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등장하는 마귀의 개념.
디아볼로스-[형용사] 비방적인, 중상적인 slanderous. [명사]중상자, 비방자 slanderer, 마귀 devil.
2. 신약성경 - 1
신약성경에서 디아볼로스(diabolos)는 37회, 사타나스(Satanas)는 36회, 베엘제불(Beelzeboul)은 7회 나타난다. 그밖에도 에크드로스(원수 Enemy), 호 포네로스(악한 자), 호 아르콘 투 코스무 투투(이 세상의 지배자 the prince of this world)같은 이름들이 있는데, 안티디코스(적대자 adversary)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사탄(Satan)의 문자적 번역어이다(벧전 5:8). 마가복음은 오로지 사타나스(Satanas)만을 사용한다. 누가는 그의 특수자료에서 이 단어를 애용하기는 하지만 이 단어와 디아볼로스(diabolos) 사이에는 의미상의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후자의 단어는 칭호로서는 전혀 사용된 적이 없다(마 4:10; 마 4:5; 마 4:8; 마 4:11을 마 4:10과 함께 참조하라).
마 25:41에서는 마귀(투 디아볼루)의 천사들이 언급되어 있다. 이와 유사하게 예수의 시험에 관한 기사(마 4:1-11, 병행구 막 1:12이하, 눅 4:1-13)에서 마귀는, 쿰란 문서에서와 같이, 스스로 세상의 주라고 사칭한다. 이렇게 그 직함을 사칭함으로써 마귀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가 갈 길을 가지 못하게 하려고 하였다. 마귀는 적절하게도 “이 세상의 지배자”(아르콘 투 코스무 투투)라고 불리운다(요 12:31; 요 14:30; 요 16:11).
마귀가 있는 곳은 지옥 Hell이 아니다. 마귀와 그의 모든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것은 영원한 불이다(마 25:41). 구약성경에서와 같이, 마귀는 사람을 고소하기 위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눅 22:21; 요 12:31; 요 16:11).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을 위하여 기도하셨으며, 악한 자로부터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그들에게 가르치셨던 것이다(마 6:13).
눅 10:18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사탄(하늘의 고소자)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칠십인이 기쁘게 돌아와 예수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보고하는 장면 바로 다음에 나오고 있다. 계 12:5; 계 12:7-12은 이 사탄이 떨어지는 것과 예수님 자신의 출현을 결부시키고 있다. 계 12:9에서 디아볼로스(diabolos)와 사타나스(Satanas)는 똑 같은 무게와 중요성을 가진 단어로 나란히 사용되고 있는 한편, 계 12:8에서 이것은 드라콘(용 dragon) 또는 옵히스(뱀 serpent)로 그리고 계 8:10에서는 카테고르(참소하는 자 Accuser)로 묘사되고 있다.
이로써 쿰란 공동체가 가지고 있었던 이원론적 세계관은 깨어진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마귀를 쳐부수고 그의 무기를 빼앗아버렸으며, 따라서 그가 노략질한 물건을 다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은 악령에 사로잡힌 자들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마 12:27-29)
그러나 비록 사탄이 하늘에서 추방되었다 하더라도 이로 인해 그가 전혀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것은 아니다.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그들의 아버지, 즉 마귀에게 속해 있다(요 8:44). 베드로는 예수께서 순종함으로써 고난의 길을 걸으려는 그 마음을 돌리려 하였기 때문에 “사단”이라 불리움을 받고 사탄과 같은 존재로 여김을 받았다(마 16:23, 병행구 막 8:53). 또한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려고 작정하였을 때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갔다 라는 말도 있다(눅 22:3; 요 12:27; 참조: 요 6:70; 요 13:1).
어둠의 때는 마귀의 때이다(눅 22:53, 이원론적 개념에 유의하라).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탄이 질병의 배후에 있을 수도 있다(눅 13:16, 참조: 고후 12:7. 또 행 10:38).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마귀는 사람들이 믿고 구원을 얻지 못하도록 사람의 마음에서 구원의 말씀을 가로채가는 자로 묘사되고 있다(마 13:19에서는 호 포네로스[악한 자 the evil one]로, 막 4:15에서는 '호 사타나스[사탄]'로, 그리고 눅 8:12에서는 호 디아볼로스[마귀 devil]로 각각 나온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방해하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디아볼로스(diabolos)로 불리울 수 있다는 원리는 개인에게만 적용되었을 뿐 아니라 교회에게도 적용되었다. 예컨대,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마 13:24-30)에서 공동체에 “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원수' Enemy의 활동으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여기에는 랍비 신학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중간치가 없다.
이 비유를 기록함에 있어서, 마태는 이 문제에 관한 쿰란 종단의 해결책과 은밀히 대결하고 있다. 쿰란 종단의 경우, 최후의 심판이 임할 때까지는 율법을 범한 자들은 그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징계 방식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로부터 추방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공동체는 지상에서 유일한 구원 받은 공동체로서의 순수성을 보존한다. 그러나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는 절대적으로 순수한 교회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지상의 교회는 이런 저런 것들이 뒤섞인 존재일수 밖에 없다. 순수한 것과 순수하지 못한 것을 분리하는 일은 오직 종말론적 심판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특수한 과제에다.
바울 서신에서 디아볼로스(diabolos)는 단지 엡 4:27과 엡 6:11에만 나온다(목회서신에서는 딤전 3:6이하; 딤전 3:11; 딤후 2:26; 딤후 3:3; 딛 2:3 모두 6회 나온다). 반면에 사타나스(Satanas)는 통상적으로 사용된 정식 용어이다(목회서신에서는 오직 딤전 1:20에서 고전 5:5의 것을 인용하여 사용할 경우와 딤전 5:15에서 이미 사탄에게 돌아갈 자들을 언급할 때 사용한 경우뿐이다. 그러나 이 이름이 그리 자주 언급되고 있지는 않다. 모두 겨우 10회에 지나지 않는다(롬 16:20; 고전 5:5; 고전 7:5; 고후 2:11; 고후 11:14; 고후 12:7; 살전 2:18; 살후 2:9; 딤전 1:20; 딤전 5:15).
고후 6:15에서 바울은 쿰란 문서에 나오는 이름 벨리알을 사용하고 있다. 사실 고후 6:14 이하의 전체 문장이 한 쌍의 대립되는 개념들, 즉 의와 불법, 빛과 어두움, 그리스도와 벨리알, 믿음과 믿지 않음,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의 성전 등의 대립 개념들을 애용한다는 점에서 쿰란 종파의 사상을 반영한다. 또한 바울은 많은 불운과 어려움들을 사탄의 장난으로 돌렸다. “육체의 가시”는 그를 치도록 보내어진 “사단의 사자”이다(고후 12:7). 사탄은 바울을 속이려고 하였다(고후 2:11). 사탄은 바울로 하여금 여행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살전 2:18) 빛의 천사로 가장할 수 있으며 이렇게 가장하여 자기가 보낸 자들을 통하여 불순한 생각을 퍼뜨리기도 한다(고후 11:14).
그는 기독교인의 공동체를 시험한다(고전 7:5; 고후 2:1; 살전 3:5). 그는 교활하고 속이는 것이다(엡 6:11. 이 3절과 다음의 구절들에서 디아볼로스[diabolos]가 사용되었다). 그는 올무를 놓으며(딤전 3:7; 딤후 2:26). 공중의 권세 잡은 자로서 허물과 죄 가운데서 마주치게 된다(엡 2:2)
고전 5:5에는, 악명 높은 죄인은 교회에서 추방하고 사탄에 내어주어 죽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이 나온다. 이러한 추방 조치는 이 사람의 프뉴마 곧 영 Spirit(영혼 Soul)이 구원 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사탄에게 내어 주어 징계를 받게 하였으니 훼방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한 것이다(딤전 1:20). 그러나 그들이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참조: 행 5:5). 이러한 교훈적 징계의 배후에는, 사탄은 죽음과 파괴의 주인이며 하나님의 진노의 실행자이며, 공동체의 성원은 그의 규제로부터 자유를 확보하고, 범죄자는 그의 규제 아래로 던짐을 받았다는 유대적 사상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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