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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학 핸드북 - 제5장 유대인의 글과 상징과 행동

Joyfule 2013. 12. 27. 10:25

 

 

유대학 핸드북 - 제5장 유대인의 글과 상징과 행동 

 

 

5.9.     희생과 제사 - 코르바노트

 

코르바노트는 성전이 없는 오늘날 실효성이 문제된다. 유대인들은 이에 대해 별 관심이 없으나 기독교인들은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다.

 

5.9.1. 코르바노트에 대한 질문과 대답

 

오늘날 유대인들은 제사를 드리는가?

예루살렘 외곽의 한 지역에서 일부 유대인들이 동물제사를 드린다고 한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2세기 이래로 유대인들은 제사를 드리지 않고 있다. 예루살렘의 제사도 정통적인 방법에 따른 제사는 아니다.

 

언제 제사를 멈추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유대인들이 제사를 드리던 예루살렘 성전을 로마군이 70년에 파괴함으로써 제사행위는 멈추어졌다. 유대전쟁이 있던 132-135년에 다시 행해졌지만 이 전쟁에서 유대인들이 패배한 후 제사는 영원히 멈추어졌다. 물론 유대전쟁 이후에 소수의 무리가 제사를 계속 드리긴 했지만 곧 중단되었다. 유대인들은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적절한 장소가 없으므로 제사를 드리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가 적당하다고 여기는 장소에서 우리 마음대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제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리라고 지정하신 곳에서만 제사를 드릴 수 있다. 신명기 12장 13-14절. 다른 장소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죄악이다. 그것은 샤밭을 지키기 위해 촛대와 포도주를 훔치는 것과 마찬가지의 범죄라고 한다. 하나님 자신이 제사를 받으시겠다고 정하신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이었다. 지금 이 성전은 없어졌고 그 장소에 이슬람 모스크가 서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제사를 지낼 장소가 없어졌으므로 우리는 어디에서나 제사를 지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주장에 따라 제사 드릴 장소를 따로 마련하고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제사는 중지되어 있다고 본다.

 

유대인들은 제사를 다시 시작하려 하는가?

정통파 유대인들은 매일 기도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과 제사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한다.

 

코하님(제사장들)은 제사로 드려진 고기를 먹었나?

그렇다. 대부분의 제물을 먹을 수 있었다. 어떤 것들은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었다. 어떤 것들은 율법에 규정된 대로 제물을 바치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먹을 수 있었다.

 

제물은 결국 동물 학대가 아닌가?

제물은 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는 것보다 더 잔인한 행동은 아니다. 제물로 만들기 위해 동물을 잡는 과정은 음식으로 먹기 위해 동물을 잡는 과정과 비교하여 다르지 않다. 제물로 삼기 위해 빨리 그리고 덜 고통스러운 방법을 취한다.

 

제사없이 어떻게 유대인들은 죄사함을 받는가?

죄사함은 회개와 기도와 선행을 통해 받는다고 유대인들은 말한다. 유대전통에서 기도는 희생 제물을 대신한다. 호세아 14장 2절에 따르면 우리는 수송아지가 아니라 우리의 입술로 죄사함을 받는다고 한다. 열왕기상 8장 46-50절에 따르면 솔로몬은 성전 봉헌으로가 아니라 기도함으로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유대인의 기도에는 제사와 병행하는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제사는 죄사함을 받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것으로 죄사함을 받기에 충분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피흘림의 제사가 죄사함에 필요하지 않은가?

동물의 희생 제사가 죄사함을 위한 것이기는 해도 그렇지 않은 제사도 같은 효력을 지닌다고 한다. 희생을 포함하지 않는 죄사함의 다른 방법들이 많다고 유대교는 주장한다. 당연히 희생이 오실 구세주의 상징이라는 것도 부인한다.동물의 희생 제사는 모든 종교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토리가 주어지기 전에 히브리인들은 제사를 드렸다. 희생제사에 관련한 율법이 토라에 제시되면서 사람들은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5.9.2. 코르바노트

 

고대 유대인들의 제사는 코르바노트로 알려져 있다. 탈무드의 코다쉼 편에 이 모든 것이 설명이 되어 있다. 코르바노트는 ‘희생’ 또는 ‘제사’로 번역될 수 있다. 이 단어는 무엇을 잃거나 포기하는 의미이다. 히브리어 코르브는 무엇을 가까이 놓다는 것인데 결국 코르바노트는 우리 자신을 하니님 가까이에 놓는 것이다. 유대인의 종교예식의 대부분은 제사장들인 코하님이 배타적으로 주관했다. 그리고 이 예식은 모두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행해졌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한 것이므로 사람이 어떻게 달리 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전이 없어진 오늘날 코르바노트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유대인들은 코르바노트가 다시 행해지기를 바라고 있고 이 일을 가능하게 하는 자가 메시야라고 생각하고 있다.

코르바노트는 기본적으로 세가지 개념을 지닌다. 첫째는 ‘드린다’는 것이다. 코르바노트는 어떤 사람에게 속한 것을 제물로 드린다는 의미다. 이런 의미에서 가축으로 제물을 삼았다. 야생동물을 잡지 않은 것은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서 농사해서 거둔 곡식을 제물로 바쳤던 것이다. 코르바노트의 두번째 중요한 의미는 ‘대신’한다는 것이다. 제물이 곧 그 제사를 드리는 자를 대신하는 것이다. 제사의 의미 가운데는 ‘벌을 받는다’는 의미도 있다. 재미있게도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께 자비를 간구했다. 세번째 중요한 의미는 코르바노트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 간다는 것이다.

 

5.9.3. 코르바노트의 목적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코르바노트의 목적은 죄 용서 만이 아니다. 코르바노트는 자신을 성결케 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다. 코르바노트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위엄에 감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구원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코르바노트는 행위에 따라 효과가 나타난다. 성결을 위해 할례를 행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기 위해 구제를 행하고, 회개에 합당한 옳은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코르바노트다.

 

5.9.4. 코르바노트의 형태

 

코르바노트의 형태는 세분화되어 있어서 복잡하다. 여기서는 몇가지만 소개 한다.

 

올라(번제):

가장 잘 알려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의미이다. 히브리어 ‘올라’는 우리 말로 ‘올라가다’란 뜻이다. 번제는 제물을 모두 태우는 것이어서 남는 고기가 없다. 완전한 순복(順服)을 의미한다. 올라에  쓰이는 제물은 제사 드리는 자의 형편에 따라서 비싼 소에서 부터 싼 비둘기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다.

 

쩨바흐 쉘라밈(화목제):

화목제는 하나님께서 자비로 보호하심에 감사드리는 제사이다. 샬롬과 관련있는 제사인 것이다. 화목제는 제단에서 제물을 태우는 것이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부분, 제사장에게 주는 부분, 제사자가 가족과 함께 나누는 부분이 있다. 화목제는 감사제의 의미도 있다. 이것은 자유 의지로 드리는 제사이며 약속을 지키는 의미의 제사이다. 화목제는 죄의 사함과 상관이 없다. 탈무드는 메시야의 시대에는 더 이상 죄 용서의 제사는 없으며 오직 화목제만 있다고 한다.

 

하타트(속죄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용서를 구하는 제사가 속죄제이다. 이것은 슬픔과 탄식을 나타내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제사이다. ‘하타트’는 실수하다란 의미다. 이 제사의 정도는 죄의 정도에 따라 다르고 개인적으로 또는 공동체적으로 드릴 수 있다. 하타트에서 제사자는 금식 하지만 제사장은 음식을 먹는다.

 

아샴(더러움의 제사):

제단에서 물건을 훔쳤을 때 드리는 제사로 부지 중에 죄를 지었을 때 회개하는 제사이기도 하다. 죄를 지은 것이 확실하면 다시 속죄제를 드린다.

 

음식과 음료의 제사:

사람이 가공한 음식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민하’라고도 한다. 사람의 행위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제물은 제단에서 태우지만 제사장 몫이 남겨진다. 희석된 포도주가 드려진다.

 

파라 아두마(붉은 암송아지):

1997년 이스라엘에서 붉은 암송아지가 태어났다. 붉은 암송아지는 토라에서 매우 신비한 제물로 기록되었다. 이 제물은 사람이 죽은 자들과 접촉했을 때 이것을 정결케 할 목적의 제사에 사용된다. 붉은 암송아지 제물은 메시야와 관련한 것이라 본다.