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하심.
1. 완전함으로서의 선하심
1) 일반적 찬사로서의 선(Good)
(1) 어떤 종류의 탁월함
(2) 아름다움, 경제적 가치, 유용함, 능숙함, 도덕적, 호의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
(3) 비도덕적 선(저녁, 노을, 컴퓨터, 빛, 피조 세계(창 1:10, 12, 18, 21, 25)
(4) 선함과 존재는 개념에 있어 다르나 실은 동일하다(토마스 아퀴나스)
2. 플라톤의 <유튀프로(Euthyphro)> 대화록 문제
1) 신은 경건한 일(옳은 일)을 하라고 한 걸까 아니면 경건은 고유의 본질이기 때문에 경건을 명령하는 것일까?
2) 선은 우월한 어떤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3) 선함을 인격적인 어떤 것으로 보지 못한 플라톤과 철학자들
4) 본성이 완전하지 못한 인간은 선함의 기준이 될 수 없다(보기: 바흐, 모차르트가 최고! 우리 딸이 최고!).
5) 인간에게 항상 분명하지는 않은 하나님의 선하심(불의와 고통의 신정론, 궁극적으로는 선하심을 알게 됨)
3. 자비(慈悲, mercy)로서의 선하심
1) “토브”(히), “아가도스”, “칼로스”
2)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창 50:20)
3) 선한 자비는 죄의 용서(시 86:5)
4. 하나님의 선하심의 대상들
1) 언약적이고 구속적(빌 1:6)
2) 모든 피조물(마 5:45; 행 14:17)
5.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주권
1) 절대적 주권
2) 하나님의 특징 반영
6. 하나님의 사랑
1) 에로스(신약 무)
2) 필리아(우정)
3) 아가페(하나님-신자)
4) 사랑(love, αγάπη)
(1) 사랑의 영원성
(2) 성령은 사랑의 영(롬 5:5; 요일 4:8)
(3)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롬 5:5): 사랑 없으면 하나님과 교제할 수도 그를 기뻐할 수도 없다
❉사랑의 요소(에릭 프롬의 <사랑의 기술>)
❶배려와 관심(care & Concern) : "God so Loved"(요 3:16)
❷앎(지식, knowledge) :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시 103:14), "내가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 아니함은~~~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딤후 1:12).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맘을 감동해~~~ 늘 간수해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찬송가 가사)
❸책임(responsibility) :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요 3:16)
❹존중(respect) :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❺주는 것(giving) : 독생자를 주시다(요 3:16)
He who knows nothing, loves nothing(파라켈수스)
“아무 것도 모르는 자는 아무 것도 사랑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는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아무 쓸모도 없다. 그러나 이해하는 자는 사랑하고, 주목하고, 인식한다...... 어떤 것에 대한 지식이 늘면 늘수록 사랑도 커진다.....딸기가 익을 때 다른 모든 과일도 익는다고 생각하는 자는 포도에 대해서도 아무 것도 모른다."
7.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들
1) 하나님의 자기 사랑(본성, 삼위일체)
2) 우주적 사랑(창 1장, 마 5:44-48)
3) 구원하시는 사랑(요 15: 13-14, 친구; 남편-아내, 그리스도-교회, 엡 5:25)
8.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주권
1) 창세 전에 구원을 위해 우리를 선택
2) 그 분의 사랑은 지배하고 있는 것, 즉 절대 주권
3) 하나님의 설득
9. 하나님의 은혜
1) 하나님의 자비로서의 은혜
2) 은혜는 신적 선한 선물
10. 일반은총과 하나님의 참으심
1) 하나님이 베푸시는 호의
2) 모든 것을 선대하심(시 145:9)
3) "헨"(은혜)이나 "카리스"(은혜)가 아닌 일반 호의
4) 하나님의 제지(죄, 자신의 진노, 모두에게 일시적 축복, 중생하지 않는 자들의 선을 행함, 진리를 일부 앎, 발람, 사울, 가료 유다 등 성령의 어떤 복들 체험, 배교자들->히 6:4-6)
11.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
1) "헤세드"(245회)
2) 인자하심, "불변의 사랑", 선함(goodness), "eleos"(자비, 70인 역), 충성심, 신실함
12. 하나님의 긍휼
1) "하말": 동정, 사랑
2) "라함"(출 33:19; 34:6의 "자비"): 긍휼히 여기다,
3) "스플랑크니조마이"(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스프랑크나>, 요일 3:17),
4) 큰 빚을 용서 받고도 작은 빚을 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긍휼을 갖지 않는 것(마 18:21-35)
13. 하나님의 선하심의 다른 형태들
1) 하나님의 온유, 관용, 겸손
2) 섬기러 오신 예수(마 20:28)
3) 예수님의 자기 비하(대속물)
4) 여호와 샬롬(삿 6:24; 평화의 왕, 사 9:6, 에이레네)
5) 복됨(롬 1:25; 9:5; 고후 1:3)
14. 창조 6일 사역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선하심(박해경 박사)
1) 칼빈은 일반적으로 조직신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6일창조, 소위 Hexahemeron에 대해서 자세히 논하지 않는다. 칼빈은 오히려 6일창조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깨닫고 감사할 것을 강조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6일 동안에 이루어졌다고 말했는데, 이러한 사실에 의해 우리는 일체의 허구를 물리치고 우리의 온 생애를 한 분 하나님의 역사를 묵상하는 일에 드리도록 하는 일에 있어서 싫증나지 않도록 그의 사역을 6일로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라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눈을 어디로 향하든지 하나님의 사역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최고로 완벽해서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으므로 그것은 하나님의 보시기에도 심히 좋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주의력(attention)이 자주 변하고, 경건한 생각은 빨리 사라지기 쉬운가를 본다. 그래서 우리의 이성은 신앙에 순종하여 제 7일의 성별이 우리를 초대하여 침묵을 배우게 되기 전까지는 마치 이러한 6일 창조의 과정이 하나님의 능력에 맞지 않는 것처럼 불평하는 것이다.
2) 그러나 하나님이 우주에 모든 선한 것을 풍족하게 주시기 전까지는 아담을 창조하지 않으셨다는 점, 바로 만물을 창조하신 그 순서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류를 향하신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부지런히 묵상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만일 하나님이 아직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땅에 두셨다면, 그리고 빛이 없는데 그에게 생명을 주셨다면 그것은 아담에게 그의 복지를 위해서는 불충분하게 행하신 처사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류를 위하여 해와 별들이 운행하도록 하셨고, 땅과 물과 공중에 각양 생물들로 가득 채우셨고, 풍성한 과실들을 나게 하사 식물로 삼기에 충분하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향한 놀라운 선하심을 보여주신 것이다. 즉 모세는 창조의 기록을 통해서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그의 영원하신 지혜와 성령에 대해서도 증거하므로 우리는 그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꿈꾸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3) 칼빈은 창세기 주석에서 하나님이 6일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보다 쉽게 묵상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고 한다. 또 인간이 무언가 위대하고 놀라운 일을 할 것이라는 점을 증거하시고, 우리 인간이 본래 존엄했었다는 점을 알도록 하신 것도 첨부한다. 그래서 인간은 “소우주”(microcosmos)라고 고대인들이 불렀던 것은 다른 피조물에 비해 인간이 신적인 지혜와 공의, 선 등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인간의 본성 속에서 빛나고 있는 신적인 질서를 나타내는 지성과 의지와 모든 감각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는 점이라고 한다.
4) 하나님은 사람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셨고, 특히 그들에게 후손에 이르도록 복을 주셨다. 이 창조 기사에서 우리는 모든 것이 창조되어진 목적을 알게 된다. 사람에게 필요하고 편리한 모든 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주어진 것이다. 창조의 순서에 있어서 인간을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돌보심(배려, solicitude)이 두드러지고 있음을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인간이 필요로 할 것을 모두 다 세상에 채우셨을 뿐 아니라 엄청나게 풍요하도록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부요하였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가 존재하기 이전에 그토록 돌보아 주셨다면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생활에 필요한 음식과 다른 것들이 결핍되도록 절대로 내버려두시지 않을 것이다.
5) 칼빈은 6일 창조의 기록에서 먼저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버지로서의 자비와 사랑을 배우고 경건한 마음으로 감사할 것을 강조하였고, 다음으로는 우리가 창조자 하나님 외에 어떤 다른 우상 신이나 잡신들을 생각하지 말라는 점에 대해 주의시켰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바실(Basil)의 글에서 매우 유익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바실은 그의 설교집(Homily) 6에서 6일 창조 중 “하늘의 빛들의 창조”(Creation of the Lights of the Heavens: on the Hexaemeron)에 관하여 설명하는 중에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남기고 있다-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낮과 밤을 구별하고, 땅을 비추기 위하여 하늘의 궁창에는 빛들이 있을지어다”(바실은 70인역을 사용하였다)라고 하셨다. 하늘들과 땅(지구)이 먼저 나왔고, 다음에는 빛이 창조되었으며, 낮과 밤이 구분되었고, 그 다음에는 궁창과 마른 땅이 드러났다. 물이 고정된 곳으로 한정되어 모이게 되었다. 땅에는 그에 알맞은 과실들이 충만하게 되었다. 셀 수 없을 정도의 채소와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땅을 장식하였다. 그러나 태양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고 달도 그러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태양을 제일 원인(the first cause, 즉 神)이나 빛의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고,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 태양이 땅으로부터 자라나는 것들의 산출자라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네 번째 날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하시고, 이어 하나님은 두 광명을 만드신 것이다-이러한 바실의 견해는 매우 사려 깊은 것 같다. 간단히 말해서 바실은 태양과 달이 있기 전에 식물들이 나타난 것은 우상숭배를 막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천체들을 신들로 믿고 식물은 이런 천체들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칼빈이 위에서 말한 대로 우리는 6일 창조의 교리에서 두 가지를 배울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돌보심이며, 다른 하나는 창조자라야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조덕영 교수(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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