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소망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확증된다

Joyfule 2024. 2. 1. 12:52


   소망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확증된다(롬5:5-8)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목사 한 분이 생명 연장을 위한

병원진료를 제가 그분을 안 이후에도 근 7년을 계속해왔습니다.

그 분은 평생을 찬양집회로 유명 부흥사들과 동역을 했습니다.

피아노도 능숙하게 치고 비록 병중이지만 찬양도 아주 잘했습니다.

근데 독종인 제가 그분을 향해 지금 죽으면 지옥갑니다. 그리고 그 찬양은

노래일 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고 찔러서 꽤나 괴로웠을 겁니다.

다행히 투석을 하다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는 날 아침까지

그 분을 위해 저는 기도했고 그분은 제 글을 읽고 카톡으로 교제하면서

마지막까지 진리의 말씀에 대한 끈을 놓지는 않고 피차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분의 음악이 찬양이 아닌 이유는 성령과 진리 안에서 예배가

안 되기 때문이며 그 증거로 찬양에 기름부음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그분의 외적인 증거로는 전혀 영의 소욕이 보이지 않고 오직 육신의

소욕만 드러나고 과거의 자신의 업적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7년 동안 본다는 것은 쓰레기통에 들어앉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부군 장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알고 소위 신앙의

삼팔선을 넘어와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몇 년 동안 살다가 가신 분입니다.

마지막에 그 목사가 죽으면 천국에 가지 뭐 하고 푸념하듯 말하기에

마음 같아서는 천국이 어디 난지도인가 쓰레기만 모으게 하고 싶었으나

꾹 참고 천국에 무슨 근거로 가는가 하고 물으니 예수를 믿고 십자가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이랍니다. 저는 아 그래요 하고 실소를 하고 말았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온 분인 줄 알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천국을 보지도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일언지하에 주님께서 그 입을 막으셨습니다. 아담 안에서 잘 못 태어난

인간이 바로 예수를 믿고 십자가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아 천국에 간다고요?

반드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따라가서 그 안에서

주를 믿으므로 영생을 얻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 성령의 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브라함과 동일한 의를 얻는 근거가 바로 우리의 범죄를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의 부활과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Q.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영광을 바라는 소망이 과연 자랑스러울까요?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롬5:5)

 

A. 당연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랑스러운 정체감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영적가치관이 바뀌는 순간부터 진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건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소망이 하나님의 사랑의 보증을 받고 있기

때문에 소유나 기능과 역할과 상관이 없는 프라이드를 갖기 때문입니다.

자기 방어를 위한 자존감이 아니라 그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광스러운 영적인 자격지심이며 무한대의 자긍심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의 의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은 계속 생각나고 반복해서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 욕심으로 품은 비전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부끄럽기 때문에 이렇게 기도해서 되겠나 하는 회의가 옵니다.

끝내 기도 피로증후군에 걸려 그만 기도가 뚝 하고 멈추게 됩니다.

성령의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해라

저렇게 기도해라 할지라도 기도에 대한 분별력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주시는 이 비전은 성경적인 비전입니다.

약속을 믿으므로 성령이 보증하는 비전이기 때문입니다.

지구가 두 동간이 나도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듭니다.

따라서 그 비전을 가지고 계속 기도하면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어 갑니다.

 

로마서 8장 안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고

다음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증이 오고 난 다음에 상속이 주어집니다.

상속자가 된 다음에 하나님의 영광이 주어집니다. 그 영광 다음은

성령이 가정교사와 같이 따라 붙습니다. 성령이 친히 간구하시고,

성령이 위로하시고, 성령이 가르치고, 보증하시고, 공급하십니다.

따라서 성령이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일로 이끌고 가시기 때문에

우리 인생의 행불행이 다 합산이 되어 선이 되도록 하십니다(롬8:28)

인생만사 새옹지마와 같은 말이 아닙니다. 결국은 해피엔딩이란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결론에 이릅니다.

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을 세상이 대적하고, 고발하고, 정죄도 하겠지만

이런 사람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존재는 상천하지에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습니다.

 

Q. 어떠한 하나님의 사랑인가요?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6-8)

 

A. 하나님의 사랑 곧 성령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설명합니다.

어떤 사랑이냐 하면 우리가 연약할 때 약속대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주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맹세하신 그대로 주님은 그 죽음의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이것이 왜 사랑이냐면 세상에는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의의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악의 기준은

있는데 의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그게 의인인지 아닌지 모르고 죽어갑니다. 

왜 의를 위하여 죽는 자가 없느냐 사람은 옳다 그르다  기준이지 의의 기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인을 위하여 죽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다만 선을 위해 죽는 사람들은 의사 열사 등의 이름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죄인을 위해 자진해서 죽어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로마서 5장에 들어와서 처음엔 믿음이 나오고 그 다음에 소망이 나오고

그 다음에 사랑이 나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로마서 5장 안에 다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죽게 하셔서 화목의 제물로

영 단번에 드리신 이 사건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려고 하시는 그 사랑은 이미 역사 속에 확증된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받아 그 십자가의 사건의 효력이 지금도 적용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그 약속을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다시 찾으시겠다는 약속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이제 그 사랑의 말씀을 온 세상에 전시해 놓으셨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2000년 전에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역사도

나의 역사가 되고 그리고 이미 창세전에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서 예정 되었을 때의 그 역사도 나의 역사가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 그 자리에서

우리가 주님께 접붙임을 받은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리스도를 믿고 구주로 수용 할 때부터 거슬러 올라가서(소급)

그 분의 모든 역사가 나의 역사가 된다는 이 말입니다.

이를 두고 안토니 후크마는 원근통시라고 말했습니다.

구약에서 고난 받으신 주님과 고난 받으신 후의 주의 영광을 보고

또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장래를 보기도 하고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

이미 예정이 되었던 자신도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계시를 받으면 내가 믿은 것 같이 여기다가 주님이

나를 부르셨고 찾으셨다는 걸 알게 되고 이미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나의 장부를 이미 조직하셨음을 알고 그 다음엔 창세전의 예정을 알게 됩니다.

신앙이 우리하기에 달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사람이 아니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그 약속의 계통을 따라 쭉 올라가면

주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엄청난 사랑을 발견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효력이 지금 내게 오고 또 오고 있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하나님의 의의 결과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의 뜻과 상관이 없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금방 태어난 아기가 생년월일을 알고 그의 상속을 알겠습니까?

먼 훗날 크면서 차차 알아갑니다. 두고두고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놀라운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무한대의 하나님의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