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의 어둠침침한 지하통로를 통해 죄수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검은 실루엣으로 소리 없이 움직이는 유령들 같아 보였다. 그들 사이에서 이상한 한 남자가 있었다. 안개 같은 하얀 빛이 그의 주변을 신비롭게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이상했다. 왜 그의 주위에서 빛이 느껴지는 것일까. 그게 그의 진짜 모습인지 아니면 내면에 있는 영의 힘이 주위에 번지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내 눈도 믿을 수 없었다. 육적인 눈인지 마음의 눈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하여튼 그의 주변에 나타나는 희미한 후광을 보고 나는 그의 영혼에 뭔가가 있다고 느낄 뿐이었다.
그는 사기범으로 징역 사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검사나 판사는 그를 사기범으로 보았다. 변호사인 나는 그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법의 밥을 사십년 가까이 먹으면서 깨달은 게 있다. 법의 세계란 참 묘하다. 형사나 검사의 영역으로 들어와 버리면 다른 존재로 변하는 것 같았다. 형사나 검사의 눈에 앞에 앉은 사람은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모두 범죄인 같아 보인다. 본인이 아니라고 부인을 해도 그들은 ‘논리적으로 너는 범인이어야 해’라는 잠재의식속의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판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단 기소되어 법정에 서면 의심하는 눈으로 보는 것 같았다. 무죄를 추정하는 형사소송법과 현실은 정반대였다. 변호사를 하려면 일단 마음의 눈부터 바꾸어야 했다. 수사기록을 읽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뇌가 된다. 그걸 부인하고 일단은 편견없이 보려고 해야 한다. 속더라도 한번 믿어주는 것이다. 나는 절대 안속아 하고 영리한 척 하는 인간은 겉똑똑이일 뿐이다. 그들은 현상 뒤에 있는 본질을 보기 힘들다. 하루는 그가 감옥 안에서 지나치는 투로 이런 말을 했다.
“일심 법정에서 검사가 나를 보고 저런 나쁜 사기꾼이라고 하면서 손가락질을 하더라구요. 놀랐죠. 검사는 진실을 알아서 규명해 주는 사람으로 알았는데 아니더라구요. ”
그는 현실에서는 놀랍도록 순진했다. 자기의 결백을 스스로 주장하고 입증해야만 법의 덫에서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서울고와 서울대 공대를 나와 미국 유학을 가서 독특한 아이템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비닐 같은 유연한 막 위에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금속잉크를 써서 전자회로를 찍는 기술이었다. 기존의 전자기술은 딱딱한 반도체에 금속성 칩을 부착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공해물질이 나오기도 했다. 그의 기술은 그런 위험이 전혀 없었다. 그게 상용화되면 부드럽게 휘어지는 스마트폰이 나온다고 했다. 종이같이 돌돌 말아다니는 텔레비젼이나 모니터가 생산될 것이라고 했다. 그 기술만 가지고 있으면 한국의 앞으로의 십년이상의 먹거리는 걱정 없다고 그가 말했다. 관련자료들을 봤다. 유럽을 비롯해서 세계적으로 그 기술을 가지고 경쟁하는 과학자가 열명 가량 되는 것 같았다. 그는 공대 교수로 있으면서 벤쳐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한 기업인이 그에게 백억을 투자했다. 그리고 얼마 후 거대 로펌을 이용해 그를 사기범으로 몰아 무거운 징역형을 선고받게 하는 데 성공했다. 벤쳐 기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기범들도 많았다. 기술을 과장하면서 돈을 받아 잘먹고 잘사는 경우였다. 그도 그런 부류로 취급된 것 같았다. 나는 그를 살폈다. 그는 투자받은 거액의 돈에 대해 바보 같을 만큼 관심이 없었다. 사기범이라면 목적이었던 그 돈이 전부여야 했다.
그는 감방 안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그런 순간들을 보지 못했다. 평생 과학자로 살아온 그는 자신을 표현할 줄 몰랐다. 그의 기술이 어떤 것인지 비전문가를 납득시킬 능력도 없는 것 같았다. 그에게 물어보면 수식만 말할 뿐이었다. 그와 대화하다보면 우주인과 얘기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나는 그가 무죄라는 확신이 섰다. 상대방측이 고용한 로펌이 엮어 던진 사기죄의 그물을 어떻게 찢고 그를 탈출시키나 고민했다. 핵심은 그의 기술을 보통 사람인 판사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검사도 판사도 그의 머릿속에 든 과학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표현력이 없는 그를 달래가면서 그의 과학이론을 배웠다. 모자란 지능 때문인지 머리가 터져 나갈 것 같았다.
고등학교 때 미적분을 배운 이래 처음으로 수학공식을 만난 것 같았다. 나 혼자 이해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그걸 평범한 문장으로 변론서 속에서 나타내야 했다. 하늘에 계시는 그 분이 도운 것 같았다. 마침내 판사들에게 그가 이룩한 첨단과학기술을 이해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자칫하면 한 귀중한 과학자가 사기범이 되어 모든 것을 잃을 뻔 했다.
변호사 사무실을 처음 차렸을 때 나는 기도했었다. 그런 사람들을 다섯명만 무죄가 되게 변론을 하면 천국고시 일차 정도는 합격한 것으로 쳐달라고 말이다. 그는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기쁘기도 하고 변호사로서는 성취감을 느끼는 사건이었다. 그 후로 십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다. 어제는 그 부부가 기차를 타고 내가 사는 동해의 묵호역으로 왔다. 우리는 파도 치는 망상해변의 모래 위를 맨발로 걸었다. 그리고 좋은 친구가 됐다.
나는 아직도 어두운 감옥 안에 있을 때 그의 주변으로 뿜어져 나오던 신비로운 하얀 빛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 감성을 위한 ━━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점장이와 무당 (1) | 2023.11.15 |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의인이 고난받는 이유 (1) | 2023.11.14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착한 국정원장 (0) | 2023.11.11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탤런트 친구의 연기철학 (0) | 2023.11.10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작은 선행에 민감한 아메리카 (1) | 2023.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