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
신상래목사
하루살이는 내일이 없다. 그들은 저녁이면 떼로 모여서 고별비행을 마치고 이 땅에서 사라져 간다. 물론 그 전에 알을 낳아두어서, 다음 날 아침이면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새끼들이 알에서 부화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갈 것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생물들은 아주 오랜 기간 생명을 유지한다. 사람의 평균수명은 약80년, 개나 고양이는 15년이지만, 한해살이 식물은 일 년이 주어진 생명이 고작이다. 필자가 그네들의 생각을 물어본 적은 없지만, 떠날 때가 되면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고 자연스럽게 떠나갈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 죽어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죽는다는 사실을 지식으로 인지하고 있지만, 자신에게 그런 일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살아간다. 그래서 죽음은 철저히 미화되고 포장되기에, 장례식장에 가서도 죽음이 자신에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기 일쑤이다.
죽음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죽는다는 사실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죽음을 피할 수 있으면 최대한 도망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죽음이 일어나는 사건을 생각하고 싶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당신에게 무엇이 유익인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죽음에서 도망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음은 진리이기 때문이다. 무덤을 아무리 아름답고 호화롭게 치장을 한다고 해서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는 시체가 깨끗해질 리가 없다.
죽음에 대처하는 가장 지혜로운 방책은 죽음은 깨끗이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야 죽음이 주는 두려움에서 피할 수 있고, 죽음의 두려움이 주는 불행한 사건들을 예방할 수 있다. 악한 영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의 덫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사람들의 생명과 영혼을 사냥하기 때문이다. 즉, 죽음의 공포를 피하는 해결책은 죽음을 쿨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것이 최선의 처방인 셈이다. 그러나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그 어떤 공포보다 가장 끔찍한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천국을 소망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산다는 것은 끔찍한 잘못이다. 악한 영은 다양한 계략과 수많은 통로로 사람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던져 준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평생 돈을 벌어 죄다 병원이나 약국에 던져주는 이유이다. 물론 적절한 병원의 처방이나 약의 도움을 받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죽음을 늦추어주거나 고통을 경감해줄 뿐이지, 원천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가장 지혜로운 해결책은, 오늘이 마지막 날처럼 사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게 살아야 한다. 당신이 의사로부터 암 말기 판정을 받아 3개월을 더 살지 못한다는 최후통첩을 들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처음 한 달 동안은 받아들이기 힘든 날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여기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동안 소중하게 여겼던 재산과 값비싼 소유물들을, 식구를 비롯한 주변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줄 것이다. 그리고 친근하게 지냈던 사람들과도 아쉬운 작별을 나눌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해보지 못한 일을 시도할 것이다. 부부가 황혼여행을 떠난다든가, 자녀들과 오붓한 시간을 지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 땅을 떠나는 게 슬프기 보다는 영원히 기쁘고 즐거운 천국에서 영원히 살 거라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어야한다. 당신이 그간 교회를 열심히 다니기는 했어도, 아직 그런 확신이 없는 이유는 믿음이 없는 증거이다. 믿음이란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반복하고 예배행위를 무한 참석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녀에게 거저 주는 선물이다. 천국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아직 선물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믿음은 자기암시나 자기최면이 아니다. 암울한 환경이나 부정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생각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그냥 믿어지는 것이다.
그런 구원의 확신이나 천국의 소망이 있다면, 이제 언제든 떠날 준비만 하면 된다. 그러나 언제 떠날지 모르지 않은가? 물론 누구나 평균수명 이상을 살고 싶어 하겠지만, 그것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기 바란다.
그렇다면 과도한 욕심을 채울 일도 없고, 많은 것들을 자신의 소유로 쌓아두지도 않을 것이다. 최소한 먹고 입을 것들이 있으면 족하고, 발을 뻗고 누울 공간만 있으면 만족할 것이다. 내일 죽을 사람이 유명브랜드의 옷이며 럭셔리한 아파트가 무슨 소용이며, 지폐를 쌓아둔다는 게 부질없는 짓일 것이다. 사람들이 평생 먹고 살 돈을 벌어 놓았으면서도, 더 쌓아두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은 죽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내일 이 땅을 떠나도 아쉬울 것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소유를 최대한 줄이고, 가족과 친지와 친구들에게조차 과도한 정을 붙이지 않는다. 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것들이 세상에 많이 남아 있다면, 떠나는 게 무척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칼럼을 마무리 하며,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이라는 시를 올려 드린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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