 사람들이 관속에 들어가 누웠다. 잠시후 관뚜껑이 닫히고 그 속에서 오분가량 있다가 사람들이 다시 나왔다. 그런데 관에서 나오는 사람마다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게 궁금해진 기자는 취재수첩과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줄을 섰다. 그의 차례가 됐고 그는 관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관뚜껑이 덮이고 그 위로 검은천이 덮혔다. 빛이 하나도 없는 어둠 속이었다.

‘아! 여기가 무덤이구나’

여러 생각이 들었다. 무덤 밖에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가족, 친구, 사회적 지위, 하는 일, 아끼던 여러 물건들 그 어떤 것도 관속으로 가지고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럼 관 속에 누워있는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그는 가지고 가는 것은 마음뿐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병상에서 죽음을 앞둔 어떤 외국 부자가 썼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대충의 내용은 이랬다.

‘나는 비즈니스 세상에서 성공의 끝을 보았다. 타인들의 눈에 내 인생은 성공의 상징이다. 하지만 일터를 떠나면 내 삶의 즐거움은 많지 않다. 결국 부(富)는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하나의 익숙한 사실일 뿐이다. 지금 병들어 누워 과거 삶을 회상하는 순간 나는 깨닫는다. 정말 자부심 가졌던 사회적 인정과 부는 결국 닥쳐올 죽음 앞에 희미해지고 의미 없어져 간다는 것을. 어둠 속 나는 생명연장장치의 녹색빛과 윙윙거리는 기계음을 보고 들으며 죽음의 신이 다가오는 걸 느낄 수 있다. 이제야 나는 깨달았다. 생을 유지할 적당한 부를 쌓았다면 그 이후는 부와 무관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예를 들면 관계, 예술, 아니면 젊은시절의 꿈? 그런 것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끝없이 부를 추구하는 것은 결국 나 같은 비틀린 개인만을 남긴다. 돈으로 운전기사는 고용할 수 있지만 나 대신 아파줄 사람은 고용할 수 없다. 내 인생을 통해 얻은 부를 나는 가져갈 수 없다. 물질은 잃어버려도 다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은 한번 잃어버리면 절대 되찾을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내게 남은 것은 사랑이 넘쳐나던 기억들뿐인 것을. 그 기억들이야 말로 끝까지 내가 가진 진정한 부(富)인 것을. 좀 더 가족을, 친구들을, 이웃을, 내 자신을 잘 대해주고 사랑할걸’

글들을 읽으면서 내자신에게 물었다.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는가? 너에게 주어진 칠십 해가 지났는데 너는 세상 어디쯤에 와 있는가? 너는 진실로 누구를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실버타운에서 치과 진료를 받기 위해 서울로 간다고 했을 때였다. 앞자리에 앉았던 칠십대 중반의 노인이 내게 말한다.

“역까지 내가 운전해 데려다 줄까요?”

“괜찮습니다. 택시부르면 되요.”

내가 사양했다.

“택시를 부르면 돈이 들잖아요?”

그는 내 돈까지 걱정해 주고 있었다.

“그래도 나이 든 노인이신데”

“나 노인 아니예요. 아직 펄펄해요.”

그는 나를 데려다 주고 싶었ㄷ. 그 건 이웃에 대한 작은 사랑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대령 출신의 팔십가까운 노인을 만났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해병대 출신 영감이 점심에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나보고 운전해달래. 그래서 운전병 노릇을 하고 왔어요.”

실버타운 안에서도 사랑이 넘치는 노인들이 있다. 사랑이 있는 노인들은 얼굴에 윤기가 흐르고 빛이 난다. 종지그릇같이 작은 나는 예수님 같은 위대한 사랑은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웃에서 보내는 작은 사랑은 느낄 수 있다. 돌이켜 보면 나만을 이기주의 속에서 나만을 사랑해 온 것 같다.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을 추구하지 못하고 헛된 것만 따라온 것 같다. 비겁함과 두려움에 끌려 타협하고 위선을 부리며 살아온 것 같다. 반성하고 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