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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영리한 아흔살 노인

Joyfule 2024. 5. 13. 17:17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영리한 아흔살 노인

 

 

내가 묵는 실버타운에는 건강한 구십대 노인들이 여러명 있다. 그들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은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한 역사다. 비가 내리던 어제 나는 바닷가의 까페에서 그중 한 노인과 스파게티로 점심을 하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내 나이 또래의 생존율이 오퍼센트인데 나는 그 중에 들었어. 학교 동창회도 없어지고 연락되는 친구가 없어.”​

그의 말에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는 승리감 비슷한 게 들어 있었다. 그가 지나온 삶을 말하기 시작했다.​

“육이오 전쟁이 끝나자 미국으로 건너갔지. 당시 우리나라는 가난하고 부정부패가 심했어. 나는 그런 나라가 싫었어. 떠나면서 침을 뱉고 다시는 안돌아오겠다고 결심했지.​

미국으로 가보니까 육이오 전쟁 때 고관들이 자식들을 빼돌려 대학을 졸업 시키고 의사나 변호사로 만든거야. 나는 막노동자가 되어 청소를 하러 다니면서 그들을 보니까 세상이 불공평한 것 같더라구. 미국에서 의사나 변호사가 된 친구가 하필이면 고교 동창이었거든. 나는 돈이 최고라는 걸 알았어. 돈이 다가 아니라는 말은 헛소리야. 무섭게 장사를 했지. 그리고 거기서 부자가 됐어.”​

그가 잠시 말을 중단했다. 무엇인가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미국에서 목이 좋은 장소에 맥도날드 가게를 다섯개 가지고 있는 한국인이 있었어. 이민가서 그 정도면 큰 부자로 성공한 거지. 그런데 돈을 빼앗길봐 자식과도 손절하고 살았지. 그러다가 죽었는데 사망원인이 영양실조였어. 그 재산이 자식한테 다 갔지. 자식은 아버지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더라구.”​

“그래서 돈을 번 후에 어떻게 살았어요?”​

내가 물었다. ​

“나는 일을 그만두고 즐기기 시작했어. 내가 번 돈으로 저택을 샀어. 최고로 좋은 차도 사고. 골프치고 크루즈 여행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면서 살았지. 골프만 해도 오천회 이상을 쳤어. 그러다가 나이를 먹고 계산을 해 봤어. 나 같은 사람의 생존 연령을 통계에서 보고 그 나이까지 편안하게 살다가 죽으려면 얼마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어떻게 여생을 살아야 하나를 살핀거지. 고급 실버타운으로 들어갔어. 골프장 안에 있는 시설이었어. 거기서 살았는데 죽을 나이가 되도 내가 살아있는 거야. 다시 돈을 계산해 보고 인생계획을 짰지. 인플레이션으로 가졌던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의료비가 많이 들게 예상되는 거야. 미국에 계속살면 안되겠더라구. 그래서 비용이 팔분의 일 밖에 안드는 한국의 실버타운으로 옮겨 온 거야. 의료보험도 되고 복지혜택도 주어지고 좋아.”​

아주 영리한 노인 같았다. 예전에 읽었던 ‘커삐턴 리’라는 소설의 주인공이 살아있는 것 같았다. 육이오전쟁당시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생존 기술이 뛰어난 주인공이었다. 그는 돈이외에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

“죄송하지만 구십까지 살아오시면서 돈 이외에 어떤 의미를 찾으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그런 건 차원 높은 헛소리고. 돈 잘 벌어서 잘 먹고 하고 싶은 거 다하는 게 인생 아니겠소? 돈이 다지. 형제도 친구도 마지막엔 마누라까지 다 의미가 없는 거요. 나는 몸이 더 불편해지면 들어갈 요양원도 다 알아보고 계획해 놨어.”​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뭐가 남습니까?”​

“죽으면 끝이지 뭐가 있겠어.”​

그 노인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영리한 사람이었다.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던 정치지도자가 육이오전쟁 중에 자식을 미국으로 도피시킨 걸 보고 전쟁에 참여했던 그는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을까. 그는 돈 밖에 자신을 지켜 줄 것이 없는 낯선 땅에서 지독한 현실주의자 이기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그의 삶을 이해하면서도 나는 그가 죽은 뒷자리에서는 어떤 향기가 날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

내가 사십대 중반 암수술을 할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수술대에 올라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철저한 이기주의자였다. 내 몸뚱이만을 위해 살아왔다. 돈과 지위만이 성공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내 몸이 죽어 재가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는 게 느껴졌다. 누구의 기억에도 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정말 세상에 존재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한방울의 사랑이라도 이웃에 뿌려 놓아야 내가 죽은 뒷자리에 추억의 작은 들꽃이라도 핀다는 것을 깨달았다.​

육으로는 돈과 지위가 성공이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영의 요구였다. 그걸 충족시켜야 진짜 성공이라는 걸 깨달았다.​

자기 인생을 던져 빈민 속으로 들어간 성직자의 성공이 그게 아닐까. 험한 세월을 살아온 아흔살 노인의 굳어버린 머리 속에 그런 의미는 관념이나 위선으로 보일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