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왜?
유월절은 오순절, 초막절과 함께 성경이 정해 준 유대인들의 삼대 명절이다. 그 중 유월절은 자유에 대한 생각을 말과 행동으로 실천한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는 명절이다. 유월절이 독특하고 의미있는 명절로 지속되는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즉, 유월절은 원래부터 있던 두 가지의 전통적인 명절이 하나로 승화된 것이다. 그 중 하나는 ‘학 하마쫕(Chag Ha-matzot,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의 축제)’으로서 농업과 관련된 명절이었고, 다른 것은 ‘학 하페삭(Chag Ha-pesach, 어린양의 축제)’으로서 유목민들의 명절이었다. 이 두 명절은 봄의 축제로서 유대력으로는 니산월(3월-4월)에 들어있었다.
‘학 하페삭(Chag Ha-pesach)’은 농업 명절보다 훨씬 더 오래된 것으로서 고대 유대인들이 대부분 유목민이었던 것과 상관이 있다. 그들은 광야에서 양을 쳤으며, 봄이 오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동물을 잡아 제물로 바쳤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모세가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로 나가 축제를 지켜 하나님께 경의를 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요청은 유대인들이 아직 출애굽 하기 전에 했던 것으로서, 이미 그 이전부터 이러한 축제가 행해져 왔음을 말해 주고 있다.
농업 명절인 ‘학 하마쫕(Chag Ha-matzot)’은 팔레스타인에 살던 유대 농부들이 추수기가 시작되는 것을 축하하던 봄 축제였다. 추수기를 앞 둔 농부들은 가정마다 효모 대용으로 간직해 오던 묵은 신 반죽을 내다 버리는 의식을 치렀다.
이 두 가지 축제들은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하나의 절기로 태어나게 되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1. ‘학 하페삭(Chag Ha-pesach, 출 34:25)’ : 페삭 즉 유월절 어린양의 축제로서 하나님이 모든 애굽인 가족의 장남을 치되 이스라엘 가족의 집에서는 이 열 번째 재앙이 ‘넘어가리라’고 하였다. ‘페삭(pesach)’이란 단어는 ‘유월절 어린양’ 또는 ‘넘어가다(pass over)’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 원어 pasach에서 나온 말이다.
2. ‘학 하마쫕(Chag Ha-matzot, 출 23:15)’ : 누룩을 넣지 않은 빵 즉 무교병의 축제로서 유대인들이 이집트로 내려가기 전에 이미 있었던 축제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당시 발효되지 못한 반죽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고 나온 사건(출 12:34)과 결합되었다.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지킨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유월절 식탁을 준비하는 것을 말한다. 그만큼 유월절 식탁은 유월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특히 유월절 식탁에는 평소와 다른 특별한 음식들이 준비되고, 식사 방식에도 일정한 순서가 있을 뿐 아니라 온 가족이 순서에 참여하게 되므로 유대인들은 유월절 식탁에 모이기를 즐겨한다.
1980년에 바 일란 대학교의 메이어(Yehuda ben Meir) 박사가 실시한 이스라엘의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99%가 어떤 방법으로든지 유월절 축제를 지키고 있으며, 그중 82%는 금지된 음식들을 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평소에 율법이 정하는 고기만 먹는 인구 79%에 비하면 별로 높은 편이 아니지만, 유대교의 엄격한 식사 계율을 완벽하게 따르는 인구 44%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비율이다.
제2차 성전 말기에 유월절은 특히 대중적이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와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에 의하면, AD 65년에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킨 사람의 수는 300만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 숫자는 탈무드(Pesachim 64b)가 언급한 아그립바 왕의 조사 결과와도 일치하는 것이다. 즉, 아그립바 왕은 성전 제사장에게 “사람들이 제물로 드리는 유월절 어린양의 콩팥을 떼어 모아 두라”고 명령하였고, 나중에 콩팥의 숫자와 양 한 마리를 먹을 수 있는 사람수(10명)를 곱해 보니 그 해(성전이 무너지기 5년 전)에 예루살렘에 모여 유월절을 지켰던 사람의 수가 300만명으로 짐작되었다는 것이다.
9-3. 왜 이스라엘 밖에서는 유월절을 하루 더 지킬까?
성경에는 7일 동안 유월절을 지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AD 70년 유랑생활이 시작되면서 팔레스타인 이외 지역에서 사는 유대인들은 8일 동안 유월절을 지키게 되었다.
유대인들이 원래 정해진 기간보다 하루 더 유월절을 지키게 된 배경은 달이 뜨는 것을 기준으로 하는 유대력(음력)이 정확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즉 초승달을 보았다는 증언이 들어온 후 이를 공식적으로 발표해야 새 달이 시작되는데, 이러한 방식은 오류가 생기기 쉬운데다 예루살렘에서 먼 곳까지 새달이 시작되었다는 정보가 전해지는 과정에서도 오류가 생길 수 있으므로 아예 하루를 더 유월절로 지켜 명절 어기는 일을 예방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유월절뿐 아니라 3대 절기에 속하는 초막절과 오순절에도 적용되었으며, 유대인은 이러한 방식으로 명절 범하는 일을 사전에 차단하였다(16-7 참조).
오늘날에도 이스라엘 밖에서 사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유월절 기간에 하루를 더하여 8일 동안 명절을 지키고 있으며, 다만 개혁파 유대인들과 일부 보수파 유대인들만 7일 동안 유월절을 지키고 있다
9-4. 왜 유월절 직전에 ‘마옷 히팀’ 자선기금을 모을까?
‘마옷 히팀(maot chittim)’이라는 단어는 유월절 무교병을 만드는데 필요한 ‘밀을 살 돈’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유월절에는 유대인들이 평상시에 먹던 빵이나 발효된 음식을 먹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음식을 장만해야 한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부족하여 자칫하면 본의 아니게 유월절을 어기게 된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이웃들을 위하여 자선기금을 모음으로서 ‘풍족한 사람은 내고, 부족한 사람은 가져 간다’라는 탈무드의 법칙을 지켜 나가고 있다.
이 풍습은 성경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애굽의 장남들이 모두 죽은데 비해 이스라엘의 장남들은 살아 남았으므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금식하는 것이다. 유월절 전날, 유대인들의 각 가정에서는 전통적으로 장자들이 금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변형된 조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 만약 장자가 일 년 동안 탈무드의 한 부분을 공부하여 유월절 전날 그 공부를 마치면 금식하는 일을 면제해 주는 것이다.
실제로(예외도 있지만) 이 일은 그 지방의 랍비가 맡게 되며, 랍비는 유월절 전날 아침 공동체의 모든 장자들을 한 곳에 모은다. 기도를 마친 후, 장자들은 이 날을 위해 랍비와 함께 공부해 오던 탈무드의 약속한 부분 마지막 과목을 공부한다. 이러한 일을 히브리어로 ‘시윰(Siyum)’ 또는 ‘시윤 마섹타(Siyum Masechta)’라고 부르는데, ‘(탈무드의) 한 부분(tractate)을 마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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