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출현의 과정.
① 최초의 복음서는 적어도 주후 60년경에 가서야 기록되었다. 이 기간을 전후로 하여 바울의 서신들이 기록되었고 그보다 후에 요한과 기타 서신들이 기록되었다. 1세기 말엽에 가서 바울의 서신들이 최초로 모아졌고, 2세기 중엽에는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들이 모아졌다. 요한복음은 그 후에 공인을 받았다. 오늘날의 신약성경은 속사도 시대 동안 편집되고 확정되었다. 유스티누스의 글에 의하면 일요일의 모임 때 예수님의 언행을 읽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그것은 아마도 오늘날의 복음서였을 것이다.
② 유스티누스의 제자 타티아누스가 사복음서를 종합하여 전기(傳記)로 만들어서 < 디아테사론 - Diatessaron >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 160년 전후의 일이다. 이 책은 400년경 4권의 복음서로 각각 나누어질 때까지 시리아 근동지방에서 사용한 표준 복음서였다. 〈 디아테사론 〉의 인용문은 고대 시리아 문헌에 나타나지만 사본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3세기의 그리스어 파피루스 단편이 1933년 이라크 바그다드의 유로푸스에서 발견되었다.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로 된 사본이 있고, 중세에 유럽 각국어로 번역되었다.
③ 사도의 서신을 복음서와 같이 성경의 일부로 취급한 최초의 사람은 마르키온이다. 마르키온은 주후 140년경에 최초의 정경 목록을 내놓았는데 누가복음과 바울 서신 중 10개만 포함되어 있었다. 마르키온은 구약성경을 일체 배척하고 성경을 오직 복음서와 사도 서신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그러나 마르키온의 정경 작업은 영지주의자들이 사도들의 이름을 붙인 자기들의 복음서와 묵시록을 사용한 것(=위경)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일이었기 때문에 교회의 올바른 정경 작업을 촉구하는 자극이 되었다. 이와 함께 몬타누스파의 예언으로 말미암은 소위 “새로운 계시”의 등장도 정경 형성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④ 2세기 말에는 소위 사도들의 “행전(行傳)”들이라는 책이 몇 가지 나왔는데 여기에는 누가복음에 기록되지 않은 사도들의 선교 활동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어린 시절이나 빌라도의 생애에 관한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는 몇 가지 복음서들도 나왔다. 이런 책들은 소설에 가까운 책들이었으며, 가현설자나 결혼을 거부하는 주장을 하는 일부 이단들의 주장을 널리 퍼트리는데 기여했다.
⑤ 2세기 말에 기독교 저술가들은 교회가 공인한 책을 모두 밝힐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이레니우스는 오직 네 권의 복음서가 있다는 사실을 말했다. < 무라토리 단편 >으로 알려진 최초의 정경 목록은 200년경 로마에서 작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헌은 1740년 이탈리아의 역사가 무라토리가 밀라노의 도서관에서 발견한 것인데 첫 부분은 분실되었으나 남은 부분에는 네 권의 복음서와 바울의 13개의 서신서들 및 사도행전과 요한의 두 서신, 유다서와 요한계시록, 솔로몬의 지혜서, 그리고 공인이 유보된 베드로 묵시록 등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베드로전후서와 히브리서, 야고보서, 요한삼서는 빠져 있었다.
⑥ < 페쉬타 - Peshitta >는 2 세기 중엽 이전에 에뎃사에서 기록된 시리아역 신약성경으로서 3세기말경 부터 시리아 교회가 사용했다. 페시타라는 이름은 9세기에 모세스 바르 케파가 시리아역 성경을 라틴역 성경인 불가타처럼 공동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하여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그 이름은 더 복잡한 시리아의 헥사플라 성경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⑦ 150년경에는 복음서와 사도들의 서신을 합한 신약성경이라는 것이 일반 교회에 존재하지 않았으나,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등의 시대에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지금의 신약성경은 짧은 시간 동안 급속히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2세기 말 경에는 오늘날 신약성경에 수록된 문서의 대부분이 이미 성경으로서 사용되고 있었다. 당시에 아직도 성경으로 승인되지 않고 있었던 책들은 야고보서, 유다서, 베드로후서, 요한2,3서, 히브리서, 요한계시록 등이었다.
⑧ 3세기 초까지 정경의 주요 목록에 대해 교회적인 의견 일치가 이루어졌지만 몇 권의 책은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서방교회는 히브리서를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몬타누스파가 히브리서 6장을 배교자들의 회심을 거부하는 근거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요한계시록은 천년왕국을 주장하는 책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천년왕국론을 반대하는 동방교회에서는 인기가 없었다.
⑨ 4세기 초까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된 책은 베드로후서, 요한2서와 3서, 유다서였다. 요한계시록도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동방교회는 결국 367년에 신약성경 27권을 정경으로 확정하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또한 정경에 들지는 못했지만 훌륭한 신앙 문서로 평가된 < 디다케(열두 사도의 교훈집) >와 < 헤르마스의 목자서 >는 교회에서 읽을 수 있는 책으로 허용되었다. 또한 정경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유익한 글로 인정된 또 다른 책은 < 클레멘트 1서 >와 < 바나바 서신 >이다.
⑩ 그밖에 시리아 교회는 수 세기 동안 타티아누스의 < 디아테사론 >을 네 권의 분리된 복음서 대신 사용했다. 후에 시리아 교회는 요한계시록을 거절하였고 히브리서 등 공동 서신들의 권위를 낮게 평가했다. 그러다가 6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모든 책을 인정하게 되었다. 서방교회에서 정경이 확정되고 공인된 것은 393년의 히포(Hippo – 북아프리카의 항구도시) 공의회와 397년의 카르타고(Carthage) 공의회에서였다.
5) 신약 정경 확정의 기준
① 신적 권위 - 신적 권위는 구약의 선지서들이 인정받은 방법으로써, 기록된 말씀이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와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내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② 사도성 - “사도들이 기록한 것인가?” 사도들의 권위는 예수님에 의해 공인된 권위이므로 이 기준은 정당하다.
③ 내용 - “내용의 주제나 그 주제의 영적인 특징이 성경으로서 합당한가?” 이러한 기준에 의해 거짓 문서들은 제거되었다.
④ 보편성 - 교회가 전반적으로 그 문서를 받아들이고 있는가?
⑤ 영감성 - “하나님의 감동으로”(딤후 3:16)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⑥ 전통성 - 고대로부터 전통적으로 사용해왔는가?
⑦ “그리스도 중심적인가?” - 가장 중요한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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