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성을 위한 ━━/이스라엘자료

유대인들은 왜?

Joyfule 2012. 10. 29. 08:59

 

 

유대인들은 왜?

 

 

7-1. 왜 랍비는 예배에 참석하지 않아도 될까?

랍비는 본래 유대인들의 영적인 지도자이면서 선생이다.

동시에 예배에 랍비가 반드시 있어야 할 이유도 없다.
매일 예배는 총명한 평신도 정도라면 누구나 인도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회당에서는 전문적인 선창자(히브리어 chazzan)를 고용하기도 한다.
선창자는 회중의 기도를 이끌어 가도록 세웠기 때문에 ‘회중의 사자(messenger)’라는 뜻에서

‘샬리아흐 찌뿌르(shaliach tzibbur)로 불리기도 한다.

탈무드 시대에는 이 사람을 ’낭독자‘라는 뜻으로, ’코레이(koray)‘로 부르거나 ’기도 선도자(바알 테필라, baal tefila)‘로 불렀다.

7-2. 왜 평일과 안식일 기도서는 ‘시뚜르’라고 부르고, 명절 기도서는 ‘마크쪼르’라고 부를까?

'시뚜르(Siddur)'는 (기도의) 순서라는 뜻이고, '마크쪼르(Machzor)'는 (기도의) 주기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두 단어 모두 '기도서‘를 가리키는 같은 말로 사용했다.

그리고 7세기 이후의 게오님들은 1년 치 기도문이 들어 있는 기도서를 ’세데르 테필라(기도의 순서)‘라고 불렀다.
세월이 흐르면서 명절을 위한 기도문이 점점 늘어나 기도서에 추가되었다.

결국 기도서는 너무 두꺼워져 예배자들이 기도시간에 들고 있기 거북할 정도가 되었고,

최근 이를 명절별로 구분하여 기도서를 따로 만들게 되었다.

즉, 신년 기도서, 대속죄일 기도서, 유월절 기도서, 오순절 기도서, 초막절 기도서가 그것이다.
이렇게 하여 ‘마크쪼르(Machzor)’가 탄생되었고,

평일과 안식일에 사용하는 기도서는 그대로 남아 지금도 ‘시뚜르(Siddur)’로 불리고 있다

 

7-3. 왜 기도서에 아람어 기도문도 있을까?

유대 역사를 보면 히브리어는 기도의 언어, 거룩한 언어로 여겨져 왔다.

반면에 아람어는 여러 세기 동안 생활 언어로 사용되어졌다.

당시 사람들 중 비록 그가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히브리어보다 아람어를 더 잘 하게 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카디쉬(Kaddish)’처럼 서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기도문은 아람 방언을 사용하게 되었다.
카디쉬가 아람어로 만들어진 배경에는 예배 순서와도 관련이 깊다.

즉, 카디쉬 이전 순서는 설교였으며, 설교는 아람어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설교가 끝난 다음 이어지는 카디쉬도 아람어로 진행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

참고로 그 후에는 카디쉬 순서가 공부 모임 다음으로 바뀌었다.

 

 

7-4. 왜 기도서에는 ‘우-밉네이 하타에이누’라는 기도가 있을까?

성경에 보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서 희생제물을 드리라는 명령이 있다.

그러나 제2차 성전이 무너진 후에는 희생제물을 드릴 수 있는 장소를 잃고 말았다.
따라서 안식일과 명절에 드리는 ‘무사프’

예배 때에는 “성전이 빨리 재건되어 다시 모리아산에서 희생제물을 드릴 수 있게 해 달라”는 내용의 기도를 드리게 된다.

‘우-밉네이 하타에이누(U-mipnay Chata'aynu)’라는 기도는 바로 이런 내용으로 드리는 기도를 말한다.

 

7-5. 왜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할까?

유대인들이 매일 세 번씩 드리는 예배(Shacarit, Mincha, Maariv)는 이스라엘의 족장들로부터 생겨난 전통이다.

아침기도(샤카릿, Shacharit)는 아브라함이, 오후기도(민카, Mincha)는 이삭이, 저녁기도(마아립, Maariv)는 야곱이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를 다르게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다.

즉, 이 예배들은 족장시대보다 한참 후에 생겨났으며, 샤카릿(원래 ‘아침’이라는 뜻) 예배는 이른 아침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오던 희생 제물을 상징하고, 민카(원래 ‘제물’이라는 뜻) 예배는 매일 오후에 성전으로 들어오던 희생 제물을 상징한다.

성전이 무너진 이후로는 제물을 드리던 제사를 기억하면서 회당에서 이 두 예배를 계속 이어왔다.
이에 비해 마아립(원래 ‘저녁’이라는 뜻) 예배는 희생 제물을 드리던 의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탈무드에 보면, 2세기경 텔아비브 부근에 있는 야브네(Yavneh)에 살던 산헤드린의 지도자 랍비 가말리엘 2세와 그의 동료 랍비 요슈아가 ‘매일 몇 번씩 기도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 논쟁을 벌인 일이 기록되어 있다.
이 논쟁에서 랍비 가말리엘은 성경 말씀(시 55:17, 단 6:10)을 근거로 매일 세 번씩 기도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랍비 요슈아는 마아립 예배는 성전에서 드려 오던 제사와 상관없는 것이므로 저녁 기도는 강요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랍비 가말리엘의 의견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www.segibak.or.kr - 유대인들은 왜?

 

'━━ 지성을 위한 ━━ > 이스라엘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대인들은 왜?  (0) 2012.10.31
유대인들은 왜?  (0) 2012.10.30
유대인들은 왜?  (0) 2012.10.27
유대인들은 왜?  (0) 2012.10.26
유대인들은 왜?  (0) 2012.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