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의 공중정원과 바벨탑.
고대 도시들은 많이 있다. 그럼에도 후세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게 하는 도시로서 영광과 굴욕이라는 극단을 맛을 보게 한 도시는 바빌론밖에 없다. 유프라테스강 동쪽 기슭에 위치하며 세계의 중심이라고까지 불렸던 이 도시의 특징은 바둑판처럼 뻗어 있는 도로와 그 주위를 장식한 채색 타일 벽돌, 그리고 하늘 높이 우뚝 서 있는 건축물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건축 미술은 바벨탑과 공중정원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피라미드와 함께 세계 7대 불가사의중 하나로 손꼽히는 공중정원, 이름 그대로 하늘에 걸쳐 있는 정원이다. 그 존재는 오랜 동안 전설이었으나 19세기 말부터 이루어진 발굴조사에 의해 실재 사실이 확인되었다.
조사에 의하면 왕궁 지구의 북동쪽에 둥근 천장으로 덮여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사방이 약 40미터 정도 되는 건물의 잔재가 있다고 한다. 이것을 공중정원의 토대 부분이라고 판단한 고고학자들은 잃어버린 상부 구조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검토했다. 그 결과 바빌론의 공중정원이라는 것은 지구라트와 닮은 계단상의 건물이었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상상을 뛰어넘는 건축물이었던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아내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네부카드네자르의 아버지가 메디아 왕과 동맹을 맺었을 때 당시의 관습으로 두 왕가 사이에서 혼인이 이루어졌는데 메디아 왕의 딸인 아미티스 Amytis와 결혼한 것. 그러나 왕비에게는 결혼생활이 행복하지는 않았던 듯. 왕비의 고향은 페르시아 북방 산악 지대로 평야에 있는 바빌론 땅에 적응하지 못했고, 왕은 왕비를 위로하기 위해 그녀의 고향과 비슷한 정원을 만들것을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발굴과정 뒷 이야기인데, 발굴된 유적이 공중정원의 상층부에 물자를 공급하기 위한 창고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거대한 건축물의 하층부인 것 만은 틀림없다고 한다. 왕은 정원 상층부에 대형 물탱크를 만들어 유프라테스 강의 물을 펌프로 올린 후 그 물을 다시 각 층에 분배 공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잔존하는 모습은 남아있지 않지만 페허가 된 공중정원의 터는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으므로 궁금증을 더하게 한다.
바벨탑 - 루카스 판 팔켄보르히 作 (출처=위키미디어)
바벨탑에 대해서는 성서학자들 사이에도 논란이 있다. 논란에 관해서는 다음에 언급하기로 하고. 우선 바벨탑은 바빌론의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에 세워졌다.
창세기11:1~11:9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한 가지 말을 쓰고 있었다. 사람들이 서로 서로 의논하여 높게 탑을 짓자 라고 한 것도 결국 말이 통하고 협의가 되므로 이루어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를 보시고 이러한 현상은 사람들이 앞으로 하고자 하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 이젠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해야겠다.
성경에 따르면 여호와는 사람들이 하늘에 닿을 수 있는 탑을 건설하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행위이자 오만한 마음의 표출이라고 받아들이셨으므로 그래서 이 도시에 모이는 사람들의 언어를 제각기 다르게 바꾸어 버렸다고 한다.
이 일로 사람들이 서로의 말을 못 알아듣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도시를 세우던 일을 그만두고 흩어지게 되었으므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 불렀고, 오늘날 어린애들까지도 영어학원에 내몰리고 부모들 등골이 휘어지게 되었다는 얘기.
탑은 바빌로니아 지방의 독특한 건축물로 지구라트(Ziggurat, 聖塔)라고 불렸다. 지구라트는 본래 수메르 사람들에 의해 지어졌는데 단을 여러 층 겹쳐 올린 건축물로 위로 갈수록 작아지는 사다리꼴의 피라미드 같은 형상이고 주위에는 계단을 만들고 가장 높은 곳에는 신전이 있다.
지구라트란 바빌로니아 말로 하늘의 산을 뜻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왕의 묘인 것에 비해 지구라트는 신과 교유하기 위한 하늘과 땅의 연결 고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바벨탑은 그들 삼십여개의 지구라트들 중 하나였다.
[조명계 전 홍익대 교수]
브뤼헐(Pieter Bruegel the Elder)의 바벨탑(The Tower of Babel)
성경에서 유명한 에피소드 중 하나를 꼽으라면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신이 사는 하늘까지 닿을 정도까지 탑을 높에 쌓았다가 신의 노여움을 사서
바람에 의해 탑이 무너졌는데 이 폐허를 "바벨"이라고 한다고 하죠.
지금도 '바벨탑을 쌓다'라는 표현은 인간의 욕심을 나타내는 대명사적인 표현이 됐죠.
현재의 상식으로 보자면 이런 바벨탑의 전설은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란, 이라크 지역에는 그 전설의 바벨탑이 실제 존재한다고 합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이었던 곳에는 아직도 '지구라트'라고 하는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은 신전 탑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수백 개나 된다고 하는군요.
재미있는 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탑을 쌓아올릴 정도의 단단한 바위가 별로 없어서
흙과 짚으로 벽돌을 만들어 구운 다음 지구라트를 짓는 데 사용했다고 해요.
이렇게 만든 벽돌로 처음에는 낮게 쌓다가 점점 높게 쌓아올리게 됐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지구라트와 바벨탑이 무슨 관계냐 할 수 있는데요.
그 옛날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강대한 국가가 바빌론이었는데 거기서 지은 가장 높은 지구라트가 바벨탑이라고 하네요.
바빌론 발굴 당시, 기원전 229년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점토판이 발견됐는데
바빌론의 지구라트의 높이는 자그마치 90미터가 넘고 8천5백만 개의 벽돌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기록이 있답니다.
바벨탑과 도시
바벨 탑.
성서에 의하면, 바벨 탑은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창세 11:1-9) 흥미롭게도, 고고학자들은 고대 바벨론(바빌론)의 폐허와 그 주변에서 여러 개의 지구라트, 즉 피라미드형으로 된 계단식 신전 탑들의 유적을 밝혀 냈다. 그 유적 중에는 바벨론의 성벽 안에 있었던 붕괴된 에테메난키 신전이 포함된다. 그러한 신전에 관한 고대 기록에는 흔히 “그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리라”는 말이 들어 있다.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 왕은 “짐은 에테메난키의 계단식 탑 끝을 높여 그 꼭대기를 하늘과 맞서게 하였노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 단편은 그러한 지구라트의 붕괴에 관해 이렇게 알려 준다. “이 신전의 건축은 신들을 격노케 하였다. 어느 날 밤 신들은 건축된 것을 무너뜨렸다. 신들은 그들을 널리 흩어지게 했고 그들의 언어를 생소한 것이 되게 하였다. 신들은 일의 진척을 방해하였다.” -「성서와 삽」(Bible and Spade), 1938년판, S. L. 케이거 저, 29면.
에테메난키(Etemenanki)지구라트(바벨탑)
대홍수 후 인류가 최초의 도시문명을 이루었을 때
고대인류는 홍수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고 하늘에까지 탑을 쌓아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신에게까지 도달하려고 했다
성서 「창세기」 제11장에 나오는 이 탑은 흔히 바벨탑으로 불리며, 신을 경배하지 않는 인간들의 교만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 바빌론에 에테메난키라는 이름의 지구라트가 존재했던 것으로 유적이 발견되었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에 따르면, 지구라트의 평면부는 한 변이 약 177.7미터에 이르는 장방형 구조로 모두 8층 규모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계단 모양의 탑 바깥쪽으로는 나선형의 계단이 있었으며, 계단 중간에는 휴게용 무도장도 있었다고 한다.
우르의 도시국가(기원 2000~2500년)의 중앙에는 신전이 있었다
지구라트 가운데 ‘하늘에 닿을 만큼’의 높이로 쌓아올린 최고의 탑은 신 바빌로니아 때 재건된 ‘에테메난키’(‘하늘과 땅의 기초가 되는 집’이라는 뜻)라 일컫는 탑이다. 이 탑은 7층으로 높이가 90m며 8천5백만개의 벽돌을 사용했다.
바벨론 왕이였던 나보폴라살이 이 신전을 에테메낭키 지구라트 라고 부르면서 마르둑신의 명령으로 다시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나보포라싸왕은 ‘마르둑신이 나에게 에테메난키(바벨탑)의 기초를 지구 중심까지 닿도록 단단하게 만들라고 명령했다.
바빌론 중심부에 있는 에테메난키는 거의 정방형 구조로, 한 변이 약 400미터에 이르는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도시크기는 690*1000m 정도로 약 20만명이 거주하였다
가장 부유층으로 지식인이었던 필경사가 있었는데 이들에 의해 점토판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우르시대에 만들어진 스탠더드라는 작품에 당시 생활상이 그려져 있다
잔을 들고 있는 상류층과 상인,도공,악사,군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당시 맥주도 만들어 마셨다
그러나 토양속에 있는 소금기가 증가하면서 밀의 수확량이 급감하여 우르는 쇠퇴의 길을 걷고 이민족의 침입으로 수메르는 멸망하게 된다
벽 안쪽에 있었던 지구라트는 현재 기초 부분밖에 남아 있지 않다.
에테메난키는 원래 구바빌로니아 시대에 건설된 것으로 누가 만들었는지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지구라트는 이후 신바빌로니아 시대에 나보폴라사르 1세(B.C. 626~B.C. 606년 재위)와 네부카드네자르 2세(B.C. 605~B.C. 562년 재위)에 의해 재건되었다.
쵸가 잔빌 지구라트(바벨탑)
현존하는 이란의 Khuzestan 지방에 있는 고대 엘람인의 지구라트 유적 쵸가 잔빌(Chogha Zanbil)
기원전 약 1,250년전에 Untash-Napirisha 왕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가로*세로 (105m*105m) 크기로 높이는 50m 추정
건축자재는 성경의 기록처럼 진흙 벽돌과 가끔 구운 벽돌을 사용했다(창11:3)
물론 초가 잔빌이 바벨탑의 원형은 아니다.
이런 지구라트는 바벨탑 사건으로 인종이 갈라진 후 다른 지역(이집트,중국,남미)에서도 발견된다
인류를 멸종했던 대홍수가 얼마나 큰 충격을 준 사건인지는 전세계에 대홍수 설화와 지구라트가 발견되는 것을 보아서도 짐작할 수 있다
원형 바벨탑 사건은 기원전 2,800년전이다 / ars
나보니두스는 유프라테스 강의 동쪽 강가를 따라 성벽을 세워서 외성의 끝 부분을 연결하였다. 이 성벽은 폭이 8.5미터쯤 되었으며, 또한 여기에는 망대들이 있었고 폭이 3.5미터인 선착장도 있었다.
기원전 5세기에 살았던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유프라테스 강 양옆으로 계속 이어진 선착장이 있었으며 그 선착장은 25개의 출입구가 있는 성벽에 의해 도시 지구와 분리되어 있었다고 알려 준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도시의 성벽은 높이가 약 90미터, 두께가 26.5미터, 길이가 약 95킬로미터에 달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헤로도토스는 바빌론에 관해 말할 때 실제보다 과장한 것 같다.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바빌론은 규모가 훨씬 작았으며 외성도 길이가 훨씬 짧고 높이도 훨씬 낮았다. 유프라테스 강의 서쪽에 강변을 따라 이어진 선착장이 있었음을 확증할 만한 증거도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거대한 성벽의 문들에서부터 도시 한가운데로 도로들이 뻗어 있었다. 주된 대로였던 ‘행렬의 길’은 포장이 되어 있었으며, 도로 가에 있는 담벼락들은 경배를 받는 신들을 상징하는 사자와 용과 소의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2권, 323면 사진) 느부갓네살 2세는 옛 궁전을 수리하고 확장하였으며 북쪽으로 2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여름 궁전을 지었다. 또한 그는 볼트(vault) 구조의 아치 길들이 층층이 있는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었는데, 바빌론의 가공 정원으로 알려진 이 구조물은 “고대 세계의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유명하다.
lD;g]m:미그달
탑, 망루
미그달(명남)은 가달(ld'G:: 자라다, 커지다)에서 유래했으며, '탑, 망루'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탑이 도시에서 가장 큰(가장 거대한) 건물이었던 초기에 생긴 것 같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52회 나온다.
(a) ① 미그달은 성읍의 요새를 견고히 하기 위해 세워진 높은 탑(창 11:4, 창 11:5, 삿 8:9, 삿 9:46-52, 왕하 9:17 등).
② 성벽을 공고히 하기위해 만든 방위 구축으로서의 망대를 의미한다(느 3:1, 느 3:11, 느 3:25, 느 3:26, 느 12:38, 느 12:39, 렘 31:38).
③ 미그달은 포도원 망대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사 5:2).
④ 비유적으로 피난처로서 하나님(시 61:3, 잠 18:10), 아름다운 목(아 4:4), 코(아 7:4), 유방(아 8:10)에 대해 사용되었다.
(b) 미그달은 올라가는 계단, 나무 '강단'에 대해 사용되었다(느 8:4).
(c) 미그달은 정원 중앙에 더 높이 올라가는 '꽃밭'에 대해 사용되었다(아 5:13).
(참조: BDB; Gesenius).
lb,B;:바벨
바벨은 바벨론(바빌론)을 가리킨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62회 나온다.
바벨은 바벨론어 바빌리(bab-ili), 복수형 바빌라니(bab-ilani)의 번역이다. 이 바벨론어는 더 이전의 수메르어 명칭 카딩길라(ka-dingir-ra: '신의 문')를 번역한 것이다.
이 명칭이 후 바빌로니아어로 '밥 일리'(Bab-ili)라고 번역되어 보다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 같으며, 창 11:9의(언어를) "혼잡케 하셨다"를 뜻하는 발랄(balal)의 어원이 바로 이 '밥 일리'에 근거한 용어이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이 바벨론은 성경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도시로 언급되고 있다. 바벨론은 B.C. 2,100년 경에는 간혹 B.C. 7세기 경에는 매우 자주 틴 티르키(tin-tir ki: 나무들의 생명), 에-키(e-ki: 운하의 장소)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렘 25:26; 렘 51:41의 세샤크는 바벨의 암호형의 철자의 번역으로 해석하지만 옛 이름 쉐쉬키(ses-ki)의 희귀한 출현일지도 모른다(참조: NBD; ISBE).
바벨론은 시날(Shinar, 창 10:10) 땅의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위치한 도시이며, 이 도시의 유적지는 현재 이라크의 바그다드의 남쪽 80㎞, 힐라(Hillah)의 북쪽 8㎞ 지점에 위치해 있다(890헥타아르).
창 10:10에 의하면 니므롯이 이 도시를 자신의 수도로 건설했다. 창 11:1-9에서 패역한 인간이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반항하여 그 유명한 바벨탑을 이곳에 세우기 시작했지만 하나님이 막으심으로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수메르인들의 기록에도(B.C. 2,250경), 아카드의 사르곤왕에 의해 파괴된 이 도시의 신전을 니므롯이 복구하였다고 나타난다. 이 도시는 우르 제 3왕조 때에(B.C. 2,150-2,050년경), 셈족 계통의 아모리인들에게 점령당했다. 그 후에 이 도시는 바벨론 제 1왕조의 수도가 되었다.
바벨론 제 1왕조의 함무라비 왕은(B.C. 1,750년경) 이 도시를 복구시키고 그 영향력을 크게 확장시켰다. 함무라비는 그 곳을 근동의 문화 중심지로 만드는 책임을 지고 노력했으며, 이것은 헬라 시대까지 지속되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마르둑(Marduk)을 바벨론의 도시 신(神)으로 만든 것에 기인한 것이었으며, 그리하여 약 1,300여 신들의 수메르-아카드 만신전(pantheon)의 우두머리 신으로 만든 데서 기인한 것이다. 그것은 모든 종교적 전통을 하나의 체계 속에 편입시켜 버렸다. 함무라비는 바벨론을 세계적인 세력으로 만들었으며,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사르곤(Sargon)과 나람신(Naramsin)이라는 아카드 왕들을 세계적인 권력의 계승자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바벨론은 그리스와는 관계없이 과학적인 지식을 발전시켰으며, 이에 관한 주요한 발달은 신화, 철학, 의학, 수학(1세기 경의)과 천문학 방면에서 이루어졌다(참조: 단 1:4, 단 1:17).
B.C. 1,600년경 이 도시는 헷 족속에 의해 함락되었으며, 그 후에는 카시트의 통치 하에 들어갔다. 이 도시는 계속하여 앗수르와 엘람의 침범을 당하였고, B.C. 1,124년경에 느부갓네살 1세에 의해 재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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