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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Allah)는 누구인가?

Joyfule 2016. 4. 14. 10:52

 

“알라(Allah)”는 누구인가?

릭 브라운(Rick Brown)* 

 

이슬람 테러의 증가는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호전적인 이슬람 사람들뿐 아니라, 일반적인 이슬람 신자들 그리고 특정부류의 이슬람을 향하여 그들의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무슬림들이 전 무슬림 공동체가 아닌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향하여 분노를 분별 있게 표하고 있다.) 특히 서양에서 표현되고 있는 분노는 이슬람 신앙을 악마와 같은 형태로 표현하고 있는데, 심지어는 무슬림들이 악마를 숭배하고 있다고 비난하는데 이르고 있다.

 

이러한 공격의 핵심 열쇠는 “알라”라는 이름이 악마, 또는 이교적인 신을 나타낸다는 주장에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달의 신”이라고 불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주장은 자신들의 분야에서는 아주 명성 있지만 아랍 언어와 중세 동양 역사에 대해서는 서툰 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져 왔다. 하나님의 나라는 진실되지 않은 것에 의해서는 결코 성장할 수 없으므로 이 문제를 이제 더 깊이 다루어 보도록 하자. 달의 신? 알라가 이교적인 신, 특히 달의 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회교사원들 위에 장식되어 있는 초승달, 그리고 그 달이 이슬람의 상징이라는 사실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중동 지역에 이슬람이 시작되기 전에 많은 “신들”과 우상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달의 신 이름은“신(Sin)”이었지 알라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슬람 태동지역인 아랍에서 특별히 유명했던 신도 아니었다. 메카지역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알려졌던 신은“후발(Hubal)”이라고 불렸던 신이었으나 그 신이 달 신이었다는 증거 또한 없다. 때로는 팔레스타인 지역인 하조르(Hazor)에 달의 신전이 있다는 것이 주장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초승달 모양의 한 매단 장식이 있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 장식은 달의 신을 상징화한 것이나, 아랍 신앙과는 무관한 BC 1250년 여호수아에 의하여 파멸된 고대 가나안인의 것이다. 또한 한 고대 사원이 있는데 그것은 예멘에 있는 것으로 황폐화된 시바(Sheba(Saba))왕국의 잔재 속에 있다. 거기에는 왕국의 수호신 알마크(Almaqah)의 비문이 있다. 알마크가 달의 신이라고 주장되고 있으나 딱히 증거는 없으며, 현대 학자들에 의하면 알마크는 해의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에 고대 아랍인들이 수백 개의 우상을 숭배했었다면 달의 신 곧 신(Sin) 또한 포함될 것이다.

 

또한 심지어 히브리인들도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을 엎드려 숭배했었다.2 그러나 아랍 사회에 달을 특별히 숭배했었다거나 초승달을 달의 신의 상징으로 사용했었다는 분명한 증거는 없으며, 알라는 분명하게 달 신의 이름이 아니었다. 만약 초승달 상징이 아랍의 달 신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초승달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이 초승달은 콘스탄틴노플(현재 이스탄불)과, 기독교 왕국으로 분명히 알려져 있는 비잔틴 제국의 국기에서 사용되었다. 몇몇 고대 터키의 부족들 또한 초승달 모양의 상징을 사용했었으며, 그것은 달에서 나온 것이라기 보다는 황소의 뿔에서부터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투르크 왕국이 15세기 때 콘스탄티노플과 나머지 중동지역을 통치했을 때, 그들은 비잔틴 제국의 상징을 없애지 않고 계속 사용하였다. 실제로 그들은 제국의 법으로서 온 지역을 통 털어 모든 공공 건물의 정상 위에는 초승달 상징을 붙이도록 하였다. 또한 그들의 속국들이 사용했던 국기에서도 초승달 모양을 우리는 볼 수 있으며, 이는 속국들이 독립한 이후의 국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 초승달이 전-식민지에서 투르크 제국의 통치를 더 이상 상징하지 않게 되었을 때, 초승달은 이슬람의 상징으로 재해석된 것이며, 이는 현재적 의미이기도 하다.3

 

따라서 이 초승달 상징은 고대 아랍의 달 숭배 신앙에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라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정치적인 이유에서부터 사용되어 내려온 것이다. “알라”라는 이름의 기원 그렇다면 알라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아람 언어나 중동의 아람 역사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이 아랍 이름 “알라”는 아람 말로“신”이라는“Alah”또는“Alaha”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슬람의 번영 그 이전에 혹은 그 이후에서도 아람 언어는 중동 지역(이집트를 제외하고, 이집트에서는 다양한 콥틱 언어가 사용되었다)에 있었던 유대사람들과 기독교인들의 주 언어였다. 그리고 많은 아람 언어들이 아랍의 언어로 차용되어 사용되었다. 아람어로 보통 신, 하나님을 일컫는 단어는 바로“알라(Alah(a))”이다. 이 단어는 예수님 또한 사용하였던 것으로 사료된다. 이 단어는 에스라서와 다니엘서에서, 유대인 번역 성경(탈굼)에서, 탈무드와 오늘날 중동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시리아 아람어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일컫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교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은 중동 전 지역을 걸쳐 살고 있으며, 또한 거기에는 아랍어를 사용하는 유대교인들, 기독교인들도 살고 있다. 이는 마치 오순절(행2:11)에 아라비아인들이 함께 있었던 것과 바울이 시리아인들과 헬라인들 사이에서 사역을 시작하기 이전에 아라비아로 갔던 사실(갈1:17)을 연상시킨다.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또한 아랍 주교들이 있었으며, 예멘과 서부 아라비아와 걸프만을 따라서 그리고 요르단에는 이전 이슬람적 교회들의 고고학적인 잔재들이 남아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들 교회와 연관이 있는 묘지의 비석들을 찾아내고 있다.

 

이들 비석들에서 볼 수 있는 고유의 이름들은 종종 알라와 조합된 이름들이다(예를 들면 Abd Allah 즉, 하나님의 종). 때문에 알라(Allah)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위해 사용했던 이름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난다.4불행하게도 그 당시에는 성경이 아랍 문자로 번역되지 않았었다. 때문에 이슬람이전의 기독교인들이 아랍언어를 사용했었다 하더라도 성경을 아람 언어로 사용했었던 것이다.

 

그 결과의 하나로 이슬람이전의 기독교인들은 많은 아람 단어와 이름들을 아랍어로 쓰게 된 것이다. 아랍어 소리의 패턴에 맞추기 위한 과정으로 변환시키면서 말이다. 이는 마치 하나님에 대한 아람 단어들이 어떻게 아랍어로 변화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5 특별한 사실은 알라는, 아랍어에서는 이상한 발음이 되기 하지만 두 번째 음절을 아람어 그대로 발음하면, 아람어로 발음되는 것처럼 그대로 아랍어로 발음된다는 것이다.6

 

그러나 무슬림 학자들은 꾸란의 아랍어가 그 이전의 언어를 그대로 차용하여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알라(Allah)라는 이름이“그 신(the God)”을 의미하는 알일라(al'ilah)의 표현에서부터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일라(’ilah)라는 단어는 성경적 아람어인 엘라(’elah)뿐만 아니라 성경적 히브리 말 중에“하나님”을 뜻하는 엘로(’eloh)와 엘로힘(’elohim)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따라서 이 단어의 유래가 어찌하였든지 이 단어는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인 단어와 관계되어 있다.

 

‘알라(Allah)’의 유대교 및 기독교적 사용알라(Allah)라는 단어가 아랍어로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슬람이 생겨나기 이전에 알라라는 말을 이미 아랍어를 사용하는 기독교인들이 사용했다는 것을 고대의 비석의 증명을 통해 알고 있다. 이는 요르단 움알지말(Umm al-Jimal)의 한 교회의 잔재들 속에 있는 이슬람이전의 비석이나 무덤의 비석들을 통해서 명백한 증거로 드러난다.7

 

이슬람의 그 선지자는 유대 선지자들의 메시지와 메시야이신 예수의 메시지 간의 연속성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 이슬람 선지자가 아랍어를 말하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사용했던 이름들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꾸란의 몇 구절들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은 알라다’라고 선포할 때에 사용한 것처럼 기독교인들이 알라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장면을 나타내고 있다. 이 선포에 대하여 알꾸란은, “마리아의 아들 그리스도를 알라라고 말하는 이들은 진실로 불경하도다!”(수라5:17, Yusuf Ali 번역 중)라는 구절에서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

 

 이 바로 뒤 구절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을“알라의 아들들”(수라5:18)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 비난한다. 따라서 알라라는 용어가 유대인들이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오늘날에도 알라라는 단어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하나님에 대한 아랍어 이름으로서 통상적으로 상용되고 있다. 토라의 표준 유대-아랍 번역은 A.D. 1000년 이전에 사아디아 가온(SaadiaGaon)이라는 유대 학자에 의해서 번역되었으며, 중동지역의 유대인들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번역본이다.

 

이는 19세기 말 킹 제임스 버전의 아랍 버전 성경이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널리 전파되기 이전까지 기독교인들 또한 사용했던 것이다. 또한 주목할만한 다른 유대 아랍 번역본이 있는데, 이는 사아디아가 번역할 그 동시대에 카라이트스(Karaites)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이들 모든 유대 번역본들은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알라라고 사용하고 있으며, 알라는 엘로힘(Elohim)과 야훼(YHWH) 모두를 번역할 때 사용되었다. 7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고대 기독교 아랍 번역본 성경은 다수가 있는데 이들 모두 예외 없이 알라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8

 

때문에 아랍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는 알라라는 단어가 성경의 하나님이라는 용어와 동일한 것이다. 그렇기에 서구인들이 알라라는 이름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아랍 기독교인들을“지적할 때” 아랍의 기독교인들은 놀라움과 당황을 금치 못하는 것이다. 무수한 무슬림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왔으며, 그들은 어디에서도 “창조자”, “주”,“아브라함의 하나님”,“모세의 하나님”등으로서 정의되는 하나님을 알라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만약 무슬림들이 전에 그들의 언어 속에서 하나님을 언급하기 위해 알라를 사용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이후에도 그들은 그 단어를 계속해서 사용할 것이다.

‘알라(Allah)’의 의미 논의의 편의를 위해 가정하면, 고대 아랍인들은 달을 숭배했다. 이것은 알라라는 이름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알라를 달의 신(moon god) 또는 이교도 신(pagan deity)으로 정의하는 기록들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그리고 영어에서‘하나님(God)’을 표현하는 단어들 모두가 이교도들이 이교도 신을 지칭할 때 통상적으로 사용하던 단어에서 파생된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그러므로 알라라는 이름은 다른 이름들에 비해서 이교적인 뿌리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또한 논의의 편의를 위해 가정한다면, 고대 아랍인들은 알라라는 이름 아래 신 또는 어떤 것(something else)을 이교적 신으로 숭배했다.

 

이 또한 현재의 용어적 관례 또는 심지어 꾸란의 관례와는 여전히 관계가 없는 것이다. 한 단어의 의미는 사람들이 물건들을 지칭할 때 얼마나 관습적으로 그 단어를 사용했는가를 말해줄 뿐, 과거에 그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기능은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는 근대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각 요일에 대한 기원인 앵글로색슨 족의 신들을 숭배한다는 생각 없이 요일을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퀘이커 교도들은 이 이유 때문에 경건을 위해 이 명칭 사용을 아직도 거부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정말 신이 들렸다는 개념 없이‘열정 혹은 신들린듯한 상태(enthusiasm)’와 같은 단어들을 사용한다.

 

그러나 어떤 경건한 기독교인들은 단어의 기원이 그렇기에 이 단어 사용을 거부한다. 이런 예들은 상당할 것이다. 한 단어의 의미는 사회적 관습의 문제인 것이다. 만약 무슬림들이 알라라는 용어를 한 분이며, 유일한 신, 곧 우주의 창조자, 모든 생명의 근원자, 모든 복의 수여자, 모든 선지자와 성경을 보내신 분으로 언급한다면, 그 용어가 의미하는 것은 달의 신(a moon god)이 아니다. 알라는 하나님(God)이다. 어휘적 의미는 적어도‘인식(sense)’과‘표시(denotation)’이라고 불리는 두 구성요소를 가진다. 표시란 그 단어를 관례적으로 묘사하는 실체들의 집합이다. 인식이란 전형적으로 한 실체가 그 단어로 묘사될 때 갖게 되는 고유한 특성의 집합이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개(dog)’는 개(dogs)에 대한 전체 개념을 지시하며, 또한 전형적인 개에 관한 묘사적 특성들을 의미한다.

 

화자(speaker)는 한 단어가 표시하는(denotative) 힘을 사용해,“물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저 개를 봐라!”와 같이 특별한 실체를 설명할 수 있다. 또한 한 단어의 묘사적 능력, 인식을 이용해,“그것은 사향쥐이지, 개가 아니다”라는 것과 같이 어떤 실체를 설명할 수 있다. (사실상 대부분의 단어들은 분야와 관례에 따라 구별되는 여러 개의 인식과 표시를 가지고 있다.)하나님(God)에 대한 다른 개념들 한 단어의 인식은 그것이 표시하는 실체들의 공통적인 개념이다. 한 단어가 인식과 함께 사용될 때 떠올려지는 것이 바로 개념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때 사람들이 항상 사물에 대한 똑 같은 개념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사물에 대해 언급하기 위해 같은 단어를 사용했더라도, 사물에 대한 사람들의 개념은 다른 수 있다. 예를 들어 보면, 달을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큰 천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하늘에 떠 있는 한 원형물 또는 그 자체가 빛을 내뿜는다고 생각하는 전통적인 사람들이 있다. 달에 대한 그들의 개념은 우리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그들이 하늘에 있는 물체를 보며“달”이라고 부를 때, 그“달”은 비록 그들의 개념과 나의 개념이 다를지라도 똑 같은 물체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또한 하나님에 대해서도 다른 개념을 갖고 있다. 심지어 기독교 유산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문화 속에서도 하위 문화(sub-cultural)에서 하나님의 개념은 상당히 상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몰몬교에서는 하나님을 신이 되었던 한 인간으로서, 지구를 창조했고, 영적 여성들과 함께 인간들로 태어나는 영적 존재들을 낳았으며, 마리아와 함께 육체적 연합을 통해 예수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유대인들과 무슬림들은 전통적으로 하나님을 한 분이시며, 보이지 않으며, 인간과 구별되며, 메시야로서 어떤 방법으로든 성육신하지 않은 분으로 생각하고 있다. 다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다른 어떤 민족보다 자신들을 더 사랑하는 하나님으로 이해하고 있고, 무슬림들은 유대인들보다 자신들을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있다.10 유대인과 무슬림의 관계처럼,‘오직-예수 프로테스탄트(Jesus-only Protestants)’는 반 삼위일체적이지만,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으로서 인식한다.

 

자유주의적 프로테스탄트들은 예수를 성육신 하신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예수의 성품과 메시지에서 예수를 통해 하나님이 드러난다고 믿는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징벌을 내리시고 제사를 통해 정규적인 화해를 요구하시는 분으로 인정한다. 무신론자들은 전형적으로 하나님을 심판적이고 은혜 없이 벌하는 신이라는 개념으로 공유하고 있다. 이신론자(Deist)들은 하나님을 멀리 계시고, 무관심하며, 개입하지 않는 분으로 인식한다.

 

또한 복음주의적인 개념들도 있다. 이 모든 이들은 똑 같은 실체를 언급할 때 비록‘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서로 다른 개념을 갖고 있지만,‘하나님(God)’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때문에 다음이 중요하다:“어느 누구도 단순히 이름을 하나님(God)이라고 바꿈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개인의 개념을 바꿀 수는 없다. 하나님을 표시하는 어떤 이름이라도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어느 사람에게 불러 일으킬 것이다. 재개념화를 위해 요구되는 것은 그 개념 자체를 바꿀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정보이며 그것이 바로 성경의 과업인 것이다.”다행히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인간, 창조와 목적, 죄와 거룩함, 예수님과 구원 등등에 대한 개념을 세우시고 교정하시기 위해 성경을 설계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특별히 그들의 모국어로, 읽거나 들음으로써 한 사람의 개념과 세계관은 교정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개념의 이러한 변화에는 (변덕스러움이나 완고함 같은) 어떤 특성들이 제거되는 것, (긍휼과 환희, 견고함과 신뢰와 같은) 새롭게 소유할 것으로 첨가되는 것, (사랑과 거룩함과 같이) 어떠한 특성에 대하여 강화되는 것, (복수심 같이) 그 힘이 약화되는 것과, 그리고 (말씀과 성령의 협력, 예수 안에 이루어진 성육신, 그리고 역사의 목적성과 같은) 새로운 정보들이 더해지는 것이 포함된 것이다.‘알라(Allah)’라는 명칭 거부에 기인한 복잡함 이 문제에 관한 또 다른 국면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알라’를 사용하는 사회적 함의이다.

 

만약 내가 다가가고 싶은 사람들의 언어로 말할 수 있고 그 언어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단어가 ‘알라’라고 한다면, 이 단어 사용하는 것을 내가 거부할 때에 그것은 내가 정말 다가가고 싶은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게 할 것이며, 그들을 또한 메시지에서 멀어지게 할 것이다. 그들의 선호와 금기에 대하여 무감각 한다면, 그들을 돌보는 능력과 문화와 유산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하다는 표시가 될 것이다. 그들이 선호하는 용어를 거부하는 것은 개인적 관계, 공동체, 그리고 일반적인 친족관계에서도 그들을 거부하는 신호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자 하는 것은 의사소통 할 때에 그들의 방식 사용을 거부하는 것이므로, 사실상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12

 

또한 만약 한 기독교인이 무슬림에게 ‘당신은 전우주의 창조자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달의 신을 섬기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 기독교인은 거짓말쟁이로, 모독하는 자로 간주될 것이며, 그의 증언 또한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왜냐하면, 무슬림들은 그들이 경외하고, 즐거움으로 섬기는 분을‘하나님(God)’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60년대 초, 수단에서 사역하던 대부분의 서양 선교사들이 추방당했다. 이는 어떤 사람이 선교사들을 반대하는 운동과 거짓된 많은 법적인 대응을 선동하였기 때문이다. 70년대에 나는 바로 이 사람과 이야기할 기회를 가졌다.

 

그 아랍인을 가장 분노하게 만든 것은 선교사들이 하나님에 대한 아랍식의 많은 이름들 그리고 예수와 선지자들의 아랍 이름들을 신랄하게 거절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자기 자신과 그의 민족에게 굴욕감을 주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 사람의 이름이 무엇인가? 그의 이름은 이사(’Isa)이다.13현대 터키에는 두 개의 지배적인 하위 문화가 있는데, 현대 무슬림(Mordern Muslims)과 독실한 무슬림(religious Muslims)들이다. 현대 터키인들은 현대식“터키화된”언어를 사용한다. 이는 특히 독실한 무슬림들이 종교적인 의미를 유지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아랍어와 페르시아언어에 기원 둔 터키언어를 외래 신조어들로 대치한 언어이다.

 

터키 성서공회는 현대 교육을 받은 터키인들에게 아주 적절한 멋진 성경을 새롭게 번역하여 내어 놓았다. 그러나 독실한 무슬림들은, 심지어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 지 간절히 알기 원하는 이도, 이 성경 읽기를 거부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현대 터키 성경은 하나님을 터키어‘Tanri’로 번역하였는데, 독실한 무슬림들은 그것을 이교도 신들을 지칭하는 용어와 관련을 짓기 때문이다. 그들의 관점에서, 하나님을 ‘알라’라고 사용하지 않는 책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책이 아니라고 간주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문제에 대해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있는 그 사람들에게는‘알라’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요 약 무슬림에 의해 형성된 하나님의 개념은 성경적 기독교인들의 개념과는 다르다.

 

하지만 메시야를 부정하는 유대인들에서 형성된 하나님에 대한 개념 또한 성경적 기독교인들의 개념과는 다르다고 하겠다. ‘엘로힘(Elohim)’에 대한 유대적 개념은 삼위일체적 관점과는 다르다. 알라에 대한 무슬림에 대한 개념이 삼위일체적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장 2절에 이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는 것이 아니라.”

 

무슬림도 이 경우와 같은 것이다. 만약 무슬림들이 하나님에 대해 삼위일체에 어긋나는 개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알라라는 이름이 부적절한 것이라면, 그와 똑 같은 이유로 엘로힘이란 이름도 부적절한 것이 된다. 무슬림들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그의 심판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부족하다. 그들은 성경에 대한 지식 없이 열심이 있는 자들이다. 문제는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개념이다.

 

거룩하시고, 사랑하시고, 모순 없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에 대한 개념은 성경에 드러난 세계관을 받아들임으로써 갖게 된다. 무슬림들이 하나님에 대해 사용하는 이름이 무엇이든지, 무슬림들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보다 완전한 지식으로 이끌 수 있는 성령님의 조명과 성도들의 간증이 있는 그것이 성경이다.

 

(원문출처: IJFM 23:2 Summer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