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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에 삶을 바친 수녀

Joyfule 2007. 9. 11. 01:07

2005 올해의 세계인물

故도로시 스탱수녀

- 경향신문 12월 27일 14면  

 

아마존에 삶 바친 불굴의 女전사

 

가랑비가 내리던 지난 2월12일. 도로시 스탱 수녀(73)는 브라질 아마존 유역 파라주의 거주지 보아 에스파란차 인근을 걷고 있었다. 약 50㎞ 떨어진 아나푸 마을에서 대농장주와 벌목꾼들이 농민들을 쫓아낼 의도로 농민들의 거주지를 불태우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농민 2명과 함께 나섰다. 두 명의 살인청부업자가 길을 막았다. 스탱 수녀는 침착하게 옷가방에서 성경을 꺼낸 뒤 마태복음 5장 9절을 읽어 내려갔다. 이윽고 6발의 총성이 아마존에 울렸다. 흙탕길에 쓰러진 스탱 수녀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반 평생을 아마존 유역의 가난한 농민들에게 바쳐온 ‘아마존의 천사’ 스탱 수녀는 이렇게 생을 마감했다.

 

“나는 도망치고 싶지 않다.

밀림 속에서 아무런 보호없이 살고 있는

농민들을 위한 싸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들에겐 환경을 존중하면서

명예롭게 일하며

살아가는 터전인 이곳에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신성불가침한 권리가 있다.”


그들은 왜 그를 쏘았을까. 의문은 전세계 열대우림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삼림의 보고(寶庫)’인 아마존의 실상에서 찾을 수 있다. 아마존은 지구 생태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세계의 허파라고 불릴 만큼 이곳 삼림의 가치는 매우 높다. 하지만 삼림자원 개발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벌목업자와 대농장주, 정치인의 손아귀에 있다. 그들에게 아마존 삼림은 현대판 ‘엘도라도’일 뿐이다. 스탱 수녀는 바로 이들과 맞서 왔다. 스탱 수녀는 눈 앞의 개발이익을 노려 농민을 죽이고,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그들과 대립했다. ‘지속가능한 삶’의 수호자였다. 환경운동가일 뿐 아니라, 개발을 앞세운 벌목업자와 대농장주, 정치인으로부터 억압받는 농민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인권운동가였다. 그가 아마존 농민들로부터 ‘아마존의 천사’ ‘열대우림의 성녀’로 불린 이유다.

하지만 삼림 개발업자들에겐 제거해야 할 ‘테러리스트’였다. 스탱 수녀는 그 명성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그의 일을 막으려는 사람들의 손쉬운 목표물이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가진 무기는 성경과 가난한 사람, 숲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마존에서는 스탱 수녀처럼 많은 운동가들이 삼림개발에 맞서 싸우다 죽어가고 있다.

스탱 수녀의 죽음은 21세기 화두인 ‘개발과 보존’의 조화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지속가능한 생존’의 중요성을 웅변하고 있다. 경향신문이 고인인 스탱 수녀를 ‘올해의 세계 인물’로 선정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1931년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태어난 스탱 수녀는 17살 때 데이턴 줄리앵고교를 3년 중퇴하고 ‘노트르담 드 나무르 수녀회’ 신시내티 지부에 가입하면서 성직자의 길을 걷는다.

노트르담 수녀회는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해방신학과 사회정의의 옹호자인 성녀 마리 로즈 율리아 빌리아르(1751~1816)에 의해 창설됐다. “가장 버려진 곳에 사는 가난한 사람, 특히 여성과 아이들을 위해 일한다”는 수녀회의 신조는 그가 걸어갈 길을 예견해 주었다. 13년 동안 미션스쿨 초등부 교사를 맡았다. 저녁이나 주말엔 멀리 떨어져 학교에 올 수 없는 인디언 마을이나 이민자 거주지의 아이들을 위해 발품을 아끼지 않았다.

 

반 평생 가난한 곳을 향해..

'세계의 허파'를 집어 삼키려는 벌목업자와 정치세력의 살해위협속에

신념 하나로 맞섰던 여인.

탐욕의 총탄에 스러졌지만 푸른별을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속에

그녀는 오늘도 살아있다.

브라질엔 66년에 발을 디뎠다. 동료 수녀 4명과 함께 브라질 마란하오주 코로아타에 수녀회를 설립한 스탱 수녀는 처음엔 성인교육과 교리문답교사 양성에 주력했다. 그러나 농민들이 지주들의 손아귀에서 억압당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농민들에게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70년대 초 브라질 정부가 아마존강 유역 이주자에게 땅을 제공하자 가난한 정착민들을 따라 아마존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미 세계에서 가장 넓은 열대우림의 25%가 파괴됐어. 1년에 9,000평방마일 이상씩 말이야. 우리 프로젝트는 숲을 보호하고 카사바나 채소, 카카오, 후추, 커피 등 농작물을 돌려가며 재배해 농업생산을 증진시키는 거야.”


죽음의 그림자가 스탱 수녀에게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82년 브라질 주교단이 창설한 인권단체인 ‘패스토럴 랜드 커미션(CPT)’에서 활동하면서부터다. CPT는 아마존의 대지주들이 농민과의 토지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총잡이를 고용하면서 폭력이 증가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86년 브라질을 방문해 스탱 수녀를 만났던 마거릿 홈은 직접 살해위협을 목도했다. 한 남자가 그들이 식사를 하는 카페에 들어오더니 스탱 수녀를 알아보고 “그들이 당신을 죽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살해위협은 브라질 정부가 ‘아마존 관통 고속도로(Trans-Amazon Highway)’ 포장계획을 발표한 98년부터 시작됐다. 이 계획은 결코 실행된 적 없지만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오랫동안 들끓고 있던 토지분쟁을 격화시켰다.

스탱 수녀가 활동해온 파라주는 벌목업자와 농장주의 폭력과 횡포로 악명높은 지역이다. CPT에 따르면 아마존에서 지난 20년간 토지분쟁으로 인한 살인사건이 1,237건이나 발생했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파라주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브라질 정부는 무관심했다.

스탱 수녀는 살해되기 9일 전 닐마리오 미란다 브라질 인권장관을 만나 자신과 농민들이 받은 살해위협을 경고했지만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스탱 수녀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기도 했다. 2002년 미국의 환경잡지 ‘아웃사이드’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내가 총탄을 맞는다면, 누구 짓인지 모두가 알 것”이라고 말했다. 수녀회는 그에 대한 살해협박을 우려, 브라질을 떠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그는 “다른 수녀님들은 나의 안전이 걱정된다고 하지만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나의 안전이 아니라 정말로 필요한 사람의 안전”이라고 대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탱 수녀가 살해되자 브라질 정부의 무관심과 아마존 개발정책에 대한 원성이 쏟아졌다. CPT 소속 안토니오 카나토 신부는 “브라질 정부는 스탱 수녀의 죽음을 막기 위한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히려 대농장주를 보호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아마존 프로젝트 책임자인 파울로 아다리오는 “스탱 수녀는 아마존을 위해 싸우다 숨졌다”면서 “그런데 정부가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도 살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스탱 수녀의 죽음은 아마존 보호와 무법천지에서 자행되는 불법행위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피살 직전 벌목업자들의 항의에 못이겨 벌목 제한 조치를 완화했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그가 죽은 지 5일 만에 이를 원상복귀시켰다. 파라주법원은 지난 8~10일 진행된 1심에서 청부살인범 2명에게 17년, 27년형을 선고했다.

살인을 사주하고 돈을 준 3명에 대해서는 내년에 재판할 예정이다. 인권단체들은 무엇보다도 스탱 수녀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살해범과 교사범에 대해 엄중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십년간 아마존 밀림에서 자행되고 있는 살인극을 막는 시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탱 수녀는 생전에 포르투갈어로 ‘삼림의 죽음은 곧 삶의 종말’이라고 쓰인 하얀 티셔츠를 즐겨 입었다. 문구에는 아마존과 그 속에서 사람들의 관계가 운명처럼 얽혀져 있다. 그가 진정으로 바란 삶은 무엇일까.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안전하게 땅을 경작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통해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을 만들고, 농민들이 평화롭고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땅을 가지는 것”이었다.

스탱 수녀의 죽음은 영화 ‘불타는 계절’(존 프란켄하이머 감독·1994년)로 잘 알려진 ‘아마존 열대우림의 영웅’ 치코 멘데스(1944~88)를 떠올리게 한다. 멘데스는 고무나무 수액 채취 노동자 출신이었다.

브라질 정부의 아마존 개발정책으로 삶터를 잃은 주민들의 권리 보호와 소수 지주들에 의해 열대우림이 파괴되는 데 대항하다가 88년 12월22일 집 앞에서 피살됐다.

멘데스처럼 죽음으로 지킨 스탱 수녀의 고귀한 신념은 아마존 주민들과 지구환경을 보호하려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나는 도망치고 싶지 않다. 밀림 속에서 아무런 보호없이 살고 있는 농민들을 위한 싸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들에겐 환경을 존중하면서 명예롭게 일하며 살아가는 터전인 이곳에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신성불가침한 권리가 있다.”

〈조찬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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