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어디에 소속되었으며 성향은 어느 쪽인가?

Joyfule 2024. 2. 3. 11:15


   어디에 소속되었으며 성향은 어느 쪽인가?(롬5:12-14)



 지금 유튜브에서 인기가 있는 승려나 신부들의 강의나 토크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말들은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충실한 주의 종들은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가느냐, 그리고 얻는 게 뭐냐 하는

말씀만 밤낮으로 전하므로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 달갑게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설교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사느냐 하고 개그 수준으로 잘 하면

그게 좋은 설교라고 하고 소위 은혜 받았노라고 하는 기독교의 수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그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항상 기뻐할 수 있고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있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고 말씀합니다(살전5:16-18)

 

이 땅에는 세상나라와 하나님의 나라 이 두 세계가 병존하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신천지니 뭐니 하면서 자신을 따르면 나중에 시온산에 올라간다고

사기 치면 안 됩니다. 그러다가 진짜 백설표 식용유에 튀김이 됩니다.  

비록 우리가 가시와 엉겅퀴가 나는 척박한 이 땅에 살고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심령의 땅에는 에덴의 즐거움이 회복되었고

장차 육신까지 벗어 버리면 완전히 회복되어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것이 롬3장 21절부터 계속되는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5장 1절부터 11절 안에는 우리 구원의 시작과 마지막이 다 나옵니다.  

 

Q. 왜 아담이 오실 그리스도의 예표의 사람인가요?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A. 아담은 죄의 대표이고 그리스도는 의의 대표이기 때문입니다. 

롬5:12절 부터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서 소속이

바뀌었는가를 설명합니다. 로마서를 잘못 설명하면 신자들을 죄인으로

그 자리에 가두어 놓고 열심을 내도록 윽박지르는 거짓선생이 됩니다. 

이것은 가르치는 자들의 책임입니다. 매우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엔 인간의 행동은 서로 별 차이가 없습니다.

똥 싼 사람이냐 오줌 싼 사람이냐의 차이 정도일 뿐입니다. 

다만 죄인이든지 의인이든지 그 사람의 행동 주체가 누구인가가 포인트입니다.

로마서 5장 이야기는 나의 주인이 누구냐는 겁니다. 

아담이면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그리스도이면 의 가운데 옮겨진 겁니다.

인간이 이런 일 하거나 저런 일 하거나 그건 50보 100보입니다. 

그런데 나의 주인이 누구냐 하는 이 문제가 지극히 중요합니다.

나를 누가 다스리느냐 이것이 의냐 죄냐 갈림길이며 신앙의 삼팔선입니다.  

내가 잘났느냐 못났느냐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나의 주체가

누구냐 그것이 구원의 분기점입니다. 내가 어떻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떻게 되었느냐는 것은 그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이 그의 삶으로 드러나고 표현이 되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사망의 노예가 되어서 전부 죄에 붙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다시 사심으로 말미암아 사망 아래 있는

우리를 다 구속하여 주님 안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지요. 

바로 로마서 5장이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칭하여 말씀하고 싶은 내용입니다.

 

구원이란 것은 내가 그리스도에 의해서 신분이 결정되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아이들도 저지른 죄가 잘못되어도 용서해 주고, 또 용서해 주며 키워야

건강하지 겉으로 잘못이 나타나는 대로 잡아 족치며 '이렇게 해, 저렇게 해' 하면

나중엔 이상한 아이가 되고 말아요. 눈치가 빠른 애 늙은이가 되고 말아요.

그러므로 죄가 안으로 파고들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밖으로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자녀들을 키울 때에도 죄를 밖으로 드러내도록 해야 인격적으로 건강하게 자랍니다. 

사실 우리 인간의 행동 수준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서로 비교해 봐야 도토리 키 재기일 뿐입니다. 도나 개 수준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면서 이미 잘 하나 못 하나 다 틀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소속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으면 하나님 편이고 아담 편에 속하면

하나님의 적군입니다. 믿지 않는 자 곧 불신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는 자를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사람을 선악의 개념으로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더 영악한 사람은 자신에게 호 불호나 유 불리의 관점으로 보겠지요?

이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다면 그 교회는 시장적인 사고로 가득합니다. 

자신의 이해타산의 대상으로 사람을 보는 것은 눈이 잘못 된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구원은 소속입니다. 죄인은 본성의 문제지 겉모양의

문제가 아닙니다. 겉모양은 거짓과 연기로 충분히 남을 속일 수 있습니다. 

지금 어떠한 행동을 해도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모시면 의인입니다. 

다만 그의 행동이 잘못되었을 뿐입니다. 의인은 소속의식이 분명해집니다. 

행동이 바로 고쳐지지 않아도 주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에 그 마음은

하나님께로 끌려가고 있는 성향이 되어 갑니다. 행동도 끝내 고쳐집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나중에는 자신의 행동을 안 바꿀 수가 없어요.

그래서 구원은 먼저 주인부터 바꿔야 하는 겁니다.

 

지금 많은 탈북자들이 남한에 귀순하여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맨 처음 한 일이 국적을 대한민국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죄인들이 그리스도에게 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소속과 그 우두머리를 바꾸는 일입니다. 이제 거듭나서 주인이 바뀌고, 

땅이 새 땅으로 바꿨음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하늘도 바뀌지요. 

그리고 난 다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고 주기도가 되기 시작합니다. 

하늘과 땅이 바뀌니 저절로 하늘에 속한 자들의 기도가 됩니다. 

이 거듭남의 확신이 매우 중요합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자신의 소속을 확실하게 바꿔라 이 말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시작이 잘못되면 나중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설교자의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놓고 자기 위주로 말하는 겁니다. 

이건 도로의 표지판을 바꾸는 것과 같은 무서운 일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잘못 전하는 걸 보고도 가만히 두는 건 잘못입니다. 

의사가 수술할 때에 조그마한 잘못을 해도 난리가 납니다. 생명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거짓 예언하고 제사장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고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참 기이하도다(렘5:30-31)

무섭고 놀라운 일이라고 예레미야가 말합니다. 

우리는 사람들과 믿음을 논할 때 절대로 그 사람의 행위 얘기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 설교 속에 철학이 히트를 쳐요. 사람에게 필요한 격언이나

교훈이나 이런 것들이 설교 속에 단골로 들락거립니다.

한 철학자가 100세를 넘게 살고 있는데 제가 볼 때에 아직 신학으로

넘어가지 않는 사고를 가지고 있더군요.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 오래

참으시므로 아직 살고 있는 거죠. 구원을 받을 시간을 주시는 겁니다.

 

죄인의 대표 한 사람은 곧 아담입니다. 죄는 행위가 아니라 그 사람의 성향입니다. 

사람 안에 있는 죄는 그 죄가 행동화되기 전까지는 죄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죄라는 것은 그 사람 속에 있는 성향을 말씀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을 떠나는 성향이 바로 죄입니다. 아담처럼 말입니다.

사망이란 건 그 죄가 일한 결과입니다.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습니다(약1:15)

그런데 왜 하와가 아니고 아담이 범죄 했다고 할까요? 하와는 말씀을

받은 약속의 당사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아담이 범죄 했다고 말씀합니다.

죄의 개념은 그 쪽으로 기우는 성향입니다.

그리고 사망은 우리에게 사망적인 요소를 계속하여 방사합니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5:19-21)

전부 육체의 열매입니다. 이것이 사망적인 요소입니다.

이 짓을 계속하면 불 못으로 들어갑니다. 죄 아래 있는 사람은

생각이 항상 육적이고, 그 생각은 항상 더럽습니다.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나니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 다음 수치가 드러나고 그 뒤를 따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자기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여 떠넘깁니다.

교회 안에 이런 사망의 요소가 많아요. 남을 비판하고 트집 잡고, 

따지고 꼬집고 비틀고...이런 것들이 다 사망의 요소들입니다. 

사망이 뭐냐면 나도 죽고 다른 사람도 죽이는 요소입니다.

그러나 생명이란 남을 축복하는 힘입니다. 살려내는 능력입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이 뭡니까? 나도 살 길을 알고 다른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살림살이 곧 남을 살리고 자기도 사는 것이 바로 진리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시듯 우리도 남을 살려내야 하지요.

하나님의 영광에 속한 것은 피조물인 인간들 중에 어느 누가 봐도 이것은

예사 일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그 분의 빛이란 걸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대단한지 맛보아 알아야 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에게만 비치는 빛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에

비치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은 말장난으로 그칠 일이 아닙니다. 

그 영광을 봤다면 우리는 그 분 앞에 찍 소리 하지 못합니다. 군소리 하질 못해요. 

성령 안에서 경외를 배워 겸손하게 경배와 찬양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죄를 짓는다는 것은 사망이 왕 노릇 한다는 뜻이고, 

인간이 그 사망의 종노릇을 하기 때문에 육신의 개념을 갖게 되는 겁니다.  

영적인 상태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고 사고방식이라도 할 수 있는데 

내가 성령의 개념을 가지고 있느냐 악령의 개념을 가지고 있느냐 

이것이 바로 내가 죄에 속해 있느냐 의에 속해 있느냐는 갈림길입니다. 

그래서 지극히 인간적으로 육신을 따라 사는 것 그게 바로 마귀적인 겁니다.

 

Q. 죄가 율법 전부터 있었는가요? 율법부터인가요?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롬5:13)

 

A. 죄는 율법 이전 아담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죄는 개개인이 가진 개념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공통적입니다, 

율법 그 이전에도 죄는 세상에 있었습니다. 다만 죄목이 없었어요.

그냥 개념으로 이건 죄다 할 뿐이었습니다.

만약 죄가 율법에 의해 들어왔으면 율법이 그 죄를 해결해야죠.

그러나 율법 이전에 죄가 있었기 때문에 율법 외의 다른 의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표상)이라”(롬5:14)

사망이 왕 노릇했다. 이는 사망의 무서운 능력을 말합니다. 

사망은 왕 노릇 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아담과 같이 직접 죄를 범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모든 인간들의 개념 속에는 아담의 죄가 있었습니다.

사실 믿음은 이와 같은 개념의 변화입니다. '내가 빛이냐 어둠이냐'

빛의 개념인가 어둠의 개념을 가졌는가 자신을 살펴보세요.

그런데 내가 빛이다 어둠이다 말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빛 안에 있다면 빛으로 비춰지는 빛의 자녀가 되어가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빛과 어둠의 나눔을 시비하고 나무라지 마세요.

우리는 낮에 속한 자가 누구며 밤에 속한 자가 누구인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밤에 속한 자를 낮에 속한 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을 위한 작업이며 이 일을 하려고 주의 종들이 있는 것입니다.

 

‘오실자의 모형(표상, 예표)이라’ 반드시 오실 분인데 아담과

대칭되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아담은 죄의 대표이지만 그리스도는 의의 대표입니다. 

아담과 그리스도는 죄와 의의 대칭이 된 대표들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아담의 개념을 가지고 사느냐 그리스도의 개념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건데 이쪽 면과 저쪽 면이 서로 다른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앞의 말씀과 연결해 보세요. 구원이란 건 소속이고

나를 다스리는 주체가 아담이냐 그리스도냐 어둠이냐 빛이냐

사망이냐 생명이냐 죄냐 의냐 로마서 5장에서 우리가 확실하게

정리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겁니다. 지금 자신이 어디에 소속이 되어 있으며

영이냐 육신이냐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어디로 기우는 성향인지 늘 체크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